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호근 칼럼] Be Korean?

중앙일보 2014.04.22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눈물을 삼키려 이를 악물어야 했다. 안쓰러워 잠이 안 왔다. 수치스럽고 민망해 오금이 저렸다. 지난 주말을 그렇게 보냈다. 나뿐이겠는가? 자식 키우는 대한민국의 부모라면 ‘어떡해 엄마, 사랑해’라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발신에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장사가 어디 있겠나?



망망대해에서 집채만 한 파도에 침몰했다면 단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건 조류가 조금 센 다도해 바다 한복판, 어선 수십 척과 연락선이 떠 있는 근해에서 뒤집힌 여객선을 두 시간 넘게 방치한 것도 납득이 안 되는 터에, 눈망울 초롱한 아이들 수백 명을 아랑곳 않고 선장과 승무원이 황급히 탈출한 이 야생 참사를 어찌 이해하라는 말인가.



 1912년 4월, 타이태닉호 침몰 당시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승객 1700여 명을 구하고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승무원이라고 왜 생명 애착과 공포가 없었겠는가?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 이 한마디에 승무원들은 구조대로 변했다. 한국인답게 행동하라!(Be Korean!), 이 말이 있었다면 정녕 있었다면, 이게 뭘까?



 뾰족한 선수마저 가라앉은 세월호는 적자 부실기업의 위태로운 생명을 잇는 노쇠한 말[馬]이었다. 경영진의 눈에는 적자가 기입된 숫자만 보였을 터, 화물칸과 선실을 불법 증축하고 과적을 독려했을 것이다. 선장과 승무원의 최대 관심은 돈이었다. 안개와 폭우를 뚫고라도 승객과 화물을 짐짝처럼 능숙하게 부리는 선장일수록 업무수당을 두둑이 챙겼을 것이다. 승객의 생명선인 구명조끼·구명보트가 눈에 띌 리 없고, 직무 매뉴얼은 들춰 본 지 오래다. 험하기로 소문난 맹골수도를 통과하면서 2등 항해사, 선장은 유독 매뉴얼을 지켰다. 8시부터는 조타실을 맡겨도 좋다는 규정 말이다. 한국인다웠다.



 아침 8시48분, 노쇠한 배가 옆으로 드러누웠다. 침실에서 황망히 뛰어온 선장은 30여 분 후 승무원의 탈출을 명령했다. 그들이 생명을 건지는 그 순간, 476명의 학생과 승객의 생명은 위태로워졌다. 조난 신호를 받은 인근 관제센터들은 어떤 비상조치를 취했을까? 세월호는 87분 동안 누운 상태로 버티면서 탈출 기회를 줬건만 어린 학생들은 선내 방송을 철석같이 믿고 선실에 대기했다. 헬기가 뜨고 어선이 몰려왔는데도 탈출 명령은 발령되지 않았다. 해양경비정, 구조선, 어선, 연락선이 불과 30여m 수심에 가라앉은 선박 주변을 마치 오리 떼처럼 동동 떠다녔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60분의 숨가쁜 광경이 전국에 생중계됐을 뿐이다. 정녕 한국적 풍경이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부)는 아마추어였다. 수중 에어 포켓으로 연명했을 생명들을 구출할 첨단 입체작전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 물살이 세다는 구차한 변명이 유가족과 국민의 마음을 시커멓게 태웠다. 80여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객실에 진입할 정도였다. IT산업 최강국은 수중(水中) 최후진국이었다.



구조 관련 기관과 구조원이 한데 엉킨 현장은 거의 장바닥 수준이었고, 승선객 명단은 물론 구조된 인원, 사망자, 실종자 숫자가 엇갈렸다. 구조 작전의 기획, 명령 하달, 결과 보고, 다음 작전 진입, 이런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추진되는지 알 길은 없었다. 객실에 처음 당도한 것도 민간 잠수부원들이었다. 국민 안전을 그토록 강조했던 국가는 세계 만방에 허망한 속을 드러냈다. 한국이었다.



 유가족들이 울부짖었다. 구조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지 않으니 울부짖을 수밖에. 살아있을 생명을 두고 허둥대니 울부짖을 수밖에.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달려갔을까. 침몰 직전 세월호 내부가 방송 하나로 통제된 것과는 달리, 중대본부 현장지휘소가 차려진 팽목항은 몰려든 기자, 유가족, 구조대, 어부, 경찰, 정치인들로 북적였다. 시초를 다투는 생명을 두고 북적거린 나라, 한국이었다.



 이 땅의 어른들이 연출한 저 비루한 초상들이 자신들과 겹치는 순간 한없는 죄책감과 끝없는 절망감에 고개를 들 수 없다. 모든 어른들은 고개를 처박고 다니라고 명령해도 감수할 터이니, 정녕 그러할 터이니, 그러니 얘들아, 제발 그 어둡고 추운 물속에서 엄마와 친구와 선생님을 그리며 버텨다오. 끈질긴 생명을 보여다오.



너희들 아니라도 그 험한 맹골수도는 이 땅을 지키려 왜군과 싸우다 수장된 조상들의 넋으로 이미 비좁은 곳이다. 너희들이 아주 먼 훗날 묻힐 땅은 유채꽃 흐드러진 한라에서 진달래 움트는 백두까지 천지에 널려 있단다. 그러니 얘들아, 제발 버티고 버텨 ‘한국인답게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다오. 우리에게, 치욕스러운 어른들에게 너희들이 갈망하는 Be Korean!을 발해다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