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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50개 민관 기구 한곳에 모아 지휘·통신체계 일원화

중앙선데이 2014.04.20 00:51 371호 6면 지면보기
2010년 메인주 포틀랜드시에서 열린 국가재난사태(SONS) 대비 훈련 모습. 50여 개 정부·민간 관계자가 기능별로 분산 배치돼 한 장소에서 일한다. [중앙포토]
1989년 3월 미국 알래스카주 최대 관광지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 엑손사 소속 유조선 발데스호의 선장은 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조선이 빙하와 충돌하면서 4000만L가 넘는 원유가 폭포수처럼 청정바다로 뿜어져 나왔다.

국가적 재난사태, 해외선 어떻게 대응하나

미국은 68년부터 ‘유류 및 유해물질 오염에 대비한 비상계획(National Contingency Plan)’을 수립해 놓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연방정부, 알래스카 주정부, 앵커리지 시정부는 물론이고 해안경비대와 알래스카 원주민 단체까지 중구난방으로 나서는 바람에 혼란은 극에 달했다. 엑손 발데스호 사건에서 미국 정부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지휘·통신 체계의 일원화였다. 그 결실이 94년 신설된 ‘유류 및 유해물질 유출로 인한 국가재난사태(SONS·Spill of National Significance)’라는 규정이었다. 엑손 발데스호 사고와 같은 국가재난사태가 벌어지면 ‘SONS’로 선포하고 50여 개 정부 및 민간 기관이 종합지휘통제본부(National Incident Command)를 구성해 사고 수습에 나서도록 한 것이다. 이 매뉴얼에 따라 94년 이후 3년마다 해안경비대와 국토안보부 주재로 장소와 상황을 바꿔가며 전국 단위의 SONS 대응 훈련을 해왔다. 또 10억 달러의 기금도 설치했으며 2005년엔 27억 달러로 확충했다. 2013년까지 일곱 차례 훈련 끝에 미국 정부가 터득한 으뜸 노하우는 ‘관계자를 가능한 한 한 장소에 모으라’였다.

여섯 번째 훈련이 벌어진 2010년 메인주 포틀랜드 시내 홀리데인인 호텔 그랜드볼룸. 실내체육관 넓이의 공간엔 50여 개의 정부 및 민간조직에서 파견된 400여 명이 꽉 들어찼다. 전국 각지에서 속속 도착한 이들은 소속기관과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기획·물류·구호·방제·법무·재정 등 10여 개 팀으로 분산 배치됐다. 사고와 관련된 관계자를 모두 한 공간에 집결시킨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기능별로 나누어진 팀은 만 하루 만에 굴러가기 시작했다. 수십여 곳으로 흩어져 있는 현장에서 시시각각 전해지는 정보도 이곳에 모두 모였다. 전담팀에서 정보를 취합해 중복되거나 신빙성이 의심되는 정보를 추려냈다.

그 결과는 홍보팀으로 전달돼 공개됐다. 팀별 이견도 즉석에서 조정됐다. 실무자 간에 합의가 안 되면 지휘통제부의 5인 대표가 즉석 회의를 열어 답을 줬다. 기름띠 제거작업과 동시에 피해 보상 및 어민 지원 대책도 나왔다. 재정팀은 이에 필요한 재원 조달 방안을 내놨다. 메인주 대표 바버라 파커 국장은 “아무리 통신수단이 발달했어도 얼굴을 맞대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보다 효율적인 시스템은 없었다”며 “실제 SONS 상황에서도 지휘통제부는 한 공간에 꾸리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SONS 훈련에서 강조하는 또 하나의 노하우는 ‘각종 방제 및 구조 장비를 실제로 움직여 보라’였다. 훈련에서도 사고가 신고된 직후 각종 방제 및 구조 장비를 정해진 시간 안에 현장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지 점검했다. 현장에 도착한 장비는 매뉴얼대로 작동시켜 고장 여부를 살펴본다. 훈련이 끝난 뒤엔 1년에 걸쳐 50여 개 기관 대표가 모여 점검회의를 연다. 구조 장비 이동이 지연됐다면 이유가 뭔지 찾아 개선점을 마련한 뒤 매뉴얼에 반영한다.

이처럼 훈련을 했어도 2010년 4월 멕시코만에서 영국 정유회사 BP의 시추선이 폭발하면서 원유가 유출되자 허점이 드러났다. 이를 보안하기 위해 2013년엔 알래스카주에서 원유 유출 사고를 가정한 훈련을 벌였다. 훈련을 총괄한 미 국토안보부 리처드 발데즈 작전 기획·관리 국장은 “수많은 기관이 참여하게 되는 국가재난사태엔 장비 운송 및 통신에서 허점이 생기기 십상”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79년 홍수나 지진 혹은 테러 같은 국가재난을 관리하는 조직으로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일찌감치 설치했다. 2001년 9·11 테러 후엔 신설 부서인 국토안보부 산하조직으로 만들었다. 국가적 재난이 닥치면 FEMA가 28개 연방 부처·청 및 적십자사 등 민간을 통솔하는 컨트롤타워가 된다는 얘기다.

일본은 98년 총리 직속으로 내각에 위기관리감이란 자리를 만들었다. 일본은 미국과 달리 재난관리를 담당하는 중앙집권적 조직을 두지 않는 대신 최고 권련기관인 총리실이 직접 위기관리를 관장하도록 한 것이다. 위기관리감 밑에는 최고의 재난 전문가를 포진시켜 두고 있다. ‘매뉴얼 사회’라는 별명처럼 일본은 재난 단계별로 책임부서와 대처요령을 꼼꼼하게 정해놓았다.

자연재해는 물론 세월호 사고 같은 해난 사고 등 20여 개 종류별 상세 매뉴얼이 존재한다. 지진이 잦은 일본은 평소에도 이 매뉴얼에 따른 재난대처 훈련을 통해 부처나 기관별 혼선 같은 문제를 찾아내 보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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