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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코리아, 괜찮아요(Is Korea okay)?"

중앙일보 2014.04.22 00:10 종합 28면 지면보기
송재윤
맥매스터 대학 교수
실시간 전 세계로 전송되는 세월호의 침몰을 보면서 말을 잃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충격과 상처는 국경을 넘는다. 이웃집 아저씨가 다가와 근심 어린 눈빛으로 묻는다. “코리아 괜찮니(Is Korea okay)?”



 왜 자꾸 이런 일이 터지는 것일까. 작년 해병대 캠프에서 다섯 명의 학생이 파도에 휩쓸려 숨졌다. 두 달 전 경주의 한 리조트 체육관 지붕이 무너져 100여 명이 깔렸다. 그도 모자라 또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과연 코리아는 괜찮은 것일까?



 불의의 안전사고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1988년 대학 강당에서 오페라 공연 준비를 하던 친구 한 명이 갑자기 떨어진 무게 3t의 음향반사판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구김살 없이 밝고 건강하고 따뜻하던 친구였다. 사고 일주일 전 안전점검을 완벽하게 통과한 바로 그 무대에서 친구는 그렇게 떠났다.



 1995년 나는 또 한 명의 친구를 잃었다. 함께 공부했던 작고 깜찍한 인상의 여학생이었다. 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와르르 무너지고 나서 몇 달 후, 그 친구가 바로 그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충격이 느껴졌다.



 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아물던 상처가 다시금 안타까움과 분노로 터져 나온다. 그저 교우일 뿐인 나도 그러한데, 주변의 가족과 친지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 진정 세월호의 침몰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과 심리적 병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만 같다. 왜 이런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일까?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정부의 무능력과 무대책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최대의무는 치안유지와 위기관리다. 수백 명 어린 학생을 태운 거대한 여객선이 안전하지 않다면, 공공부문의 신뢰는 이미 실추된 것이다. 1995년 후쿠야마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의 압축성장은 사회적 신뢰가 쌓일 시간 자체를 허락하지 않은 것일까. 그 후로 20년이 지났는데도 오늘 우리는 빙빙 돌아 다시 원점이란 말인가.



 과거 동아시아의 군주는 불의의 사고나 천재지변을 당하면 하늘에 통렬한 반성문을 썼다. 죄기조(罪己詔), 스스로를 단죄하는 임금의 조서가 바로 그것이다. 세월호의 침몰 앞에서 정부는 하늘을 울리는 마음으로 스스로의 부덕과 태만을 반성한 후 바닥부터 새롭게 신뢰의 기반을 다져야 할 것이다. 가시적 성과에 현혹되지 말고 탄탄한 안전망의 구축을 국가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 못지않게 국민 모두 각자 맡은 자리를 샅샅이 살펴봤으면 한다. 사회 다방면의 다양한 직종에서 우리는 모두 선장이며 조타수며 항해사가 아니던가. 안타깝게도 급속한 근대화의 성장과정에서 모든 이가 오로지 속도전의 전사로만 훈련된 듯하다. 개개인이 날랜 무사처럼 무서운 속력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일을 뚝딱뚝딱 해치운다. 지난 반세기 속도전의 생존경쟁을 통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했지만, 신중과 우환의 미덕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장시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현대문명 자체를 이끌고 왔기 때문일까. 구미 선진국의 문화는 답답하리만큼 느리고, 차분하고, 꼼꼼하고, 꾸준하다. 대부분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무엇을 배우든 규칙에 따라 천천히 단계적으로 필요한 과정을 빠짐없이 모두 다 밟아간다. 목표의 초과달성을 위해 무리하게 일을 떠맡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꾸준한 훈련의 과정을 통해 성과의 강박증 대신 엄격한 직업윤리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바다에 갇힌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흐른다. 속도전의 경쟁 속에서 모두들 너무 지친 것만 같다. 선방(禪房)의 경구처럼 우리 이제 “조고각하!(照顧脚下!)”, 발밑을 한번씩 내려다보자. 정비부대의 구호처럼 늘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면서 꾸준히 걸어서 가자. 차분히 살피면서 한 걸음씩 가자. 속도와 효율만 좇지 말고, 멀리 보고 느릿느릿 길게 가자. 점검의 문화와 우환의 지혜만이 위기의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다.



송재윤 맥매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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