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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중단·연기 … 경제도 세월호 쇼크

중앙일보 2014.04.22 00:05 경제 1면 지면보기


20일 저녁 서울 북창동의 한 민속주점은 한산했다. 4층 건물 전체에 회식 손님이 꽉 찼던 1주일 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음식점 사장은 “평일 저녁 예약은 모두 취소됐다”며 “월말이라 경비 지출이 걱정이지만 속절없이 간 아이들을 생각하면 장사가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21일 남대문시장은 중국·일본 관광객이 없었다면 거리가 텅 빌 정도였다. 호객하는 상인의 목소리도 요란하지 않았다. 15년간 여성복을 판매해 온 임영순(52)씨는 “시장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까 걱정이지만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진도에서라도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슬픔 함께하자" 자숙 분위기 확산
쇼핑 자제하고 회식 취소하고 제품 출시·홍보 줄줄이 미뤄
여행업계·골프장 타격 커
"장기화 땐 경기회복 악영향"



 세월호 침몰 사고로 경제도 슬픔에 넋을 잃었다. 새 제품 출시나 홍보는 줄줄이 연기됐다. 가게 문을 열어도 분노와 안타까움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상인들은 호소한다. 쇼핑도 회식도 자취를 감췄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안전과 정부에 대한 신뢰 같은 기본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경제도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자숙하고 있다. 새 제품 출시는 중단됐다. 동창회나 친목 모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네이버 ‘밴드’는 21일 게임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연기했다. 예정됐던 마케팅 행사는 취소되고 있다. 음원 재생사이트인 삼성뮤직은 21일 아이돌 그룹 엑소(EXO) 이벤트를 잠정 중단했다. 삼성뮤직은 “온 국민이 침통해하는 상황을 반영해 이벤트를 중단한다”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LG전자도 체조 선수 손연재 갈라쇼(26~27일)를 하반기로 연기했다. 삼성·LG그룹과 KB·하나금융지주 등 주요 기업과 금융사는 임직원에게 골프·음주·회식 등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LG전자는 불가피한 자리가 있더라도 건배는 하지 말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ING생명은 보험사에서 가장 중요한 내부 행사인 보험설계사 관련 시상식(18일)을 취소했다.



  유통업계는 문은 열고 있지만 손님은 뜸하다. 회사원 김모(38)씨는 백화점 봄 세일 마지막 날이었던 20일 쇼핑을 할 생각이었다. 즐겨 입는 브랜드가 50% 할인한다는 문자메시지를 지난주 초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백화점에 갈 기분이 아니어서 TV 뉴스를 시청하며 주말을 보냈다”고 말했다. 쇼핑객이 줄면서 현대백화점의 16~20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줄었다. 롯데백화점도 18∼20일 매출이 1.6% 감소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세일 막판에 매출이 줄어든 건 거의 없는 일”이라며 “백화점들이 사고 이후 판촉을 자제한 점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TV홈쇼핑도 마찬가지다. CJ오쇼핑은 주말인 19~20일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줄었다. 가전·통신 제품을 사는 소비자도 줄었다. LG전자는 지난 주말 직영점 베스트샵 방문객 수가 15% 줄었다. LG유플러스도 하루 평균 8000명이 넘는 신규 가입자가 7100명으로 감소했다.



 여행업체와 골프장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하나투어의 경우 지난 주말 1700여 명이 국내 여행을 취소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국내 수학여행과 배로 가는 일본 여행은 대부분 취소됐다”고 전했다. 수도권 H골프장은 토요일 예약 10여 건이 취소되기도 했다.



 업계는 이런 분위기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5월 가정의 달 관련 예약이 뜸하기 때문이다. 한 호텔 관계자는 “지금쯤 어린이날·어버이날 행사 준비를 해야 하지만 모든 홍보 업무를 중단했다”며 “세월호가 도착할 예정이었던 제주 지역 호텔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전했다. 한 금융권 인사는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경기회복에 나쁜 영향을 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시장 분위기를 주시하고는 있지만 사고 수습에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23~24일로 예정된 경제관계장관회의와 대외경제장관회의를 모두 취소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21일 확대간부회의에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안산시와 진도군에 재정·세제·금융 지원을 신속하게 하라”며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경제 현안과 관련된 업무·정책도 꼼꼼히 챙겨 달라”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경제동향간담회(23일 예정)를 이번 달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세계적으로 성공한 한두 개 기업과 제품에 사회 전체가 도취해 있었다”며 “이번 사고가 사회·경제 전 분야의 제도와 신뢰를 다시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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