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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가 개조 (3) 시늉에 그칠 '국가개조'라면 접어라

중앙일보 2014.04.26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세월호 참상이 열흘째 이어지고 있다. 침몰 당시 배에서 119로 첫 신고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학생의 시신이 인양됐다. “살려주세요” 했던 학생의 애원을 우리는 들어주지 못했다. 25일 밤 현재까지 국민 모두가 두 손 모아 고대하는 기적의 생환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차가운 주검만 하나둘씩 늘어난다. 그런가 하면 선장과 선원들의 가증스러운 행적이 연일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선원들이 7m 옆 객실 승객을 버려두고 자기들끼리만 탈출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우왕좌왕하는 정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해경, 국민은 안중에 없이 자리만 탐하는 ‘관피아(관료+ 마피아)’와 함께 사회전반에 깔린 도덕 실종과 안전불감증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한국은 대표적인 위험사회다.” 『위험사회』로 유명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내한했을 때 한 말이다. 경이로운 경제성장과 과학기술 혁신, 광속(光速)의 사회변화와 격렬한 남북 대치 등이 한국을 위험사회로 만들고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극단적 위험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안전의식이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안전의식이 정책과 기업활동, 생활 속에 파고들지 않으면 세월호 침몰 같은 대형 참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우선 정부는 이제라도 사회안전을 최상위 국정목표로 삼아야 한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적 의무인데도 총체적 무능과 부실로 허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함께 ‘넘버 1’ 국정목표로 창조경제를 제시했다. 사회안전도 언급했지만 상위 국정목표는 아니었다. 올해 초 집권 1년을 맞아 내놓은 대통령의제도 창조경제와 궤를 같이하는 ‘경제혁신 3년계획’이었다. 위험사회를 안심사회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최고 미션을 ‘사회의 안전과 통합’으로 바꾼 뒤 이를 바탕으로 세부전략을 짜야 한다. 나아가 ‘사회안전 3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혁신도 중요하지만 기업과 사회공동체, 시민 각자의 의식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속도’를 위해 ‘안전’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 ‘도망간 선장’으로 상징되는 극도의 이기주의도 극복돼야 한다. 시민적 교양의 핵심인 탐욕의 절제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사회적 각성이 있어야 한다. 이게 없으면 대한민국은 약육강식의 본능이 지배하는 야만의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반면 사회통합 수준은 아직 후진국이다. 2009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중 기술혁신 6위, 금융발전 8위지만 사회안전은 꼴찌(31위)라는 연구 결과가 얼마 전 발표됐다. 경제규모에 비해 심하게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휴대전화와 반도체, 자동차만 잘 만든다고 세월호 참사를 초래한 무능력이 용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가 무엇을 개조해야 할지는 분명해졌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하고 기업과 공동체, 개인은 최소한의 윤리와 공동체 의식을 지켜나가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우리는 건국 이후 지금까지 앞만 보고 빨리 달려왔다. 그 속도가 화려한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이젠 속도를 줄이고 뒤도 돌아봐야 한다. ‘통곡의 바다’가 끝나고 난 뒤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수북이 쌓여 있다. 결연한 각오로 위험사회의 썩은 기둥을 새것으로 갈아 끼워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국가개조’가 성공하려면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추악한 카르텔인 관피아를 완전히 해체하고 낙후된 사회시스템을 혁파해야 한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탐욕을 자제하는 시민적 교양의 함양도 필수적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국민의 설득을 얻는 과정이 요구된다. 국가개조의 대열에는 야당과 시민단체도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 말로만 ‘100% 대한민국’이 돼선 안 된다. 적당히 개각이나 하고 어물쩍 넘어갈 생각이라면 ‘국가개조’라는 구호를 지금이라도 접는 게 좋을 것이다. 국민은 지난 여러 정부에서 ‘국가 개조’의 요란한 구호가 국면전환용으로 사용되는 것을 수차례 목격해왔다. 이왕 ‘국가 개조’를 들고 나왔다면 제대로 끝장을 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비상한 각오와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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