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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先發制人<선발제인>

중앙선데이 2014.04.20 03:19 371호 27면 지면보기
『초한지(楚漢志)』의 영웅 항우(項羽)와 그의 삼촌 항량(項梁)의 얘기다. 진시황 사망으로 대륙 전역에 반역의 봉기가 번져가던 BC 209년, 어쩌다 살인죄를 저지른 항량은 조카를 데리고 회계(會稽) 땅으로 가 몸을 숨기게 된다. 그 지역의 군수(郡守)였던 은통(殷通)이라는 사람이 이를 알고 항량을 초청했다. 은통 역시 거병을 꿈꾸고 있던 인물. 항량과 항우의 기개가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고 부하로 부릴 심산이었다.

은통은 “천하가 어지럽다”며 “내가 기병(起兵)할 테니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은통이 사리사욕이나 챙기는 탐관오리임을 알고 있던 항량은 잠시 고민하게 된다. “내가 먼저 나서 다른 사람을 제압해야 할 것이요, 나중에 나선다면 다른 사람에게 제압당할 것이다(先發制人, 後發制于人)”라는 게 항량의 생각이었다. 항량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항우를 불러들였고, 산을 뽑고 세상을 덮을 만한 기개(力拔山氣蓋世)를 가진 항우는 단숨에 은통의 목을 자른다. 그렇게 항우는 거병(擧兵)하게 됐고, 또 다른 영웅 유방(劉邦)과 천하를 다투게 된다.

반고(班固)가 쓴 『한서(漢書)』에 나오는 얘기다. 여기서 ‘먼저 나서 사람을 제압한다’라는 뜻의 성어 ‘선발제인(先發制人)’이 나왔다. ‘선제공격’이라는 단어에 나오는 ‘선제(先制)’의 말 뿌리이기도 하다.

당을 건국한 이연(李淵)의 둘째 아들 이세민(李世民) 역시 ‘선발제인’으로 정권을 쥔 사례다. 건국 8년이 지난 626년, 이세민은 형 건성(建成)과 동생 원길(元吉)로부터 협공당하고 있었다. 이연을 도와 건국에 크게 공헌했고, 민심의 지지를 얻고 있던 이세민에게 황제 권력이 넘어갈까 두려웠던 때문이다. ‘그해 이세민은 현무문으로 건성과 원길의 병사들을 유인해서 공격해 몰살했고(玄武門之變), 황제에 올라 당 태종이 됐다’고 당(唐)나라의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는 적고 있다. 어디 정쟁에서만의 일이랴.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태 흐름을 선제적으로 장악하고, 미리 대응하는 것은 모든 일의 기본이다. 우리는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그 기본을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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