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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다시 거칠어진다는데 … 왜 너만 안 돌아오니"

중앙일보 2014.04.25 01:23 종합 2면 지면보기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왼쪽부터)이 24일 오후 진도 팽목항 가족대책본부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대화하고 있다. 가족들은 이 장관과 김 청장에게 더딘 수색 작업에 대해 항의하며 마지막까지 수색 작업에 총력을 펼쳐달라고 요구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따가운 햇살이 부둣가에 내리꽂혔다. 아이 잃은 부모들은 강한 햇살 아래서도 움직일 줄 몰랐다. 스무 명 남짓한 부모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부두 쪽으로 들어오는 배를 기다렸다. 부모들의 콧등과 양 볼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별과 기다림의 팽목항
조류 느린 소조기 끝나는 날
애타는 가족들 "구조 늦다" 항의
이주영 장관, 김석균 해경청장
밤늦게까지 대책본부에 갇혀



 “내일부터는 바다가 거칠어진다는데…. 왜 너만, 너만 안 오는 거야….” 한 엄마가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2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선 슬픈 해후와 애절한 기다림이 교차했다.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를 마주한 부모들은 통곡했고, 시신조차 만나지 못한 부모들은 한없는 기다림에 지쳐갔다. 오전 10시30분쯤 가족대책본부 텐트 안에서 고성이 흘러나왔다. 전날 오후 10시30분 이후 12시간째 추가로 발견된 시신이 없는 상태였다. 서른 명 남짓한 실종자 가족들과 해경 직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실종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의 한 아빠가 목소리를 높였다.



무인해저탐색로봇 크랩스터가 지난 23일 촬영 한 세월호의 초음파 영상이 24일 공개됐다. 세월호가 90도로 기울어진 채 해저에 가라앉아 있다. 왼쪽이 선미다. [사진 선박해상플랜트연구소]
 “더 이상 앉아서 브리핑만 받고 있을 순 없습니다. 한시가 급해요. 우리가 직접 작업 상황을 볼 수 있게 배편을 마련해 주세요.”



 해경 직원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해경은 늘 똑같은 대답이었다. 가족들은 또다시 분노했다. 결국 해경 측이 사고 해역으로 나갈 수 있는 배편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종자 가족 24명이 곧바로 배를 타고 구조 현장으로 나갔다.



 오전 11시30분 팽목항에 시신 4구가 실려왔다. 시신들엔 160번부터 163번까지 번호가 붙었다. 실종자 가족 수십 명이 선착장으로 몰려갔다. 검시관이 시신 의 특징을 설명했다.



 “어쩔까, 어쩔까, 맞네 맞어. ○○아!”



 한 엄마가 쓰러졌다. 시신을 확인한 가족들은 거의 실신한 상태로 400m쯤 떨어진 신원확인소로 건너갔다. 대책본부 텐트 옆에선 40대 아빠가 자신의 어머니와 손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우리 손주 아직 안 떠올랐어? 살아는 있는 거야?”



 “살아있는 거 기대 안 해요. 오늘 내일 안 되면 영영 못 찾을지도 모른다는데….”



 24일은 조류가 가장 느리고 수위도 낮아지는 ‘소조기’가 끝나는 날이었다. 이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은 이날까지 구조 작업을 마쳐달라고 요구했었다. 구조 작업과 선체 인양 가운데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중이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가족들은 피가 말라가고 있었다.



 부둣가 가족대기소 뒤에서는 50대 두 아빠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가 나오는 거 봐야지.”



 “내가 솔직히 씻을 마음도 없는데 내 새끼가 나와서 ‘아빠 머리가 왜 이래?’ 물어볼까 봐 머리는 감아. ○○야, 언제 나오니…. ”



 오후 2시40분쯤 시신 4구가 추가로 들어왔다. 그러곤 한참 소식이 없었다. 오후 4시20분쯤 격앙된 부모들이 팽목항 대합실에 있던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을 대책본부로 끌고 왔다. 일부 부모가 최 차장을 강하게 밀치면서 옷 단추가 떨어졌다. 오후 5시30분쯤엔 인근에 있던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도 대책본부로 떠밀려 왔다. 순식간에 100여 명의 부모들이 이들을 에워쌌다. “내 새끼 꺼내달라고!” 고함이 쏟아졌다.



 “배가 깊이 들어가니까 구조하는 게 복잡합니다.” 김 청장이 해명했다. 그럴수록 가족들은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 장관 등은 대책본부에 갇혔다가 자정께 풀려났다.



 24일 하루 동안 인양된 시신은 16구다. 오후 11시30분 기준으로 세월호 참사 사망자는 175명이 됐다. 실종자는 127명. 대다수가 단원고 학생이다. 아직도 생사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100명 넘게 바닷물 속에 있다. 대책본부 오른쪽 방파제 난간에는 응원 메시지를 적은 노란 리본 수십 개가 매달려 있었다. ‘꼭 다들 살아서 돌아와라.’ 해는 저물었고 부둣가엔 애타는 부모들의 외침만 텅텅 울렸다.



 ◆구조 난항 예상=소조기가 24일로 끝남에 따라 수색작업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다음 간조기는 15일 뒤쯤 다시 온다. 군·경은 25일 이후에도 구조작업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정강현 기자, 진도=권철암·채승기·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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