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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이 찍은 구조활동 영상 보여줘도 “가짜 아니냐” 격앙

중앙선데이 2014.04.20 01:52 371호 10면 지면보기
“나가! 카메라 당장 치워.”

불신·분노의 바다 된 진도 팽목항

 자식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갈라졌다.

 “저건 힘이 나서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야, 저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정말 죽을 것 같은 거지.”

 아내 잃은 50대 남성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어 “정부는 계속 말을 바꾸고, 언론은 정작 우리가 궁금한 건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카메라만 들이대니 저렇게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은 가족들의 불신과 분노로 가득 찼다.

 사고 나흘째를 맞아 정부 관계자를 붙잡고 늘어지거나 기자들을 밀쳐내는 일은 전보다 줄었다. 대신 보이지 않는 불신이 더 커졌다.

 19일 오전 체육관에서는 전날 가족들이 요구해 사고해역의 구조상황을 찍어온 10여 분짜리 잠수 영상 두 개가 상영됐다. 정부와 언론을 거쳐 제공되는 정보들에 대한 불신 끝에 “차라리 우리가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겠다”며 요청한 자료다.

 해양경찰청 잠수부에게 고프로(몸에 부착하는 소형카메라)를 달아 사고해역 바닷속을 찍은 동영상이 상영되자 1000여 명의 시선은 무대 위 화면을 향했다. 체육관에는 화면 속 잠수부의 숨소리와 물소리만 들렸다. 상영이 끝나자 한 실종자의 아버지가 휴대전화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가족들은 “왜 거기까지 가서도 시신을 발견하지 못하느냐”고 소리쳤다. 50대 남성은 “왜 선내 영상은 없나. 뉴스에서는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시체를 나중에 한꺼번에 끌어올리려는 속셈이냐”는 소리도 들렸다.

 영상을 촬영한 해양경찰청 소속 SSU특수구조단 신원섭씨는 “잠수 가능 시간이 짧아 선내 출입구를 찾아 들어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가족들은 들끓었다. “미리 찍어놓은 영상 가짜 아니냐.” “청와대로 가겠다.” 한 가족이 단상으로 올라와 해경 관계자의 멱살을 잡았고 우유팩도 날아들었다. 실종자 가족 정모(56)씨는 “쇼 하지 말고 차라리 ‘다 익사했으니 배 끌어올리겠다’라고 해라”고 고함쳤다.

 국내 언론이 숨기는 뉴스들을 외신 기자들이 보도하고 있다는 소문도 인터넷으로 퍼졌다.

 외신 기자들은 체육관 1층 가족들의 공간을 자유롭게 다니며 사진을 찍고 취재할 수 있다. 국내 언론 기자들은 말을 붙이기도 쉽지 않다.

 한 국내 방송사 기자는 “정부 발표가 오락가락하니 이를 전하는 국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쌓였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경솔한 보도를 해 온 국내 언론의 잘못도 있다”고 말했다.

 사망한 승객의 시신이 옮겨지는 팽목항에서 불신 분위기는 더욱 거세다.

 단원고 2학년 3반 김빛나라양의 아버지 김병권(49)씨는 19일 영국 BBC 방송 카메라 앞에서 “영국에서 잠수함이라도 보내줄 수 없느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는 거절했다. 김씨를 인터뷰한 BBC의 조 플로토 기자는 “실종자 가족들이 한국 언론과 접촉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고 말했다. 18일에는 한 국내 언론사 기자가 상황실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려다 근처에 있던 실종자 가족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오락가락하는 정부 발표는 가족들은 더 힘들게 했다. 침몰 한 시간 만에 경기교육청으로부터 ‘전원 구조’ 소식을 들었지만 몇 시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다녀간 뒤 대형 스크린과 상황판이 마련되는 등 정부의 개선 노력도 이어졌다. 하지만 18일 한 방송에 민간잠수부라며 등장한 홍모씨의 허위 인터뷰, 선체 내부 진입에 대한 성공과 실패 보도 등이 번복되면서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체육관은 실종자 가족 800여 명과 정부관계자, 자원봉사자, 취재진의 한숨으로 가득하다. 간간이 울음이 터지는 곳에 렌즈가 향하면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카메라를 치우라”며 소리를 지른다. 일본 TBS의 오쿠다이라 구니히코(奧平邦彦) 기자는 “가족들이 구조 상황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가까이에 있는 미디어에 분노를 표하는 것 같다”며 “모두에게 불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로 가겠다며 체육관을 뛰쳐나온 남성은 “높은 것들이 헬기만 타고 와서 배 근처만 들렀다 도망간다”며 격분했고, 한 실종 학생의 어머니는 “OO일보 어딨어! 소설만 쓰더니 어디 가 있는 거야!”라며 언론사 차량을 찾아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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