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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시시각각] 슬픔보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이유

중앙일보 2014.04.22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슬픈 눈을 도저히 바로 볼 수 없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현장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불효를 안 하더니 죽어서 돌아오는 불효가 웬 말이냐”고 절규하는 어머니, 곁에서 “잘생긴 오빠가…얼굴이 없어졌어요”라며 반쯤 실성해 있는 여동생을 만났다.



  어떤 사연인지 물어야 했다. 주섬주섬 취재수첩을 꺼냈다. ‘이 짓을 내가 왜 하고 있나’. 기자가 된 걸 그때 처음 후회했다. 그래도 묻고 적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똑똑하게 기록해놔야 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20년 전의 취재수첩을 펴보았다. 성수대교 붕괴 당시 무학여고생 8명이 한강으로 추락했다.



 돌아오지 않는 친구 A의 영정 앞에 바친 여고 1학년생들의 편지를 다시 읽었다.



 “더 이상 썩을 것도 없이 썩어버린 더러운 세상. 세상에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밉습니다.”(은진)



 “별명이 ‘또자’였어요. 집안일을 도맡아 해서 교실에서 잠을 많이 잤어요. 어머님, 아버님 힘내세요. 하늘에서 또자가 눈물 흘리지 않게… 책상에서 불편하게 눕지 말고 이제는 편히 잠들려무나.”(혜미)



 맞벌이 아빠, 엄마가 가게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다 꼭 밥을 차려주고 늦게 잠들던 ‘또자’였다. 그런 또자 하나 아늑하게 품을 수 없었던 대한민국. 20년 전 소녀들의 눈에도 성한 데 하나 없는 만신창이로 보였다.



 1년 뒤인 95년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이번엔 반포고에 텅 빈 자리가 생겼다. 사고 현장 에서 딸을 찾아 헤매던 한 아버지에게 깨알 같은 글귀가 적혀 있던 수첩을 건네받았다.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너에게, 나르시스의 아름다움을 너에게, 아인슈타인의 지혜를 너에게, 슈베르트의 감미로움을 너에게, 나폴레옹의 힘을 너에게.”



 그저 참사랑을 하고 싶고, 아름답고, 감미롭게 살고 싶었을 뿐인 소녀의 작은 꿈마저 콘크리트 더미가 또 앗아갔다.



 그리고 다시 2014년 4월.



 폭격을 맞은 것도 아닌데 한강철교가 뚝 부러지고, 대형 백화점이 모래성처럼 와르르 꺼지던 20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는가.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구조 변경으로 복원력이 허약해져 덩칫값도 못하게 된 세월호, 속으로 골병 들어 있던 삼풍백화점·성수대교.



  아이들에겐 “가만히 선실에 있으라”고 한 뒤 자기들은 내뺀 세월호 선장 일당, 삼풍백화점 붕괴 후 가장 먼저 달아난 서초구청 뇌물 공무원 9명. 배가 침몰하는 두 시간 동안 뭘 했는지 모를 무능한 정부의 불감증, 세월호 구명보트처럼 작동 안 되는 위기관리 시스템마저 어제의 악몽 그대로다. 어른들이 저지른 부실의 죗값이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왔다는 것까지 소름 끼치게 닮았다.



 무학여고, 반포고 아이들의 희생도 모자라 이번에는 안산 단원고의 우리 아이들이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해.”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



 ‘마법의 성’에 갇힌 공주처럼 절망의 선실에 갇힌 아이들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였다. 이런 아이들을 사지로 내몬 한스러운 나라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랑해야 하는 대한민국이다.



 극한의 순간 아이들을 위해 스물두 해의 꽃다운 삶을 바친 박지영씨의 존재 때문에 대한민국이 더욱 부끄럽다.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면서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선원이 마지막이야”라고 말하곤 시신으로 돌아온 박지영씨는 휴학생이었다. 홀어머니를 도와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 박씨부터가 사회적 약자였다.



 책임자들은 뺑소니치고, 정부는 왜 있는지 모르겠고,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은 서로 위로하고 부둥켜안고 울면서 사투를 벌인다.



 지금…. 슬픔보다는 분노 조절이 더 어렵다.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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