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과 믿음] 내가 아는 가장 착한 신부님

중앙선데이 2014.04.27 02:29 372호 27면 지면보기
글이 안 써진다. 나뿐이 아닐 것이다. 그토록 인파로 북적거리던 극장가도 한산하고 소비도 크게 줄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전 국민적 ‘아연실색’이랄 수 있겠다. 우연의 일치인지 진도 앞바다에서 대형참사가 일어난 날이 기독교의 성주간(수난주간) 수요일이었다. 그로 인해 환희로 울려퍼졌어야 할 부활 찬송은 오히려 슬픔과 비탄으로 얼룩졌다.

이제 심기일전, 애통을 수습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나 역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며 차분히 우리들 모두의 문제를 곰곰이 성찰해 보고 싶어진다. 이 대목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를 약속해 주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통렬한 자성이 생각난다.

“한 도시의 모습은 그 안에 사는 구성원 모두의 얼굴로 만들어진 모자이크 같은 것이다. 지도자나 관리들이 보다 큰 책임을 지고 있겠지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시민도 공동 책임을 지고 있다.”

남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나 자신의 책임부터 추슬러본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오늘 발생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관련해 나에겐 과연 어떤 ‘책임’이 있을까. 나는 그 책임만큼 행동했던 사람인가, 아니면 입만 살아있던 사람인가. 치열하게 짚어보자니, 얼마 전 홀연 세상을 뜬 한 신부가 생각난다.

그 신부는 성금요일, 바로 예수님께서 숨지신 날 새벽녘에 홀로 운명했다. 부고를 접한 순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 착한 신부님이 돌아가셨다고? 그 착한 신부가 벌써!”

그는 내가 한평생 만난 신부 중 가장 착한 신부였다. 그는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나무를 심어주는 신부로 유명했다. 그는 평소 사비를 털어 여러 종의 나무를 확보해뒀다. 그러고는 자신의 트럭에 싣고 다니다 필요하다 싶으면 언제든 심어줬다. 나무뿐 아니다. 나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나눴다.

한번은 그가 관장으로 있던 복지관에 특강 품앗이를 해줬다. 돌아오는 내 차 안에는 누룽지를 비롯한 선물 보따리가 한 가득 실려 있었다. 내가 미얀마 길에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는 현지 신부에게 전해 달라며 돈이 든 봉투를 건네기도 했다. 그는 2000년대 초 미얀마 교민 사목의 소임을 맡아 헌신하다 당뇨병을 얻었다. 전언에 따르면 몸을 사리지 않고 일만 해서 그랬단다. 우리를 놀래킨 돌연사의 원인도 과로란다.

나는 평소 그가 누구를 험담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사회 비판도 모른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찾을 뿐이었다. 없는 사람은 도와주고, 필요한 곳엔 나무를 심고,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낌없이 퍼줬다. 입은 다물고, 책임만 다한 신부님! 장례식장에 모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그의 숨은 덕행을 기렸다.

미얀마에서 조문을 왔던 한 형제는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유영훈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은 미얀마에서도 ‘예수님이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았다’고 하시며 나무심기와 목수 일을 좋아했지요. 시간이 날 때마다 나무로 책상·걸상과 신발장을 만들어 고아원 보내시고 남은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셨지요.”

그는 그러면서 “장례 미사에서 한 신부님이 조사를 읽다가 ‘세월호 사고로 죽은 어린 학생들이 하도 딱해 하느님이 그 인솔자로 유 신부를 고르셨나 보다’라며 애써 위로를 삼던 말에 저도 큰 위안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정말 유 신부가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인솔하고 하늘나라에 갔으면 좋겠다.



차동엽 가톨릭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무지개 원리』 『뿌리 깊은 희망』 등의 저서를 통해 희망의 가치와 의미를 전파해 왔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