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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과 한국

중앙일보 2014.04.22 00:10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
이번 오바마 미 대통령의 한·일 방문이 미 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또는 ‘리밸런스(Rebalance)’ 정책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까? 그동안 아시아 회귀 정책은 시리아 사태와 우크라이나 사태, 그리고 미 의회의 ‘자동예산삭감(Sequest)’에 발목이 잡혀 지지부진했다. 다행히 최근 QDR(매 4년 주기의 국방예산 수정계획)에서 2020년까지 미 해군전력의 60%를 아태지역에 배치하고, 2016년까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완료하겠다는 구상에 따라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이 정책 입안의 핵심인 수전 라이스 안보보좌관은 4월이 아시아에 ‘결정적 국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은 냉전시대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이은 새로운 정책 틀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미국이 소련·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키우고, 일본을 키우기 위해 한국을 그 뒷마당으로 편입하는 게 골자였다(러이샤워 명제). 이로 인해 일본은 전범국가에서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가 되었다. 한국은 식민지 청산조차 제대로 못한 채 일본과 전후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미국이 제3자적 입장에서 중재할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당사자의 입장에 서야 함을 의미한다. 독도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최종안에서 열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귀속 섬 명단에서 까닭 없이 빼버렸다.



 이번 방한 때 오바마는 한말의 국새를 선물로 가져온다고 한다. 이에 더해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되는 것을 방조한 데 대해 사과한다면 참으로 감동적일 것이다. 미국은 이미 하와이 강제병합과 제2차 세계대전 때 재미 일본인을 강제 소개한 것에 사죄한 바 있다. 이처럼 과오를 인정하는 능력을 가진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임을 일본에 보여주는 게 오바마가 원하는 한·일 관계 개선의 지름길이 아닐까. 미국이 진정 한국을 린치핀(linchpin) 국가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미·중 관계는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와 중국의 ‘신형대국관계’,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TPP와 중국의 동아시아 포괄적 경제연대(RCEP)가 서로 경쟁하며 타협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또한 서로를 적(enemy)이 아니라 대항자(adversary)로 간주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한·중 간, 중·일 간, 중·동남아 간, 그리고 남북한 간 지정학적 분쟁이 군사력에 의한 지정학적 게임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우크라이나를 놓고 구미와 러시아가 지정학적 게임을 벌이는 것처럼 말이다. 현재 분쟁 지역인 센가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보자. 이 섬이 무너지면 황해·동중국해·남중국해가 무너지는 만큼 한국도 중국의 위협에 미·일과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 여기에다 시퀘스트에 의해 미 국방예산이 자동 삭감되면 미군의 위기대응능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도 한국과 일본의 ‘보완적 지도력’이 요구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집요하게 한·일 관계 개선을 요구하며, 한·미·일 삼각동맹을 챙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 한국은 중국과 경제교류가 확대되고,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중국을 의식해야 한다. 이런 한·중 관계를 무시한 한·미·일 군사동맹의 복원은 근시안적이다. 오히려 한·중 관계의 잠재적 가능성을 함께 살리는 한·미·중 소프트 삼각관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핵 문제와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동시에 관리하면서 동아시아 평화와 민주화를 달성하는 전략적 축이 될 수 있다.



 미국 관리와 아시아 전문가들은 일본의 보수적 역사관에 경도돼 일본과 동아시아 사이의 역사적 단층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히 그들이 만든 리밸런스 정책도 한계를 안고 있다. 지난해 말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놓고 미국 입장이 오락가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지나치게 앞세우면 중국은 역사적 원한에 자극받아 더욱 군사대국화로 치닫고, 중·러 동맹 또한 한층 강화될 것이다. 노련한 낙타는 사막에서 30리 떨어진 물 냄새를 맡는다고 했다. 미 컬럼비아대의 제럴드 카티스 교수도 워싱턴의 아시아 전문가들의 수준을 개탄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최근 미국에서 동북아 군비 확대를 촉진하는 군산복합체보다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조하는 평화산업과 금융계의 영향력이 훨씬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공산권 첨단기술 수출금지 조치마저 거의 해체했을 정도다. 한발 더 나아가 워싱턴에는 일본보다 오히려 중국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세력이 커지고 있다(펜실베이니아대 아사 올드론 교수). 중장기적으로 중국과 민주적 가치 공유를 추구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만만찮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 회귀’ 정책은 앞으로 한·미·일 삼각동맹의 단선적 구조로 가기보다 훨씬 복선적, 또는 다선적(多線的)으로 진행될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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