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빠른 삶 느린 생각] 과잉·과시적 소비 자제는 지구를 위한 인간의 윤리

중앙선데이 2014.04.20 03:22 371호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강일구
며칠 전에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중간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우리 신문에는 이것이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은 시사적인 충격을 주는 내용을 가진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끄는 것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각의 여러 겹에 대하여 <4> 환경 친화적 세계로 가는 길

기후 변화는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지구와 우주적인 변화의 자연스러운 리듬이 주된 원인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것이 인간에 의한 환경 훼손의 결과라는 데 대해 별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후 변화의 문제는 공기가 숨쉬기도 어려운 것이 된다는 것 외에, 바다와 육지와 동식물의 환경조건에 대변화가 일어나 현재의 인류가 거기에 적응해 살기가 어렵게 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다가온다는 경고에 사람들이 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내일과 내일을 넘어 미래의 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면서도, 무엇보다도 오늘을 살아가기에 바쁜 것이 사람의 삶이다.

보고서의 진단은 대체로 이미 알려진 것들이다. 근년에 증가한 탄소배출은 지구의 평균 온도를 위험할 정도로 상승하게 한다. 허용될 수 있는 온도 상승은 2도 이내인데, 지금의 속도로 탄소 배출이 계속되면, 2100년을 기준으로 해 온도가 3.2도 내지 4.7도 올라가게 되고, 그것은 해수면을 높이고 육지의 많은 부분을 물에 잠기게 하는 외에 사람이 다스릴 수 없는 여러 재난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파국적 결과는 배출이 일어난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배출량 제한 조치는 2030년까지 취해져야 한다.

대책의 핵심은 에너지 출처를 화석연료로부터 다른 재생 가능한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대체 에너지에는 풍력이나 조수, 태양광을 활용하는 발전이 있다. 식물연료(바이오퓨얼)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는 환경오염이 적지 않고, 또 식량 생산의 감소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스는, 환경훼손이 없지는 않지만, 잠정적인 방편으로나마 그 채굴을 중단할 수 없다고 한다. 또 눈에 띄는 것은 원자력 포기를 말하지 않은 것이다. 원자력은 계속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 될 수밖에 없되 폐기물 처리의 방편이 따라야 한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자로 파손으로 원자로의 위험성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이후 원자력 발전의 폐기를 주장하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아베 신조 총리는 원자력 복귀를 선언했다. 독일에서도 후쿠시마 이후 원자력 발전 중단이 정부 정책이 되었지만, 그 대신 더욱 활발해진 석탄 발전으로 탄소 배출량이 증가했다는 보도가 있다.

IPCC의 발표와 관련해 나온 비판의 하나는 보고서가 강조하는 조처들이 개발도상국에 과다한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탄소배출의 책임은 선진국에 있는데, 그것을 억제하려는 조처들은 산업발전에 부담과 제약을 가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협의체에 개발도상국가들의 대표가 더 참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이미 이 유엔 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30%는 개발도상국들을 대표한다.

개발도상국의 문제는 산업발전이 인간의 삶에 대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결국 기후 변화와 환경의 문제는 산업발전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연구는 오늘의 산업구조·경제구조의 근본적 개혁이 없이는 기후와 환경의 문제는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것에 따르면 지금의 발전된 산업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몽유병자처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류전멸의 낭떠러지로 떨어져 가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번 칼럼에 언급한 영국의 경제사가 리처드 스미스는 지금의 에너지 생산 체제를 완전히 오염 없는 체제로 바꾼다고 해도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17%가 제거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통계를 그대로 따른다 해도 배출되는 탄소의 14.3%가 교통수단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없앨 수 있다면, 이 둘을 합쳐,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을 포함한 산업선진국이 감축해야 하는 배출 가스의 30~50%의 하한선까지 감축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광범위한 자료 조사에 기초한 스미스의 연구는 기후 문제를 넘어서 그 원인이 되고 있는 산업문명의 자연 파괴, 자원 고갈, 공기 오염, 삶의 황폐화 등 문제들을 전반적으로 망라해 언급하고 있다. 깊이 검토해야 할 것은 이 문제들 전체다.(그의 견해가 담긴 ‘자본주의와 지구 생명의 파괴: 인간 구출을 위한 여섯 가지 테제’는 인터넷 저널인 ‘현실세계 경제평론(Real-World Economics Review)’에 실려 있다. 내년 봄에 출간될 단행본은 이에 대한 더 철저한 조사와 성찰을 담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 파괴가 엄중한 인간 생존의 문제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통계를 인용해 스미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300만 년 전에서 500만 년 전까지의 플라이오세(世)(Pliocene) 이후 대기에 쌓이는 탄소량이 지금처럼 높아진 일이 없다. 그로 인한 온도의 상승은 툰드라, 그리고 북극의 얼음을 녹여 탄소 외에도 메탄가스가 방출되게 한다. 이 외에도 여러 면에서 자연 질서의 파괴와 그에 따른 부작용이 번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무분별한 천연자원의 개발은 수억 년에 걸쳐 형성된 생태계가 무너지게 하고 생물들로 하여금 그 서식지를 잃게 한다. 싼 값의 가구를 만드는 어떤 회사는 재목을 위한 삼림 남벌로 시베리아와 말레이시아의 삼림을 사라지게 한다. 폭력, 강간, 소년병 동원 등이 난무하는 동부 콩고의 혼돈은 전자제품에 필요한 희토(稀土)의 채굴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 농업기업들의 농약 살포가 벌과 나비와 새를 몰살하고, 개인 농업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도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환경 파괴는 대규모로 행해지는-주로 대기업의 이익 추구를 위한-산업활동의 결과이지만, 대부분의 오늘의 인간은 알게 모르게 여기에 가담하고 있다. 기후 변화, 그리고 환경 파괴의 핵심에 있는 것은 경제성장이다. 모든 나라와 대부분의 사람은 경제성장의 목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성장이나 산업생산 그 자체가 아니라 경제의 초점이 삶의 필요가 아니라 소비 내지 과잉소비에 맞추어져 있다는 데 있다.

스미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제품은 허영에 호소하고, 그 이익은 풀어 놓은 탐욕에 부응한다. 인용된 간디의 표현으로 말하건대 “(지구의) 재화는 사람의 필요를 충족하고도 남지만, 어떤 사람들의 탐욕을 위해서는 그것은 충분할 수가 없다.” 오늘의 체제에 요구되는 것은 삶의 진정한 필요와 과잉소비 또는 과시소비를 가리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는 것은 윤리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스미스의 견해가 주의를 끄는 것은 자연 환경의 파괴나 자원의 고갈에 대한 그의 우려에 인간에 대한 윤리적 비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정한 필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바른 관계에 대한 이해에는 윤리적 판단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판단 또는 그 부재는 생산과 판매의 과정에도 들어 있게 마련이다. 오늘에 와서 생산품은 일정 기한 후에 고장이 나고 폐물이 되게끔 고안해 제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치의 욕망에 겹치고 개량과 발전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20 세기 초의 자동차 산업을 말하는 데 나오는 이야기로, 자동차 제조업자는 처음에 튼튼하고 오래가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소비자의 허영심을 자극할 목적으로 연도별로 새로운 스타일의 차형을 내는 것을 고안해냈다. 1950년대에 비해 2000년대에는 자동차의 무게가 두 배가 되었다. 그것이 더 큰 이익을 낳고 소비자의 허영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러한 체제를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스미스는 산업과 사회의 혁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치적 움직임이 이것을 주도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에 대한 대처는 인간적인 사회의 실현의 문제로 귀착한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와 인간은 오늘의 낭비적인 경제체제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스미스의 계산으로는, 미국을 예로 들어, 생산품의 3분의 2가 불필요한 것이고 구매품의 4분의 3이 불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와 정치, 그리고 고용에 대한 요구가 그것을 필요한 것이 되게 한다. 그리고 개인의 심성 자체가 과소비의 체제에 맞추어져 있다. 후진국의 사람들이 경제성장을 바라고 선진국 사람들의 생활용품들, 세탁기, 냉방기, 아이패드, TV, 자동차 등을 부러워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돈 많은 회사의 임원들이 (미국의 경우) 이름난 고급차, 디자이너 복장, 펜션과 별장, 요트, 개인 비행기를 탐하고, 보통사람들까지 유행 의상, 화장품, SUV나 소형 트럭, 방마다 비치된 평판 스크린 TV,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는 휴대전화, 컴퓨터, 단기수명의 유명 가구 등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는 것이 오늘의 세상이다. 스미스의 개혁 프로그램은 이런 상황의 재조정을 주장하는 것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주의 체제와 그 심리적 함정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