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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반주 부탁해" 조수미가 한국 후배만 찾는 까닭

중앙일보 2014.04.22 00:21 종합 21면 지면보기
서양음악의 본바닥인 유럽에서 클래식 한류의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한국 출신의 20대 연주자들. 사진은 피아니스트 김선욱. [사진 중앙포토]


세계 주요 음악 콩쿠르 심사위원들은 몇 년 전부터 ‘한국 출신’ 출전자들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다. 실력이 출중할 뿐더러 무대 매너나 대회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악바리 연습벌레’가 한국 음악학도들에게 붙여진 명예로운 별명일 정도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이나 ‘금호 영재’라면 안경 하나를 더 끼고 본다. 콩쿠르를 휩쓰는 한국 연주자들 대다수가 이곳 출신이여서다. 국내 언론에서 이제 해외 콩쿠르 입상은 기삿거리가 되지 못한다. 콩쿠르 수상 성적만으로 보면 ‘클래식 한류’는 이미 세계 음악계에 범람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한국을 클래식 강국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콩쿠르 휩쓰는 등 실력파 줄이어 … 클래식 본고장 유럽에서도 인정
난해한 곡 유명한 작곡가 진은숙
"김선욱 완벽 … 다른 연주자 못 써"
개인 기량 비해 인프라는 태부족 … 음악정보센터 세워 뒷받침해야



최근 새 솔로 앨범 ‘온리 바흐(Only Bach)’를 내고 전국 순회공연중인 소프라노 조수미(52)씨는 “국내보다 클래식 본바닥인 유럽에서 한국 음악인에 대한 평가가 더 높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이번 앨범에 반주자로 참여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27)을 “표현력이 얼마나 좋은지 유럽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젊은 거장”이라고 칭찬했다. 김수연씨는 하노버 국제바이올린 콩쿠르와 레오폴드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1위를 한 실력파다.



 조씨는 또 “성악 분야는 한국 가수 일색”이라고 자랑했다. 일본 출신은 찾아볼 수가 없는 유럽 오페라 극장 주역이 대부분 한국 출신이고 합창단 단원은 이름을 다 들 수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한민족이 워낙 노래를 잘하기도 하지만 개개인의 피나는 노력이 오늘의 ‘클래식 한류’를 일궜다고 조씨는 분석했다.



위쪽부터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씨. [사진 중앙포토]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53)씨는 요즘 한국 연주자들 무대 세우기에 발 벗고 나섰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자신의 곡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젊은 음악가 중 한국 출신이 많아서다. 올 1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녹음한 진씨의 대표 3개 협주곡 중 피아노를 맡은 김선욱(26)씨의 연주를 듣고 “광팬이 됐다”고 했다.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빠르기나 정확성에 도달한 적이 없는데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그걸 해냈다는 것이다. 진씨는 “이제 다른 피아니스트 연주는 너무 떨어져서 들을 수가 없다”고 했다.



 진씨는 또 독일에서 활동하는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26)를 발굴해 한국 무대에 소개한다. 24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아르스 노바 시리즈2-관현악 콘서트’에서 한국 초연되는 비르톨트 루토스와브스키의 첼로 협주곡을 들려줄 이상 엔더스는 진씨 표현에 따르면 “보석이자 거물”이다.



 음악계에서는 이런 클래식 한류의 상승 기류를 이어 진정한 클래식 강국으로 가려면 기본 인프라를 단단히 구축하는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례로 한국 창작곡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널리 연주되어야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독일에서 활동한 작곡가 윤이상(1917~95)이나 진씨의 경우만 보더라도 한국 창작의 수준은 세계적이지만 이를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채널이나 창구는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음악 전문 출판사도 없다. 체계적인 음악자료 정리 작업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센터 설립이 절실한 시점이다.



 만약 외국 연주단체가 한국 작곡가의 창작곡을 연주하려면 현재로서는 국내 기획사에 악보를 구해달라고 부탁하거나, 작곡자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악보를 구하는 방법뿐이다. 한국음악협회·한국작곡가협회 등 다양한 음악단체들이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자료는 한 곳에 모으는 것이 최선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자료의 소장처를 연결해주는 허브 구실을 할 센터가 필요하다.



 현대음악계의 대국으로 큰 핀란드의 경우, 핀란드 음악정보센터(Music Finland)가 원동력이 됐다. ‘국내외에서 핀란드 음악에 대한 이해와 성공을 촉진함’을 목표로 설립된 핀란드 음악정보센터는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대중음악, 창작곡 악보뿐 아니라 연주, 음반 등 핀란드 음악의 모든 기록을 한 곳에서 관리하고 출판해 음악 선진국으로 우뚝 섰다.



 국내 실정을 살펴보면 국립예술자료원이 서울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3층에 있지만 기증 자료를 쌓아두고 음악 감상회를 여는 수준이다. 이장직 서울대 서양음악연구소 특임연구원은 “유럽 대부분 나라에는 자국의 음악자료를 한 곳에 모아놓고 활용하도록 독려하는 음악정보센터가 있다”며 “한국도 더 늦기 전에 국가가 지원하는 음악센터를 세워 클래식 한류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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