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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독일이 일본에 전하는 교훈

중앙일보 2014.04.25 00:10 종합 29면 지면보기
요헨 비트너
독일 시사 주간지 ‘디 차이트’
정치 에디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웃 나라들과 화해하지 못한 독일을 상상해보자. 전쟁 중 저지른 만행을 후회하는 데도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못하고 소외됐다면? 군사 동맹을 체결할 권리를 영원히 박탈당했기 때문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가입하지 못했다면?



 게다가 경제는 계속 침체 중인데, 이웃한 비(非)민주 국가는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국방 예산을 확대하며 다른 이웃 나라들과 함께 독일 영토의 일부를 점유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독일은 군국주의 침략국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주변 국가들에 대한 최근 일본 정부의 완고한 태도를 일본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위해 독일을 일본에 대입해 봤다. 일본의 주장은 공감이 간다. 일본 관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7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 독일처럼 ‘정상 국가(normal country)’가 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상 국가’라고? 언뜻 보면, 참 소박하고 이해할 만한 소원이다. 그러나 ‘정상’의 의미는 어렵다. 어떤 국가도 100% ‘정상’이 될 수는 없다. 따분하고 ‘늙은’ 독일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지금은 재무장할 권리를 포함해 ‘정상 국가’가 되려는 일본의 움직임이 동아시아 주요국 사이에서 불신의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 관료나 관측통들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다. 양국 간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경험과 지금 일본의 현재 입장을 비교해 보면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교훈은 ‘정상 국가’는 당연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구하고 노력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이다.



 전후 일본이 아무 이유 없이 독일과 다른 길을 간 것은 아니다. 일본은 과거에 대한 인식을 설정하는 데 분명 독일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일본 외무성 관료는 일본 국민이 과거사와 관련해 ‘사죄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이웃 나라 중국은 일본과 화해하는 데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중국은 오히려 난징 대학살과 대대적 위안부 동원과 같은 일본의 과거 잘못을 활용해 새로운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리적 요인도 한몫한다. 일본은 섬나라지만, 독일은 9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쾰른에서 파리로 갈 때처럼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갈 수는 없다. 문화 교류가 긴밀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에라스뮈스 교환학생 프로그램과 같은 실생활형 사회 네트워크가 태평양 지역에는 없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장기적 평화 구축을 위해선 누군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런 부담을 져야 할 의무가 있는 나라는 우선적으로 일본이다.



 독일과 비교하는 게 의미 있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바르샤바의 게토 봉기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처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난징 대학살 기념관(侵華日軍南京大屠殺遇難同胞紀念館) 앞에 무릎 꿇고 속죄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전후 과거사 참회 과정(Vergangenheitsbew<00E4>ltigung)에서 독일이 얻은 교훈이 있다면, 강렬한 상징적 행위가 단순 사실보다 더 큰 도움이 되는 때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프로파간다가 난징 대학살 희생자 수를 부풀린다는 일부 일본 학자의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문제를 푸는 가장 쉬운 길은 오래 기억될 강렬한 성명서로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는 것이다. 독일이 국제사회에서 ‘정상’에 가까운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은 무엇보다 독일이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려고 끈질기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다른 교훈도 있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고 느끼더라도 다른 국가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유혹을 이겨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선례를 따라 동북아 공동 역사교과서를 발간하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에 왜 일본 정부가 반응하지 않느냐고 일본 공무원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일본 정부가 해당 사안과 관련해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제안서도 받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만약 독일이 프랑스나 폴란드가 화해 초대장을 먼저 보내주길 기다렸다면, 독일의 지금 세대는 여전히 적국에 포위됐다는 불안감 속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화해에는 용기와 관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화해를 간절히 원해야 한다. 화해하지 않는다면 ‘정상 국가’로 가는 길은 계속 막혀 있을 것이다. ‘정상 국가’란 ‘이웃 나라들의 신뢰를 얻고 누리는 나라’라고 정의할 수 있다. 화해는 원하는 것을 얻게 해준다. ‘정상 국가’로 도약하는 게 화해의 보상이다.



 동아시아는 1914년의 유럽처럼 이웃 나라들을 위협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반대의 길을 택할 수도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 동아시아는 그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일까. 이웃 나라들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그 길을 벗어날 책임은 일차적으로 일본에 있다. 아마도 ‘정상 국가’임을 증명하는 최상의 방법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화해를 청하는 것이다.



요헨 비트너 독일 시사 주간지 '디 차이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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