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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뒷돈, 실적은 부진, 공사장선 사고 … ‘3재 롯데’

중앙선데이 2014.04.27 01:10 372호 18면 지면보기
롯데의 여러 사업체와 브랜드가 몰려있는 서울 소공동 롯데타운의 전경. [중앙포토]
“‘거화취실(去華就實)’이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신동빈 회장 취임 3년 … 흔들리는 재계 5위 롯데그룹

롯데쇼핑 신헌 전 사장이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출두한 지난 14일, 롯데 한 관계자는 그룹의 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거화취실’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버리고 내실을 지향한다’는 뜻으로 롯데 창업자 신격호(92) 총괄회장의 경영 원칙이다. 신 총괄회장의 집무실 벽에 수십 년째 걸려 있는 글귀이기도 하다.

신 전 사장의 소환이 총괄회장의 경영 원칙과 무슨 함수관계가 있을까. 롯데 위기는 왜 총체적일까. 재계 관계자들은 롯데그룹 경영이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면서 기업문화도 과도기를 맞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2011년 취임한 신동빈 회장은 총괄회장의 ‘거화취실’ 기조에 ‘공격 본능’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불필요한 지출은 안 하는’ 롯데그룹 DNA에 과감성과 돌파력을 더했다는 얘기다. 신 회장의 과감성·돌파력은 롯데쇼핑 상장과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신 회장은 정책본부장직 재임 2년째이던 2006년 롯데쇼핑의 상장을 주도했다. 당시 롯데쇼핑은 상장요건을 갖추기 위해 자본금을 1500억원 수준으로 증자했다. 이후 상장에 따른 주가 상승으로 지분가치가 3조2000억원에서 7조5000억원으로 4조원 이상 늘어났다.

M&A 30여 건 성사, 몸집 불리기 성공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확보한 신 부회장 측은 이후 공격적으로 M&A를 진행했다. 2004~2006년 사이 2건, 2007년 3건, 2008년 4건으로 인수기업의 수를 늘렸다. 특히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된 2009년에는 7건, 2010년엔 11건이나 M&A를 성사시켰다. 자신감이 붙은 신 회장은 2010년부터는 조(兆) 단위의 메가 딜을 단행했다. 2010년 2월 1조3000억원을 들여 GS리테일 백화점·마트 부문을 인수했고 그해 10월에는 말레이시아 석유화학회사 ‘타이탄’을 1조5000억원에 사들였다. 2012년에는 롯데하이마트를 1조2480억원에 사들였다. 그러는 사이 롯데는 2005년 33조원이던 자산 규모를 2012년 83조원으로 불리면서 재계 5위 그룹의 위치를 공고히 다졌다.

그룹 외형을 키우는 한편 신 회장은 그룹 체질 개선에도 나섰다. 그간 롯데에는 급여가 낮고 진급은 늦지만 정년을 보장하는 ‘정(情)의 문화’가 지배해 왔다. 실제 롯데쇼핑의 경우 평균 급여 수준이 4000만원을 넘지 못한다. 그룹 안팎에서는 “5대 기업 주력 계열사의 위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롯데가 ‘합격하면 반갑긴 하지만 입사해야 할지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기업’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면 롯데에는 다른 기업과 달리 오래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롯데의 상무 평균 연령은 53세로 CJ그룹(47.7세), 두산그룹(48.6세), LG그룹(49.8세), 현대그룹(51.5세)보다 훨씬 높다. 진급이 늦는 대신 그만큼 정년은 길었다.

신 회장은 이런 ‘정(情)의 문화’에 과감히 메스를 대고 ‘성과 문화’로 방향키를 바꿨다. 신 회장 취임 후 매년 초 단행한 인사에서 예년에 비해 2~3배 가까운 인력이 짐을 싸야 했다. 롯데마트의 경우 본사 직원 50여 명이 점포로 재배치되기도 했다. 롯데그룹 한 직원은 “선배들이 짐을 싸자 후배들은 인사 적체가 해소됐다는 안도감보다 ‘남 일이 아니다’는 부담감을 더 크게 느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기업문화가 급격히 달라지면서 직원들 사기가 급격히 떨어졌고 이런 분위기가 유통업계에 뿌리 깊은 ‘갑 문화’와 만나면서 수뢰사건이 불거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꼭 필요한 곳 외엔 지출을 안 한다’는 문화는 임원과 직원의 연봉 격차로 이어졌다. 롯데는 10대 그룹 소속 93개 상장사 가운데 임원과 직원의 평균 연봉 차이가 가장 크다. 롯데그룹 임원 연봉은 3억1500만원으로 직원 연봉(3750만원,계약직 포함)의 8.4배에 달한다. 10대 그룹 중 연봉 격차가 가장 적은 현대차그룹의 경우 임원 연봉 3억6100만원으로 직원 연봉(8850만원)의 4.1배에 불과하다. 롯데와 현대차 임원의 연봉은 3억원대로 큰 차이가 없지만 직원 연봉에서 2배 이상 차이가 난 셈이다. 롯데 관계자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 회장이 강조해 온 신뢰경영, 투명경영, 정도경영이 정작 현장에선 안 먹히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직원 사기 떨어지면서 사고 속출
직원들 사기가 저하되면서 굵직한 사건·사고도 잇따라 터졌다. 롯데카드는 지난 1월 고객 2600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당했다. 3조5000억원을 들인 그룹 숙원사업 제2롯데월드는 아예 ‘사고 월드’라는 별명이 붙었다. 배관 폭발과 철제 파이프 추락으로 인부 2명이 목숨을 잃었는가 하면 화재, 거푸집 추락 등도 잇따랐다. 신 총괄회장이 평소 “30여 년간 구상해 온 일생일대의 꿈”이라고 강조한 제2롯데월드의 정상 개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실적 부진은 또 다른 고민거리다. 그룹 주력사인 롯데케미칼과 롯데쇼핑은 쌍끌이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그룹 내에서 롯데쇼핑 다음으로 덩치가 큰 회사다. 문제는 화학 업종이 전체 매출의 50% 가까이를 중국 시장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중국 경기가 부진하면 화학회사들의 실적도 덩달아 나빠진다. 지난해 하반기 반짝 회복세를 보였던 화학 경기는 올 1분기 다시 악화했다. 롯데케미칼의 올 1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873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32% 감소할 전망이다. 롯데 관계자는 “보통 화학이 나쁘면 유통이 받쳐 주는 식으로 부문별 상쇄가 있기 마련인데 쌍끌이 두 축이 동시에 안 좋다 보니 고민이 깊어진다”며 “대기업 그룹 가운데 비상경영을 처음 선포한 것도 이 같은 인식이 바탕이 됐다”고 전했다.

그룹 주력 유통 사업 활로 못 찾아
그룹 주력인 유통 부문의 고민은 더 깊다. 모바일 중심으로 온라인쇼핑 시장이 급성장하고 병행수입과 해외 직구가 증가하면서 전통 유통 채널은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국내 42개 점포(아웃렛 10개 포함) 지난해 매출액은 8조5650억원으로 2012년(8조6430억원)보다 0.9% 감소했다. 롯데백화점은 2009년 8.7%, 2010년 12.6%, 2011년 10.5% 등 높은 성장세를 보여 왔다. 그러다 2012년 4.1%로 급락한 데 이어 지난해엔 결국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박종대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2년간 소셜커머스, 병행수입처럼 새로 생겨난 국내 유통 시장의 규모가 수조원대에 달하는데 이들 채널이 대부분 백화점 파이를 잠식했다”고 분석했다.

롯데는 영화·오락·테마파크를 가미한 복합쇼핑몰을 확대해 돌파구를 찾는다는 전략이다. 올해 1조2500억원을 투자해 복합쇼핑몰(3개), 아웃렛(3개), 해외 백화점(2개) 등 8개 점포를 새로 열 계획이다. 한 해 8개 점포를 출점하는 것은 1979년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 개점 이후 처음이다. 12월엔 동부산관광단지에 부산 롯데 복합쇼핑몰도 들어선다. 아웃렛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붙여 경기도 고양(6월)·구리(12월)·광명(12월)점이 올해 차례로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유통 시장의 규모가 제한된 상황에서 복합쇼핑몰 사업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 애널리스트는 “소비 패턴 자체가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복합쇼핑몰 건설이 고객 발길을 어느 정도 유도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회장의 리더십이 집권 4년차를 맞아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 체질 개선, 실적 반전, 미래 신수종 사업 개척이라는 간단치 않은 3개의 큰 숙제를 신 회장이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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