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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구조될 줄 알아” … 수사 도중 “몸 아파 병원 가겠다”

중앙선데이 2014.04.20 01:41 371호 3면 지면보기
선장 이준석(왼쪽)씨와 3등 항해사 박한결씨가 19일 새벽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오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선장 이준석(69)씨는 구속된 이후에도 변명으로 일관했다. 검찰 수사 와중엔 “몸이 아프다”며 병원에 보내달라고 하기도 했다.

[세월호 침몰] 승객 버린 선장 이준석

그는 검경합동수사본부 조사에서 “승객들이 남아 있는데도 왜 먼저 탈출했느냐”는 추궁에 “구명선이 왔고, 배가 기울어져 있는 상태여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19일 밝혀졌다. 그는 “(승객들이) 다 구조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구명선 승선 순서에 대해선 “정신 없는 와중에 구조대원 지시에 따라 순서대로 구명선에 올랐다. (첫 구명선에) 제일 처음 올라탄 것은 아니었지만 마지막에 탄 것도 아니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승객보다 먼저 탈출한 이유에 대해선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선원법은 ‘선장은 화물이나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씨는 19일 새벽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에도 ‘침몰 당시 선장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다 했다’고 강변했다.

그는 승객을 대피시키는 대신 ‘선실에 있으라’는 방송을 내보낸 데 대해 “수온이 차고 구조선이 도착하지 않아 그랬다”고 말했다. 퇴선 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도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퇴선 명령은 내렸지만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변명으로 들렸다.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4명 등 476명의 승객을 배에 남겨둔 채 구조선에 올랐던 그는 구속수감을 앞두고도 책임을 모두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특히 그는 구속된 뒤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으면서 “엉덩이와 허리가 아프다. 병원에 보내달라”고 말해 목포의 한 병원에서 X선 촬영 등의 검사를 받았다. 이씨는 사고 당시 부상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병원 검진 결과 건강상태에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은 이씨가 구속 수감되면서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

-배가 물에 잠기기 시작할 때 어디 있었나.
“….”

-선원들에겐 퇴선 명령을 내려놓고도 승객들에게는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나.
“퇴선 명령을 내렸다.”

-(선내) 방송은 선실에 있으라고 나왔다는데.
“수온도 차고 그 당시는 구조선이 안 왔다. (구조선이) 도착 안 해서 그랬다.”

-그러고 나서 먼저 내렸나.
“아니다.”

-그럼 뭔가.
“….”

-혐의를 인정하나.
“인정하는 부분도 있고…. 어쨌든 물의를 일으켜 국민께 죄송하다. 유가족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인정 못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다. 억울한 부분 없다.”

-퇴선 명령을 분명히 내렸다는 건가.
“그렇다.”

-선실 내에 있으라는 방송을 하면서도 퇴선 명령도 했다는 건가.
“선실 내에 있으라는 방송은 구조선이 도착하기 전에 한 것이다.”

-배가 상당히 많이 기울었는데.
“당시는 조류가 상당히 빠르고, 수온도 차고… 만일 구명조끼 없이 퇴선하다 상당히 멀리 떠밀려갈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시 구조선도 없고 주위에 인명 구조 하는 어선, 협조선도 없는 상태였다.”

-배의 이상징후를 느낀 뒤 언제 신고했나.
“이상 징후가 순식간에 발생해서… 오전 8시50분경 신고했다.”

-그 이전엔 (이상 징후를) 못 느꼈나.
“그렇다.”

-배를 돌릴 때 어디 있었나.
“항로 지시하고 잠시 침실에 볼 일이 있어 다녀왔다.”

-그때 술을 마셨다는 말이 있는데.
“아니다.”

조타실에 있던 다른 승무원들도 ‘선장이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명령은 승객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승무원들은 배가 침몰하면서 전원이 끊기는 ‘데드 십(Dead Ship)’ 상태가 됐거나, 선장의 명령을 전달해야 할 1등 항해사가 명령을 제대로 듣지 못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기관실에 있던 승무원들은 조타실과 연결된 ‘핫라인’을 통해 퇴선 명령을 받자마자 객실을 가로질러 갑판으로 탈출했다. 조타실과 기관실 사이의 핫라인은 배의 전원이 끊어져도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회사 전 임원 “내가 알던 사람인지 의심”
40년 가까운 선원 경력을 가진 이씨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2급 항해사 면허를 갖고 있는 그는 32세였던 1977년 외항선 갑판원으로 선원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20년 동안의 외항선 선원 근무를 마친 90년대 후반부터 연안 여객선 운항을 맡았다. 처음에는 부산~제주 간 여객선을 운항했고 이후 완도~제주, 인천~제주를 오가는 여객선 선장으로 일했다. 2006년 당시 전남 강진신문 편집국장인 주희춘(현 강진일보 편집국장) 기자가 펴낸 『제주 고대항로를 추적한다』라는 책에서 이씨는 인천~제주 구간 뱃길을 훤히 꿰뚫고 있는 베테랑 선장으로 그려져 있다. 이씨가 전남 완도~추자도~제주 노선을 운항하는 600t급 여객선 ‘온바다호’ 선장으로 일하던 때다.

책 속에서 이씨는 “10년 동안 부산~인천, 인천~제주를 운항하는 상선과 제주~인천을 오가는 여객선 선장을 맡아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완도~추자도~제주 뱃길은 긴급 상황이 되면 30분 내에 안전한 곳으로 피항할 수 있는 거리에 섬들이 있어 태풍주의보만 없으면 600t급 여객선은 안심하고 다녀도 되는 항로”라고 설명했다. “추자도 주변에선 겨울철 돌풍현상이 자주 나타나 초속 15~20m의 바람이 불고 파도가 심하게 친다”고 남해 항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씨가 일하던 온바다해운은 그해 완도~제주 간 노선을 청해진해운에 매각했다. 그가 청해진해운에 입사한 시점이다. 청해진해운 관계자들은 “이 선장이 제주항로 전문가로 알려진 데다 회사 간부와의 친분도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2004년 제주지역의 한 인터넷신문에 실린 이씨의 인터뷰 기사에서도 그의 경력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제주~인천 간 페리여객선 선장으로 근무하던 때다. ‘서해 노을 위에 시를 쓰다’란 제목으로 실린 이 기사에서 이씨는 외항선 선원 시절 조난을 당했던 경험을 전했다.

그는 “처음 탄 배가 원목선이었는데 일본 오키나와 부근 해역에서 배가 뒤집혀 일본 자위대가 헬리콥터로 구출해 줬다”며 “그때 만일 구출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바다에서 태풍을 만났을 땐 ‘다시는 배를 타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위기를 넘기고 나니 그 생각이 없어져 지금까지 배를 타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이 조난당했다가 구조된 경험이 있으면서도 운항 책임을 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에는 선장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도 저버린 채 먼저 탈출한 것이다.

이씨와 함께 일했던 선원과 지인들은 “베테랑 선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가 승객을 버리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청해진해운 임원을 지낸 C씨는 “이 선장은 제주노선을 운항하는 몇 안 되는 베스트 선장으로 꼽힌다. 침착하고 회사 내에서도 평판이 좋았다”고 전했다. 그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가. 예전에 알던 그 사람이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이 선장이 승객을 버리고 먼저 구조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굉장히 화가 났다”고 밝혔다.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만난 70대 경비원도 이씨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이 선장과는 7~8년 넘게 얼굴 본 사이”라며 “출항 전날에도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다 갔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고 항해사 심리상태 고려 서둘러 구속
이에 앞서 그는 세월호가 침몰한 지 불과 40분 뒤인 지난 16일 오전 11시15분 팽목항에 세월호의 첫 번째 구조자들과 도착했다. 구조된 탑승자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응급 구조원들의 지시에 따라 담요로 몸을 감쌌다. 셔츠에 스웨터 차림인 그는 담요로 몸을 감싼 채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구조된 직후 치료를 받던 이씨는 기자들에게 “난 승무원이다. 아는 것이 없다”고 신분을 감췄다. 이씨는 진도읍 한국병원으로 이송된 뒤 바닷물에 젖은 지폐를 치료실 온돌침상에 말리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사고 당일 밤 목포 해경 조사 이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이씨는 합수본 조사에서 자신의 실수를 대체로 인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침몰 당시 필요한 조치를 제대로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배의 전원이 끊어지거나 경황이 없어 전달되지 않았을 순 있어도 선장으로서 해야 할 조치들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침몰 현장의 구난 지휘를 끝까지 하지 않은 점에 대해선 특별히 변명하지 않았다. 수사 관계자는 “이 선장이 승객보다 먼저 탈출한 이유에 대해선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침몰 당시 세월호를 운항한 3등 항해사 박한결(25·여)씨는 불안정한 심리상태 때문에 구속수감을 서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박씨를 밖에 놔뒀다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구속 수감하는 게 안전하겠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구속 수감될 때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 없이 몸을 웅크리고 부르르 떨며 연신 동물 울음소리 같은 비명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구속된 조타수 조모(55)씨는 고혈압 외에는 건강상 특별한 문제가 없는 걸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배를 운항한 선장과 선원들은 이씨의 사고 대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선장이라면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구출하고 마지막까지 배와 함께한다는 ‘버큰헤드호(號)’ 원칙을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22년 해상경력을 가진 화물해운사 사장 전모씨는 “선장은 배가 기울어 물리적으로 지휘가 불가능해지기 전에 징후를 판단해 빠른 시간 내에 승객이 대피할 수 있도록 후속조치를 해야 하는데 이 선장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LNG 수송선 1등 항해사인 신모씨도 “해경에서 퇴선 준비를 하라고 공고했는데도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지시도 전달되지 않았고,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이 전달되지 않은 채 승무원들끼리만 퇴선한 건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선원은 승객의 안전 확보를 가장 중요시하는 게 미덕이자 의무인데 이번 사고를 보면 어떤 처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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