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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성장에 가려진 불통·불공정, 수술로 도려내자"

중앙일보 2014.04.25 00:39 종합 14면 지면보기
공과 사의 문제, 직업윤리의 함양 같은 덕목은 교과서 속에나 존재했다. 릴레이 인터뷰 두 번째 순서는 이승환(58·사진) 고려대 철학과 교수다. 그는 공공의식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다. 보다 포괄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문제라고도 했다. 불공정 관행이 일반화되면서 결국 기초적인 윤리의 실종과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인문·사회학자 릴레이 인터뷰 ② 이승환 고려대 교수
공공의식 실종 … 참사 되풀이 불러
각자 본분·원칙 지키기 실천해야

 국립대만대에서 석사를, 하와이대에서 박사를 한 그는 동아시아 전통 유교에서 공과 사의 관계를 연구해 왔다. ‘공공 공간의 행동윤리’란 제목으로 최근 네이버문화재단 ‘문화의 안과밖’ 강연을 하기도 했다. ‘공인들의 거짓말’이 만연된 풍조를 안타까워하는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세월호 침몰,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은 무역규모가 세계 10위권이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일지 모르나 안전불감증이나 부패 정도는 거의 후진국 수준이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나지 않았나. 500명이 사망한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보다 규모는 작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안전 시스템이 이 정도라는 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실제로 후진국이니까 후진국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화려한 성장의 외피에 가려진 부끄러운 속내를 파헤쳐야 한다. 수술로 도려낼 것은 도려내고 이후에 산적한 문제들을 차분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왜 이런 사고가 발생할까.



 “수사를 통해 철저히 밝혀야겠지만, 선박 운항과 관련된 사람들이 작건 크건 규칙이나 원칙을 죄다 어기거나 무시한 결과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밝힌 것 같다. 선박 안전검사, 규정에 따른 화물적재, 선장과 선원들의 책임의식 발동 등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세월호 출항부터 침몰 이후까지의 과정에서 어떻게 하나같이 원칙이 무시될 수 있을까.



 “가령 선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승객을 구하려 했다면 책임의식과 용기,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배려 등 그야말로 삶의 기본적인 덕목이 작용했어야 한다. 동양사상에서 덕성(德性) 혹은 양심이라고 하는 인간의 본래 마음이 발휘되지 못했다. 도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결과이자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도 성장과정에서 우리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덕성의 발현을 심각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인격적인 덕의 발현을 통한 명예로운 인간의 길은 뒷전이었던 것 아닌가. 너도나도 한탕주의, 연고주의, 정실주의, 기회주의에 빠져 졸부나 되려고 했다. 우리의 근대화 과정은 인간성을 기르기에 너무 척박한 토양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유언비어, 일부 공인들의 부적절한 언행 등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하긴 힘들다. 민간 잠수사를 자처하며 유언비어를 퍼뜨려 유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20대 여성의 경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상태인 것 같다. 자기의 인격과 관련해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가치 기준이 형성돼 있지 않거나 공동체가 요구하는 가치 기준이 개인에게 내면화되어 있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제2, 제3의 세월호 사건을 막으려면.



 “할 일이 너무 많아 한 방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 각자가 민주적인 ‘마음의 습속(habit of heart)’을 체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선거철에 표 한 번 찍는다고 민주주의가 아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책임을 분명히 수행하면서, 공동체에 유익한 존경할 만한 사람을 공직자로 뽑아야 한다. 그래야 대화와 소통이 가능해지고 배려와 관용이 넘쳐 이번 사고를 부른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관행, 독선과 불통, 성과 지상주의를 없앨 수 있다.”



 -말처럼 쉬울 것 같지는 않다.



 “선진국이 되려면 고쳐야 한다. 이번에 제대로 못 하면 선진국이 못 된다. 솔직히 가장 걱정스러운 건 원전이다. 운영사와 공직자가 하나의 부패 고리로 얽혀 있는 것은 아닌가. 꺼진 불도 다시 본다는 자세로 되돌아보자. 지금과 같은 식으로 가면 원전 사고도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묘수는 없다. 미래 세대를 생각해 묵묵히 자기 본분을 다해야 한다. 효과는 천천히 나타날 것이다. 작은 실질들이 축적돼야 한다.”



신준봉·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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