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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마음 아파도, 장은 봐야죠

중앙일보 2014.04.25 00:05 경제 1면 지면보기
세월호 침몰 8일째인 지난 23일 서울 중구 회현동 남대문시장. 쇼핑객이 거의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세월호 침몰 이후 여가와 소비활동이 멈추자 과도한 경기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뉴스1]


수학여행 전문 여행사인 오케이에듀투어를 운영하는 김종필 사장은 24일 고용지원센터에 다녀왔다. 김 사장을 포함, 직원 8명의 생업이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1만여 명, 1억5000여만원의 여행 계약이 모두 취소됐다”며 “직원들에게 무급 휴가를 줘야 하는지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지 고용지원센터에서 상담하고 오는 길”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수학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는 서울에만 40여 곳. 이들은 올 상반기를 넘기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다른 여행업체 관계자는 “전세버스·식당 등 수학·단체여행을 전문으로 했던 곳들도 거의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충격으로 얼어붙은 내수
골목상권·영세상인 직격탄
관광·축제 줄어 지방도 타격
경기 회복 불씨 꺼질까 걱정



 세월호 사고로 충격에 빠진 소비자들이 외출과 소비를 중단하자 ‘내수 시계’도 멈춰 섰다. 5월이 최대 대목인 내수 업계는 한숨만 쉬고 있다. 사업 무대가 글로벌 시장인 주요 대기업과 달리 내수에 목맨 골목상권과 영세상인들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다. 그간 관광과 축제에 적지 않게 기대온 지방 경제의 위축도 심상치 않다. 한국관광공사에 의하면 지역 축제는 전국적으로 80건 넘게 취소 또는 연기됐다. 하지만 온 국민이 슬픔에 잠긴 상황에서 내색조차 못하고 발만 구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간신히 되살아난 듯한 경기 회복의 불씨가 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도 지동시장 순대타운의 점포별 매출은 주말 평균 300만원에서 지난 주말 200만원으로 30%나 줄었다.



 서울 남대문시장 아동복쇼핑몰의 이모(51) 사장은 “어린이날 선물로 아이 옷을 사러 온 발길도 뚝 끊겼다”며 “하소연도 못하겠고 좋고 싼 옷 있다고 신명 나게 소리도 못 지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한 달 정도는 장사 안 한다고 생각하고 가게 문만 열었다 닫았다 하려고 각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년 전 생긴 소규모 신생 여행사 관계자는 “4~5월 예약된 건 중 90%가 취소됐다”며 “영세·신생 업체일수록 타격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사고에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연휴에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기보단 소비자들이 꼭 쓸 소비는 해줬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호소했다.



 유흥행사나 마케팅 행사뿐 아니라 자선행사까지 여파가 미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7일 울산에서 시작되는 유방암 예방을 위한 ‘핑크리본 사랑마라톤’을 취소했다. 매년 4~10월 전국 5대 도시에서 펼치는 릴레이 마라톤이다. 회당 3000~400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핑크리본 마라톤이 취소된 것은 대회가 생긴 지 14년 만에 처음”이라며 “다음 달 11일 대전 대회도 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도 속이 탄다. 누구보다 ‘경제는 심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과거 대형 사고 이후 경기 흐름을 다시 들추어 보고 있다.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는 애도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소비가 일시적으로 위축됐지만,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태 때는 시장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게 기재부의 분석이다. 이번 경우엔 조짐이 좋지 않다. 지난 1분기 소비와 투자지표가 예상만큼 신통치 못한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분기 역시 애도 분위기로 경기가 바닥을 모르고 가라앉고 있어서다. 그러나 분위기를 반전시킬 뾰족한 묘책이 없어 답답해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민이 과도하게 소비를 자제하는 바람에 소매판매와 서비스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한창 실종자 구조가 진행되고 있어 정부가 앞장서 소비하자고 호소하기는 부담스럽다”고 말을 아꼈다. 현대경제연구원 임희정 연구위원은 “대형사고에 따른 소비 위축의 파장은 소상공인들이 가장 크게 느낄 것”이라며 “노래하고 춤추는 축제성 이벤트는 아니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는 등 필수적인 소비는 지속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동호 기자, 문병주·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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