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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FOCUS] 150만명이 불자 … 유럽지역 사원 200곳, 중부지역엔 100곳

중앙일보 2014.04.25 00:02 6면 지면보기
칼미크의 수도 엘리스타에 있는 황금사원. 루슬란 수후신


러시아의 불자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연구하다가도 불자가 된다. 그러니 알려지는 게 더 없어진다. 일각에선 “불교가 르네상스를 맞을 것”이라 하고 일각에선 “불교는 지는 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불교가 칼미크·부랴트·투바인들만의 종교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특히 러시아인 중에 불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 자료를 제시하기도 한다.

[Special Report] 불교신자 늘어나는 러시아



러시아에서 칼미크인만 불자가 아니다. 러시아 전체에는 불자가 아주 많다. 루슬란 수후신
러시아의 유럽 지역 대도시에는 총 200군데의 불교 센터가 있다. 부랴트·칼미크·투바 같은 전통적 불교 지역에는 1990년대 초부터 대규모 사원 건설이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100개에 달한다. 20년 전에는 고작 3개였다. 이 정도면 러시아를 불교 국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유명한 민속학자이자 동양학자인 나탈리아 주콥스카야는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니즈니 노브고로드에 사는 사람들 주위엔 불자라곤 없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머리 위로 벽돌이 떨어졌다-모두 다 버리고 부랴트로 달려가는 거죠”라고 말한다.



주콥스카야는 이들을 ‘불교에 빠진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부랴트·칼미크·투바인들은 빠질 데가 없다. 이미 빠져 있기 때문이다. 주로 러시아인들이 불교에 빠지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불자는 전부 얼마나 될까?



“애매한 질문이라 대답도 애매하네요. 2002년 부랴트 인구가 44만5000명, 칼미크 인구가 17만4000명, 투바 인구가 24만4000명인데 얼마나 불자가 있을지 알 수 없어요. 러시아인 대부분은 러시아의 전통적인 겔룩파가 아니라 다른 분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가장 규모가 큰 분파는 카르마 카규파 30만 명. 그 외 사카파·닝마파가 있지만 신자는 1만 명이 넘지 않아요. 불교학자들 중에도 불자가 있는데 이들은 어지간해서는 자신이 불자라고 밝히지 않죠. 한 가지 일로 오늘은 상을 주다 내일이면 감옥에 처넣는 나라이고 보니 어떻게 불자의 수를 세겠어요.” 주콥스카야가 고개를 젓는다.



2013년 11월. 블라디보스토크 독수리 언덕에 있는 불교 사원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참여자들. [리아 노보스티]


러시아의 불자 수는 약 150만 명, 전체 인구의 1%로 본다. 적잖은 수치다. 문제는 누구를 진짜 불자로 보느냐다.



모스크바에서 불교를 연구한다면, 일단 수준 높고 확고한 지성을 확보한 것으로 간주된다. 모스크바에 등록된 17개 불교공동체 중 서로 비슷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저마다 자신의 신자와 스타일이 있다. 저마다 정중한 목소리로 “이곳이 정통이고 나머지는 다 아류”라고 말한다. 믿지 마라. 모두 다 불교다. 중앙집중식 체계도, 보편적인 교리도 없다. 분파만 있다. 미얀마의 불교가 중국의 불교와 다르듯이 러시아의 불교도 티베트·인도의 불교와 다르며, 부랴트의 불교는 칼미크, 투바의 불교와 다르다. 위키피디아의 한 기사에 모든 불교 분파의 명칭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 길이가 장장 수십 페이지에 달한다. 러시아에는 전 세계의 온갖 불교 분파가 조그맣게 포도송이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까, 모스크바에서 엄청난 다양성을 보게 되는 겁니다. 러시아에는 두 개의 주요 독립영토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부랴트·투바·칼미크에서 활동하는 민족불교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서양) 불교로 이들은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러시아어 불교’ 잡지 편집장인 안드레이 테렌티예프가 이렇게 말했다.



매일 저녁 8시 페트롭스키 대로에 있는 금강불교 모스크바 센터에서 사람들은 명상을 한다. 명상은 천장이 높고 최근 유럽식으로 리모델링한 커다란 흰색 방에서 진행된다. 이 방은 막 이사 와서 아직 물품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출판사 사무실처럼 보인다. 저만치 떨어진 벽 앞에 놓인 금박 입힌 불상만이 그동안 있었던 일의 의미에 대해 말해주는 것 같다.



한 아가씨가 부동의 얼굴로 바닥에 앉아 있다. 그녀는 바이오 로봇의 목소리로 자유와 행복에 대해 말한다. 100여 명의 사람들이 카펫 위에 앉아 있다. 아가씨는 “카르마 카규 분파의 수장인 황금빛 후광의 16대 카르마파를 떠올려보라”고 말한다. 점점 카르마파의 머리와 목, 심장에서 흰색·붉은색·파란색 세 가지 빛이 나오는 것 같다. 이 세 가지 빛이 우리의 몸과 말, 정신을 정화시켜 준다. 마침내 모든 것이 빛나는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행복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한다.



간단하게 명상하는 것 같은데도 한 시간이 지나간다. 그 다음 모두 다 부엌으로 가서 차를 마시며 인사를 나눈다. 여기서 나누는 대화는 참 즐겁다. 사람들도 참 좋다. 눈에 높은 학구열과 삶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이 넘친다. 특별한 의식이나 금욕은 필요 없다. 고차원의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퇴근 후 달려와서 간단하게 마음을 정돈하는 정도….



테렌티예프는 “저는 펠레빈(인기 현대 작가)의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왜 불교가 러시아에서 이토록 확산되는가? 그것은 바로 일개 점원도 명상 수업에 두세 번 다녀오고 나면 세상 전체를 찡그린 광대 무리 보듯 볼 자격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수호자 이담에게 공물(특별한 그릇에 따른 우유)을 바치고, 낮에는 나쁜 일을 행하지 않고 살아 있는 생물을 욕되게 하지 않으며, 밤에는 만트라를 읽는다’. “이런 게 보통 불자의 삶”이라고 울란우데 외곽의 베르흐네베레좁스키 절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한 부랴트 할머니가 내게 말해줬다. 곧 명절인 흑룡의 새해가 다가온다. 그래서 부랴트 할머니가 벽촌에서 성지인 절로 가는 것이다. 그녀와 의식의 고양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해하지 못하고 놀랄 것이니까. 여기서는 그런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그것은 라마의 영역이다.



칼미크 수도 엘리스타의 `7일탑`. [로리-레젼 미디어]
길에서 보면 절이 약간 이상해 보인다. 넓은 들판에 비뚤어진 이즈바(러시아식 통나무 오두막), 그리고 그 위로 피어오르는 난로 연기. 참 단출하고 소박하다. 하지만 이즈바 사이로 쑥 들어가면 뭔가 눈부신 것이 반짝인다. 부드럽게 곡선 처리된 가장자리에 용, 사자, 리본, 깃발, 전경기(轉經器: 라마교에서 경문이 적힌 회전식 기도 기구), 종 등으로 장식된 유명한 아치형 지붕을 비롯해 모든 것이 무지개 색이고 모든 것이 평화의 색이다. 눈 쌓인 안뜰에는 보라색 장삼을 입은 동자승들이 분주하다. 그 할머니가 전경기를 돌리며 걷자 나도 그 속에 섞여 들어간다.



부랴트의 모든 절은 점성술과 의료 상담, 두 가지를 해준다. 둘 다 무료다. 승려들의 삶을 위한 십일조도, 정부 보조금도 전혀 없다. 그러나 라마에게 시주하는 것을 선행으로 생각한다. 먼 옛날부터 절은 신도들의 지원으로 유지돼 왔다. 열 명 중 한 명이 승려가 되고 나머지 아홉 명이 그를 먹여 살리는 셈이다. 그는 뭘 위해서 티베트어·중국어·산스크리트어를 배우는가. 위대한 철학 사상을 깨우치고, 자발적으로 선택한 승려로서의 운명을 위해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접근성을 위해서다. 부랴트의 각 부족마다 자신의 절이 있다. 즉 자신의 전담 현자가 있다. 왜? 아! 전담 현자란 그야말로 유익한 존재다.



벽을 따라 소박한 벤치가 놓여 있는 약간 어둡고 지저분한 복도를 지나다 보니 시골 병원이 생각난다. 복도에는 10여 명의 사람들이 라마를 만나려고 줄 서 있다. “아파트를 팔려고 해요. 교외에 집을 지으려고요. 아들도 결혼했고 아이도 태어났으니 살림을 늘려야겠어요. 아시겠지요.” 문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절에서 거의 일생을 보낸 승려가 아파트 매매에 대해 무엇을 알까 의아스럽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안 된다.



“올해 아들이 집을 팔면 안 됩니다. 부인이 직접 파세요. 그리고 올해 집 짓는 건 아들이 해야 합니다. 부인은 집 짓는 근처에도 가지 마세요. 부인은 그런 일 하시면 안 됩니다. 파는 건 파세요. 괜찮아요.” 라마가 권위 있게 말했다.



라마의 방에서 호화스러운 차림의 부인이 나온다. 그녀의 눈빛은 밝고 표정엔 안도감이 가득하다. 라마를 찾아 뵙는 것과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 고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라마는 ‘구속하고 풀어줄’ 권리가 없다. 라마는 누구와 결혼할지, 살림살이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어디서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조언을 해줄 뿐이다. 더구나 이곳의 불교는 구체성과 노동의 참여 면에서 서양의 불교와 차이가 있다.



“부랴트에는 무슨 동물이 키우기 좋은지 아십니까? 여기가 대륙성 기후다 보니 겨울이 혹독합니다. 소나 돼지를 키우려면 사료가 충분해야 되는데, 그게 안 돼요. 양이 맞아요. 양은 겨울 내내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거든요.” 이볼긴스크 절의 산자라마가 능숙하게 설명한다.



여기 불자들은 그 어떤 고상한 정신을 믿지 않는다. 배고픈 자에게 침을 뱉는 것은 신과 부처에게 침을 뱉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10년간 정교신자의 개종에 힘입어 절의 불자가 4만~5만 명 늘었다는 사실이 하나도 놀랍지 않다.



올가 안드레예바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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