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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고대사] 성씨로 본 현대 한국인, 절반 이상은 신라인의 후손

중앙선데이 2014.04.27 02:48 372호 28면 지면보기
경주에 있는 성씨의 본거지. 1 박씨의 조상인 박혁거세의 알이 발견됐다는 신화가 서린 나정. 2 김씨의 조상인 김알지의 탄생신화가 서려 있는 계림. 3 급량부 이씨의 조상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표암봉. [사진 권태균]
한민족의 시조는 누구인가? 단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 인식은 신라 내물왕 이전 역사를 은폐하고 만들어낸 잘못된 것이다. 은폐·축소됐던 신라 내물왕 이전 역사를 떠나면 신라·신라인이 한국·한국인에게 전해준 역사적 유산 두 가지를 우선 찾을 수 있다.

<10> 신라·신라인의 유산

하나는 한국인의 다수가 신라인을 시조로 한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현재 한국의 사회적·정치적인 틀이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회에서는 먼저 신라인이 다수 한국인의 조상이라는 매우 특별한 사실을 주목하겠다.

1985년(경제기획원 조사)에 있었던 인구 및 주택센서스 결과를 보자. 당시 274개 성(姓)이 조사됐는데, 전체 인구 4044만여 명 중 김씨(878만여 명, 그중 경주 김씨는 152만여 명, 김해 김씨는 376만여 명)·이씨(598만여 명, 그중 경주 이씨는 152만여 명, 전주 이씨는 237만여 명)·박씨(343만여 명, 그중 밀양 박씨는 270만여 명)·최씨(191만여 명, 그중 경주 최씨는 87만여 명)·정씨(178만여 명, 그중 경주 정씨는 30만여 명, 동래 정씨는 41만여 명)가 5대 성으로 나타났다. 2000년에도 286개 성 중 같은 성이 5대 성으로 나타났다. 5대 성은 전체 인구의 반이 넘었다. 김씨와 이씨의 비율은 어느 경우에도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넘었다. 그러니 위와 같은 문답이 생겨난 것이다.

5대 성은 여러 본관으로 나뉜다. 그중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본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5대 성의 출발을 보자. 내물왕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최치원의 초상.
신라의 건국신화에 이씨·최씨·정씨를 포함한 육부성의 조상이 모두 나온다. 『삼국유사』 2,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는 “진한의 땅에는 옛날에 6촌이 있었다. 첫째는 알천양산촌이니 남쪽으로 지금(고려)의 담엄사로 촌장은 알평(謁平)이다. 처음에 하늘에서 표암봉에 내려오니 급량부 이씨(李氏)의 조상이 되었다. 둘째는 돌산고허촌으로 촌장은 소벌도리(蘇伐都利)다. 처음에 형산에 내려오니 이가 사량부 정씨(鄭氏)의 조상이 되었다. … 넷째는 자산진지촌이니 촌장은 지백호(智伯虎)다. 처음에 화산에 내려오니 이가 본피부 최씨(崔氏)의 조상이 되었다”라 하여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 『삼국사기』에는 사량부의 성을 최씨, 본피부의 성을 정씨라 했으나, 『삼국유사』에는 사량부를 정씨, 본피부를 최씨라 하여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경주 이씨는 알평을 조상으로, 경주 정씨는 지백호를 조상으로 보고 있다. 최치원을 조상으로 삼고 있는 경주 최씨는 소벌도리의 자손이 된다.

다음은 박씨와 김씨의 종성(宗姓). 박씨는 『삼국사기』 1, 『시조 혁거세거서간』조와 『삼국유사』 2,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 나온다. 현재 박씨들 중에는 혁거세를 시조로 하는 밀양 박씨를 본관으로 한 사람들이 많다. 김씨 중에는 김유신 장군을 중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가 많다. 그러나 신라인 김유신과 그 일족이 아니었다면 김해 김씨는 번성할 수 없었다. 알지를 시조로 하는 경주 김씨도 적지 않다. 한편 신라의 왕을 배출했던 석씨 세력은 16대 흘해왕(310~356)을 마지막으로 신라의 왕위계승에서 밀려나 그 세력이 줄어 그 후손들이 5대 성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를 그대로 믿자는 것은 아니다. 5대 성의 각 성은 여러 본관으로 나뉜다. 많은 본관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신라인을 조상으로 하고 있다. 5대 성에 포함되지 않은 종성 석씨와 육부 성인 손씨·배씨·설씨를 포함하거나, 원래 신라 종성인 김씨를 가졌던 안동 권씨 같은 성을 포함하면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사람의 비중은 더 커진다.

주목할 사실은 현재 한국인 중 고조선·부여·백제·고구려인을 시조로 하는 성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성을 가진 한국인이 다수라는 사실에 대해 무엇인가 설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것과 같이 신라의 삼한통합으로 옛 백제와 고구려인들은 이후 신라에서 사회적·정치적으로 도태되었다.

대신 대신라(소위 통일신라) 시대에 종성과 육부성을 가진 신라인들은 그 수가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삼한통합으로 늘어난 토지와 인민을 지배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 조직을 편성했고, 그에 따라 보다 많은 관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직에는 종성과 육부성을 가진 사람들이 진출하였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신라가 삼한통합을 한 후 옛 신라 땅에는 상주·양주·강주, 옛 고구려 땅에는 한주·삭수·명주, 옛 백제 땅에는 웅주·전주·무주의 9주를 설치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삼한통합 후 신라의 통치 영역과 통치 인구가 3배 정도 늘어난 것을 뜻한다. 그리고 685년에는 영(令)-경(卿)-대사(大舍)-사(史)의 4단계 관직체계를 영-경-대사-사지(舍知)-사의 5단계 체계로 바꾸어 신료의 수를 늘렸다.(『삼국사기』 38, 직관 상) 요즘으로 보면 계장 단계를 하나 더 늘린 것이다. 그 밖에도 삼한통합을 전후하여 조부(調府)의 경(卿)을 한 명 더 늘리는 식으로 관부에 따라 복수의 관직을 설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문무왕 18년(678)에 선부(船府)를 새로 설치한 것은 그 한 예다.(『삼국사기』 38, 직관 상) 이는 대신라 시대에 한국역사를 이끌어 가던 지배세력으로서 종성과 육부성을 가진 사람들의 수를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 층을 두텁게 만들었다.

대신라 시대에 종성과 육부성을 가진 사람들은 왕경에만 머물러 산 것이 아니라 지방으로 이주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원성왕계 후손들의 왕위계승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방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고 지방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원성왕과 왕위계승 다툼에서 밀려 명주(현재 강릉)로 이주한 김주원(강릉 김씨의 시조가 됨)이 그 예다.(『삼국유사』 2, 『원성대왕』)

『삼국유사』 2, 『처용랑·망해사』조를 보면 헌강왕대(875~886)에는 왕이 포석정에 행차했더니 남산의 신이 임금 앞에서 춤을 추었고, 금강령에 행차하니 북악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고, 동례전의 잔치 때에는 지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다고 한다. “『어법집(語法集)』에는 그때 산신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되 ‘지리다도파도파(智理多都波都波)’라 한 것은 대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사태를 알고 많이 도망했으므로 도읍이 장차 파괴된다는 말을 한 것이다”고 나온다. 헌강왕 대에 이르면 이미 신라 왕경의 지배세력들(현재 5대 성을 포함한)은 그들이 토지나 노비를 갖고 있던 지방으로 내려가 자리 잡고, 소위 후삼국 시대라고 하는 전국(戰國)의 상황을 헤쳐 나가, 후일 고려의 지배세력이 될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고려는 역성혁명을 통해 건국된 나라로 건국 초부터 신라의 지배세력과 지방행정 조직 등 신라의 사회적·정치적 유산을 바탕으로 나라를 경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한통합을 이룬 신라인들이 옛 백제와 고구려인들을 사회적·정치적으로 도태시킨 것과 달리 고려에서는 옛 신라인들을 통하여 왕정을 펴나갈 수밖에 없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선 것도 역성혁명으로 고려의 사회적·정치적 유산을 바탕으로 나라를 세운 것이다.

고려에서는 신라의 골품세력들이 향리층이 되고, 조선에서는 고려의 향리들이 양반세력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신라인을 조상으로 하는 5대 성을 가진 사람의 수가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늘어난 것이다.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5대 성을 가진 사람들이 고려와 조선의 각종 과거시험에 다수가 합격하는 등 정계 진출을 하며 그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5대 성을 가진 세력들이 번성한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세종장헌대왕실록』 151, 『전주부』 조를 보면 토성(土姓)이 아홉인데 그중에 이씨가 있다. 여기 나오는 전주 이씨는 알평을 시조로 하는 경주 이씨에서 갈라진 본관으로 보인다. 전주 이씨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이래 왕을 배출한 세력으로서 전주 이씨는 급격하게 번성해 나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5대 성은 아니나 조선시대 양반가문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예가 있다. 『양반의 사생활』(하영휘 저, 2008)의 주인공 조병덕(1800~1870)을 주목할 수 있다. 조병덕은 양주 조씨(趙氏) 20세손으로, 19세손인 영의정까지 지낸 조두순(1796~1870)과는 13촌 관계에 있었다. 조병덕은 족숙(族叔)인 조두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조병덕의 둘째아들 조장희의 진사 합격에 조두순의 영향력이 행사되었고, 1858년 4월 토색질을 한 범인을 잡으려고 교졸(校卒)들이 조병덕의 집에 난입하자 집에 있던 사람들이 교졸들을 결박하고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조두순에게 알려 사건을 해결하는 등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는 지방에 머물던 조병덕이 영의정까지 지낸 조두순의 도움으로 그 세력을 유지한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은 다른 씨족이나 본관을 가진 가문에서도 마찬가지 일이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5대 성을 가진 사람들은 신라의 진골과 6두품을 거쳐 고려의 향리층, 조선의 양반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오랜 기간 동안 일족들이 서로 밀고 끌어주며 그 세력을 번성시킨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어떤 가문(종족, lineage)은 번성하고 어떤 가문은 사라졌지만 결과적으로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5대 성(씨족, clan)은 번성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성씨나 따지고 족보나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신라의 삼한통합으로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대신라를 거쳐 고려와 조선에서 번성했다는 사실을 은폐하지 말자는 것이다. 혹 5대 성에 속하지 않는 한국인들의 경우 신라의 유산을 잇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분들도 윗대의 여러 조상, 어머니, 할아버지 대의 세 분, 증조할아버지 대의 일곱 분 중에는 확률적으로 반 정도가 5대 성을 가진 분들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이에 거의 모든 한국인은 신라 오리진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졸, 문학박사, 서강대 사학과 부교수, 교수, 서강대 총장 역임, 현재 서강대 지식융합학부 석좌교수. 『신라국가형성사연구』 등 22권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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