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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FOCUS] 불교의 관용·자비 정신으로 17년 시베리아 유배 견뎌

중앙일보 2014.04.25 00:02 7면 지면보기
엘리스타에서 기도하는 칼미크 불자. 루슬란 수후신


스탈린의 공포 정치 때 칼미크 공화국의 주민 3분의 1이 강제이주당했다. 현재 칼미크는 해결책을 찾아 자신들의 뿌리로 돌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고려인처럼 강제 이주당한 칼미크인



“우리의 모든 염원이 현실이 되기를! 모든 생명체가 고통과 위험, 질병,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세상에 평화와 행복이 충만하기를!”



전통 불교를 이어가는 러시아의 세 지역 중 한 곳인 칼미크 공화국의 수도 엘리스타에 있는 석가모니불 황금 사원 앞. 2000명이 넘는 신자가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진언(mantra)을 염송하고 있다. 칼미크의 불교 지도자인 텔로 툴쿠 린포체가 염송하면 따라 읽는 방식이다. 모두 깊은 명상에 빠지면서 마침내 광장이 고요해졌다.



밤이 되자 수천 개 등불이 켜졌다. 티베트와 태국, 미국과 러시아의 불교 지역권인 부랴트와 투바에서 온 승려들이 칼미크 전역과 이웃 지역에서 모여든 신자들에게 행복을 기원했다. 이들이 연등을 켜고 작은 열기구에 실어 하늘로 올려 보내자 어두운 밤하늘이 밝아졌다. 칠흑 같은 하늘에 연등 행렬이 길을 냈다. 그러자 군중 속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이게 우리의 ‘하얀 길’이야.”



“하얀 길을 만나길 기원합니다”는 칼미크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가장 진심 어린 인사말이다.



마치 팬케이크 같은 토지와 초원에 틀어박힌 이 가난한 공화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딱 필요한 인사말이다. 인구가 30만인 칼미크 공화국은 전통 사상과 티베트 불교문화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이곳에 불교는 13세기에 선조인 몽골의 오리아트 족에 의해 최초로 유입됐고 1609년 오리아트인이 이주해 올 때 러시아 제국에 들어왔다.



법당과 사찰, 성물은 1930년대 스탈린의 압제하에 무자비하게 파괴됐다. 토착 칼미크인은 모두 17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불교가 관용과 자애를 가르쳐 주었기에 칼미크 사람들은 버거운 현실과 싸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상황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84세의 예브도키야 쿠차예바가 말했다. 그녀는 스탈린 치하 강제이주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1943년 10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더러운 열차 짐칸에 밀어 넣어져서 시베리아로 추방됐지요. 시베리아로 가는 길에 목숨을 잃은 사람만 몇 천 명이었어요. 시체 더미가 기차역에 죽 늘어서 놓여 있던 광경이 떠오르네요.”



1980년대 말까지도 쿠차예바와 그녀의 가족이 연등을 켜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연등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쿠차예바가 기뻐할 일이 생겼다. 칼미크 공화국에 불당이 55곳, 사찰이 30곳 건설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것이지요.” 지역 사업가인 알렉산드르 네베예프가 몇 년 전 그의 마을 울두치니에 세워진 사원에 안치한 황금부처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 종교행사에 마을 사람 모두가 참석하지는 않았다. 성을 밝히지 않은 47세의 홀아비 전기기사 혼도르가 10대 자녀 두 명과 함께 사는, 방이 두 개 딸린 자그마한 집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사원이 나의 두 자식에게 먹일 빵을 주는 건 아니니까요.” 혼도르는 자신이 울두치니에서 상근직을 가진 두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칼미크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많은 고난을 견뎠습니다.” 그러고 그는 다른 수많은 러시아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을 덧붙였다. “어려움과의 투쟁은 우리의 전통이지요.”



혼도르의 자식들, 14살 된 아베야쉬와 13살의 나가일라의 꿈은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등의 방법으로 칼미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아버지 혼도르는 그들의 꿈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는 칼미크에는 아이들을 위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날 칼미크의 불교 지도자들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이들은 단지 사찰을 다시 짓는 것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무언가를 하는 것뿐 아니라 연민과 사랑, 친절, 용서와 같은 세속적인 인간의 기본 윤리와 칼미크 불교의 정신과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경제적·사회적 위기에 지친 칼미크 사람들은 중앙사원인 후룰 사원에 종종 찾아와 호소한다. “제 영혼은 상처 입었습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불교 지도자인 텔로 툴쿠 린포체는 말한다. “그 길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정신적으로 지탱해주며 영적으로 인도하는 영적·정신적 중심입니다.”



재단 ‘세이브 티베트’의 율랴 지론키나 대표는 “불교의 평화롭고 따뜻한 철학이야말로 칼미크 사람들에게 어려운 현실과 혼돈을 극복하는 해결책”이라고 했다.



안나 넴초바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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