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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칼럼] 삶을 성찰하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중앙선데이 2014.04.27 02:27 372호 27면 지면보기
오스트리아 빈의 시신 없는 모차르트 무덤. 흐느끼는 천사 모습의 대리석상으로 장식했다. [inmozartsfootsteps.com]
“우린 말이오. 6m 넘는 파도를 헤치고도 사고 난 배의 승객 전원을 구했었어요. 그날 풍랑이 일었나요, 파도가 높기를 했나요!” 팽목항 인근 뱃사람들의 분노에 찬 증언이다. 세월호 사고를 두고 숱한 뱃사람들이 같은 말을 한다. 그처럼 잔잔한 날씨에 그 정도 속도로 진행된 전복사고일 경우 대처만 잘했으면 다 살릴 수도 있었다고. 사람들이 슬픔과 분노 속에 못 견뎌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어떻게 이토록 철저한 인재가 있을 수 있는지. 어쩌면 저렇게 구조 과정이 허술하고 책임감 없는 정부가 있는지. ‘이건 나라도 아니야’ 하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져 간다. 저녁에 행인이 줄어들고 술집 손님이 뜸해졌단다. 온 국민이 집단패닉을 겪고 있는 것이다. 어떤 죽음인들 애통하지 않겠는가만 특히 어린 학생들의 희생에 다들 부모 마음으로 억울하고 안타까워한다.

[詩人의 음악 읽기] 진혼곡

망자에 대한 예를 대신해 음악으로나마 조문을 하고 싶다. 죽은 이를 추모하는 미사전례 음악을 ‘레퀴엠(requiem)’, 우리말로 진혼곡이라고 한다. 입당송의 첫 부분이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옵소서(레퀴엠 아에테르남 도나 에이스, 도미네)’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5세기께 뒤파이·오케겜 등의 작품을 효시로 숱한 걸작이 작곡됐는데 모차르트 최후의 작품이자 미완성곡인 ‘4인의 독창자, 합창단, 관현악단 및 통주저음을 위한 작품 K626번’이 특히 사랑받는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묘사되었듯이 검은 옷을 입은 익명의 사내가 병고에 시달리는 모차르트에게 많은 사례금을 줄 테니 레퀴엠을 작곡해 달라고 의뢰한다. 절대로 누가 의뢰했는지, 작품 내용은 무엇인지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고서. 이 때문에 숱한 억측과 소문이 후대에 번져 나갔고 심지어 모차르트 자신을 위한 장송곡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카라얀이 지휘한 브람스의 ‘도이치 레퀴엠’.
장례를 위한 전례음악의 성격을 넘어서 낭만시기에 이르면 그 자체가 감상을 목적으로 한 성격의 레퀴엠이 씌어지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베를리오즈의 ‘합창, 테너독창, 관현악을 위한 레퀴엠’을 들 수 있다. 1835년 파리에서 일어난 대형 테러사건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국민추도식을 위해 작곡되었는데 격정적이고 화려한 선율이 장례식의 엄숙한 분위기와 부조화를 이루는 듯하면서도 진한 감동을 안겨 주는 걸작이다. 베를리오즈가 남긴 여러 작품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역작으로 평가된다.

행사용보다 감상음악에 가깝게 여겨지는 레퀴엠 가운데 또 하나 크게 평가받는 것이 가브리엘 포레의 ‘혼성합창, 소프라노와 바리톤 독창, 오케스트라, 오르간을 위한 레퀴엠’이다. 이 곡은 베를리오즈의 격정적 성격과는 정반대여서 대단히 느리고 조용하며 섬세한 전개를 보인다. 통상 명상적이고 내면적인 레퀴엠이라고 설명하는데 불안한 마음의 표현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극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의 또 다른 레퀴엠으로 드보르자크와 베르디의 작품이 있다. 드보르자크에게서는 창의적 개성이, 사망한 로시니를 위해 작품을 쓴 베르디에게서는 인간적인 따사로움이 돋보인다고 평가된다. 베르디의 레퀴엠은 아마도 가장 많이 애청되는 작품에 속할 것이다. 그들 이후에 씌어진 두드러진 작품으로 1947년 작곡된 모리스 뒤뤼플레의 ‘혼성합창, 메조소프라노, 바리톤, 오케스트라와 오르간을 위한 레퀴엠’이 있다. 작곡가 뒤뤼플레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지만 이 작품만은 명 레퀴엠 반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곡으로 높이 평가된다.

모차르트에서 1966년 초연된 스트라빈스키의 ‘레퀴엠 칸티클스’까지 모든 레퀴엠 가운데 가장 인기 있고 사랑받는 작품을 꼽는다면 무엇일까.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브람스의 ‘도이치 레퀴엠(사진)’을 첫손에 꼽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있을까. 그만큼 도이치 레퀴엠의 품위 있고 진지하며 엄숙한 분위기는 청자를 압도하며 깊은 감동을 안겨 준다. 라틴어 대신 독일어 성서를 사용해 도이치 레퀴엠으로 불리는데 복수의 독창자,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7부 구성의 대곡이다.

이 중 제2곡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Denn alles Fleisch, es ist wie Gras)’ 부분이 이 곡의 명성을 높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과거 음악감상실 ‘르네쌍스’를 드나들 때 베토벤의 로망스와 더불어 마치 간주곡처럼 늘 이 곡이 울려 퍼졌다. 곡을 알리는 칠판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라고 적힌 문장을 보면서 누구나 생의 의미에 대한 성찰, 속된 욕망에 대한 반성을 했으리라.

세월호 희생자와 가족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이 모든 진혼곡을 바친다. 우리 민속의 진혼가들도 함께. 앞으로 이 애통한 마음들을 추스르고 난다면 여러 언론이 지적하듯이 국가 개조에 가까운 시스템 대혁신이 따라야 할 것 같다. 국정 책임자들의 보신주의와 책임 떠넘기기가 도를 넘었다. 그 출발은 지금 우리들 삶의 환경이 정상이 아니라는 인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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