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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 정책 좌우 … 미국은 과두국가"

중앙일보 2014.04.22 00:20 종합 20면 지면보기
미국이 다수 국민의 여론에 기반한 민주제(民主制·democracy)가 아니라 소수 경제적 엘리트의 뜻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는 과두제(寡頭制·oligarchy)에 가깝다는 연구 논문이 나왔다. 이는 미국 사회학자 라이트 밀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밀스는 1956년 저서 『파워 엘리트』에서 권력과 부, 정보를 독점한 소수의 정치·경제·군사 엘리트 연합체인 군산복합체가 정책 결정을 좌지우지하며 다른 사회집단과 대중들은 이에 수동적으로 따를 뿐이라고 주장했다.


미 학술지 정책 1779건 분석
부유층 원하면 정책 생기고
국민에 필요한 건 지지부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1953~61년 재임) 등 역대 대통령들은 대체로 파워 엘리트들이 국민적 이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지키는 걸 경계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2001~2009년) 당시 대대적인 부유층 감세로 부유층과 나머지 계층의 소득격차가 심해지고, 부유층의 정책 영향력도 크게 높아졌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마틴 질렌스 교수와 노스웨스턴대의 벤저민 페이지 교수는 올가을 발간되는 정치 학술지 ‘정치적 관점(Perspectives on Politics)’에 게재되는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연구팀은 1982년부터 2002년까지 20년간 미국에서 시행된 정부 정책 1779건을 도입하는 데 누가 결정적 역할을 했는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일반 국민과 그들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들은 정책 도입에 거의 영향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소득수준 상위 10%에 속하는 경제적 엘리트들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논문에 따르면 경제 엘리트의 지지율이 20%를 밑도는 정책은 18%만이 도입됐다. 반면 경제 엘리트의 지지율이 80%를 웃도는 정책은 45%가 채택됐다. 반면 국민의 다수가 찬성하지만 경제 엘리트가 반대하는 정책은 대부분 무산됐다. 부유층이 자신들이 반대하는 정책에 대해 효과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문은 일반 국민이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이들의 정책 무관심을 지적했다. 반면 경제 엘리트는 정책 변화가 그들의 이해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 미국에서는 부유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이 많이 시행되고 있다. 2012년 미 대선에서 밋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자신이 설립한 사모펀드 베인캐피털로 엄청난 부를 일궜으나 금융인 세금공제 제도를 활용해 소득세율이 15%를 밑돈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당시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자신의 소득세가 소득의 17.4%에 불과해 자신의 비서보다 세율이 낮다며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유층을 대변하는 공화당이 부자 증세에 강력히 반대하며 금융인 세금공제 제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연구팀은 “미국인들은 선거와 집회·연설의 자유 등 민주제의 핵심 가치를 향유하고 있지만 정책 결정이 영향력 있는 기업 단체나 소수의 부유한 미국인에 의해 좌우되는 걸 고려하면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주장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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