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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리먼 침몰 직전, 주주들 몰래 5100억원 챙긴 풀드

중앙일보 2014.04.25 00:26 종합 18면 지면보기

세월호 선장과 승객 사이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정보의 갭이다. 선장은 배가 좌초한 운명의 순간 사태의 심각성을 금세 알아챘다. 반면에 10대 학생 등 승객들은 선장 쪽의 일방적인 정보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 결과는 참극이었다. 이런 선장-승객 딜레마는 현대 주식회사 시스템의 숙명이기도 하다. 기업의 선장 격인 최고경영자(CEO)가 우월한 정보를 바탕으로 농간을 부릴 때 승객이라 할 수 있는 주주·종업원 등은 속수무책이었다. 그 정보 불평등이 낳은 비극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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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기업 먼저 탈출한 선장들
1869년 금 파동 주역 철도왕 굴드
미공개 정보 악용한 CEO의 시초
분식 회계로 투자자 속인 크루거
1933년 경영정보 공개법 계기로

현대 주식회사 CEO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전문가들이 이런 학설과 저런 주장을 내놓고 입씨름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엔 15세기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를 현대 CEO의 원형으로 꼽는 전문가들도 있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출신이었지만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투자를 받아 1492년 금과 보물을 향한 탐험에 나섰다. 당시 이사벨 여왕은 믿을 만한 회계사를 콜럼버스 배에 태워 보냈다. 주주-CEO-회계감사로 이뤄진 현대 주식회사 경영구조와 흡사한 모습이다. 단, 콜럼버스가 배를 난파시키거나 회계부정을 저질렀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500여 년이 흐른 2000년대 들어 ‘악덕 비즈니스 캡틴(CEO)’들이 속출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CEO인 리처드 풀드다. 파이낸셜타임스(FT), CNN, 시사주간 타임 등이 ‘사상 최악의 CEO’로 선정했을 정도다. 그럴 만했다. 풀드는 자산 규모 세계 4위 투자은행을 침몰시켰다. 2009년 뉴욕타임스(NYT) 등은 “풀드가 한 짓 가운데 최악은 리먼 부도가 아니라 파산 직전 주주 몰래 보유 주식 4억9000만 달러(약 5100억원)어치를 팔아치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그는 회사를 파산시킨 뒤 퇴직금으로 2200만 달러(약 230억원)를 받아 챙겼다.



 리먼보다 앞선 2008년 3월 위기를 맞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CEO 제임스 케인은 회사 위기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주식 6100만 달러어치를 팔아 현금을 장만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부실 자산을 숨긴 채 JP모건에 회사를 넘겼다. 그 바람에 JP모건도 한때 위기에 몰려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케인은 위기의 순간 구조에 나선 다른 회사까지 수장시킬 뻔했다.



 악덕 CEO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바로 미 에너지 기업 엔론의 켄 레이와 제프리 스킬링이다. 두 사람은 엔론이 파산한 2001년 앞서거니 뒤서거니 CEO를 맡았다. 이들은 분식회계를 일삼았고 파산 직전 주식을 팔아치웠다. 또 2000년엔 캘리포니아 전력 위기를 조장하기도 했다. 그나마 두 사람이 리먼의 풀드보다 악덕 경영자 순위에서 낮은 이유는 바로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풀드는 리먼 파산 5년 뒤인 2013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리먼 파산 직후 NYT는 “엔론 이후 리먼 파산까지‘악덕 경영자(Rogue Executives)’들에겐 공통적인 특징 하나가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 ‘미공개 정보 이용’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말한 ‘정보의 비대칭성’ 악용이다. 미국 역사에서 미공개 정보를 본격적으로 이용한 인물은 바로 19세기 철도재벌 제이 굴드(1836~92)라는 게 정설이다. 그는 1869년 당시 대통령인 율리시스 그랜트의 처남을 활용해 재무부 금 매매 정보를 얻어냈다. 이를 이용해 금값 끌어올리기(시세조종)를 해 금 파동(블랙 프라이데이)을 일으켰다. 또 철도회사 유니언퍼시픽의 대주주이면서 대표이사였던 그는 뇌물 스캔들을 일으켜 회사를 위기에 빠뜨린 뒤 1883년 주식을 처분하고 탈출했다.



 하지만 미공개 정보 이용이 법적으로 금지된 시기는 대공황 와중인 1930년대 초였다. 계기는 스웨덴 출신 재벌 이바르 크루거(1880~1932)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1908~2006)는 그를 ‘횡령질의 다빈치’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크루거가 순환출자 방식으로 거대한 기업 선단을 꾸렸다”며 “자회사들의 실적을 부풀려 모회사 장부를 분식해 투자자와 채권자를 속였다”고 설명했다. 크루거의 속임수는 1929년 주가 대폭락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숨기고 채권을 발행해 자금난에서 벗어나려 했다. 다만 그가 악덕 비즈니스 캡틴 가운데 정상 참작이 되는 건 난파선을 탈출하기 직전인 1932년 사살돼서다. 크루거 기업집단이 붕괴하자 미국 정부는 1933년 증권법을 제정해 경영정보 공개를 의무화했다.



 기업이 정보를 공개한다고 해서 정보의 불평등이 해결된 건 아니다. 특히 복잡한 금융 메커니즘의 정보 비대칭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사달이 났다. 규제완화 등으로 파생상품 게임이 본격화한 1980년대였다. 당시 골드먼삭스급 투자은행인 드렉셀번햄램버트(DBL) CEO인 프레드 조셉(1937~2009)은 기업 사냥을 적극 알선했다. 이때 기업사냥꾼들이 인수합병(M&A) 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정크본드를 인수해 대부조합(S&L) 등에 팔아먹었다. 이 과정에서 정크본드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숨겨 끝내 대부조합 사태를 일으켰다. 공적자금 2500억 달러가 투입된 대형 참사였다.



 1980~90년대엔 악덕 비즈니스 캡틴들이 또 하나의 병기가 장착된다. 바로 구조조정이다. 가전제품 업체인 선빔의 전 CEO인 앨 던랩은 ‘전기톱’이란 별명에 걸맞게 직원들을 마구 잘랐다. 기업을 회생시키는 차원을 넘어선 마구잡이 해고를 단행했다. 목적은 바로 신속한 실적 개선을 통해 자신의 성과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구조조정은 분식회계 등으로 이뤄진 거짓이었다. 선빔은 2001년 파산을 선언해야 했다. 그런데도 던랩은 성과급으로 1600만 달러를 받았다.



 최근 NYT는 CEO와 노동자 임금 격차를 지적한 기사에서 “현대를 주주자본주의 시대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며 “경영자 자본주의 시대라고 불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세계 경제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악덕 경영자들의 기업 파산 스토리가 역사의 고비마다 얼룩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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