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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서러운 여성 암환자 … 아내가 남편 수발 97%, 남편이 아내 간병 28%

중앙일보 2014.04.14 02:30 종합 4면 지면보기
유방암 수술 환자 이모(45)씨가 퇴원해 집으로 오자마자 밀린 집안 청소를 하고 있다. [군포=김성룡 기자]


“아이고, 이불 정리하려니까 팔이 아프네.”

여성 암 3중고 <상> 암 걸려도 쉬지 못 한다
남편·친정·시댁이 나서 살림·육아부담 덜어줘야



 11일 오후 4시 경기도 군포시 이모(45)씨는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이불을 갰다. 이날 이씨는 유방암(2기) 수술을 받은 지 일주일 만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이씨는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수술한 왼쪽 가슴 주변에 통증이 오는지 멈칫하면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저녁을 준비해야겠는데, 채소도 없고 아무것도 없네. 집 앞에서 닭을 사야겠네”라며 집을 나섰다. 신발장 위에는 간식·햇반 포장용기가 쌓여 있다. 입원 중일 때 식구들이 사 먹은 것들이다. 이씨는 “5~6개월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집안일과 애들(고2 아들, 초등6 딸) 교육을 어떻게 할지 굉장히 고민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여느 여성 암 환자가 그렇듯이 환자에서 금세 주부로 돌아왔다. 남성 환자들은 아내가 달라붙는다. 하지만 여자는 간병에서부터 아이 양육 , 음식까지 거의 모두를 직접 챙긴다. 남성은 ‘환자 대우’를 받지만 여성은 주부 역할이 먼저다.



 본지는 지난해 12월 국립암센터·삼성서울·계명대동산·이대목동병원 암 환자 251명(남자 91명, 여자 160명)을 면접 조사했다. 여성 암 환자는 간병에 개의치 않는다. 본인이 셀프 간병하는 경우가 36.9%로 가장 많아서다. 다음으로 배우자·자녀·친정·간병인 순으로 도움을 받는다(복수응답). 남자 암 환자는 배우자가 간병하는 경우가 96.7%에 달한다. 여성 암 환자는 살림과 자녀 양육(교육)을 가장 중시한다. 여자는 본인이 살림살이를 하는 비율이 68.1%, 남자는 7.7%다. 여성 암 환자의 25%(남자는 13.8%)가 아이들을 직접 챙긴다.



 지난해 말 만난 폐암 환자 최모(45)씨의 하소연. “잠깐 서서 숨쉬기도 힘든데 애들 챙겨 먹이려 요리를 해야 해요. 안 그러면 간병인이나 도우미를 써야 하는데, 그게 다 돈이죠. 집안일 스트레스가 상당해요. 식구들에게 제발 좀 치우라고 하면 되지만 그게 잘 안 돼요. 집안 꼴 보기 싫고 짜증이 너무 납니다. 차라리 병원에 있는 게 낫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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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암 환자인 김모(61·서울 구로구)씨는 “자궁암 수술 후 힘들어도 집안일은 내가 다 했다”고 말한다. 국립암센터 이은숙 유방암센터장은 “애들이 사춘기일 때 엄마가 암에 걸리면 애들을 잘 못 챙겨 준다. 애들한테는 중요한 시기인데, 엄마 관심을 못 받으면 어긋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어려움도 여성 암 환자의 적이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가 지난해 11월 1983~2004년 자궁경부암 치료를 받은 여성 858명을 조사한 결과 발병 전 직업이 있던 사람의 45.1%가 치료 후 일자리가 없었다. 자궁경부암 환자 홍모(44)씨는 지난해 4~8월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느라 비정규직 일자리(홈쇼핑 상담)를 그만뒀다. 한 달짜리 병가(病暇)도 휴직도 회사에서 허용하지 않았다. 남편과 갈등을 겪다 이혼했다. 서울대 암병원 암건강증진센터 박상민(가정의학) 교수는 “남성보다 여성이 비정규직이 많다. 위중한 질병에 걸렸을 때 직장을 잃기 쉬워 경제적 타격을 많이 받는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방암 환자(32·영어학원장)는 문을 연 지 3년째 한창 성장하는 학원의 문을 닫았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빠지고 살이 찌는 등 외모에 변화가 오면서 학원 운영을 계속할 수 없어서다. 그는 “학원이 막 자리를 잡으려는 시점에 문을 닫아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 암 환자의 남편과 친정·시댁 식구들이 나서 살림살이·자녀 교육 등의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고 권고한다. 서울대병원은 암을 극복한 환자 34명을 교육해 이들에게 ‘후배 환자’ 교육을 맡기고 있다. 소위 ‘건강 파트너’ 제도다. 후배 환자의 극복의지를 키우고 가사·자녀 교육, 배우자 관계 등을 지도한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인지라 효과가 크다. 서울대 의대 윤 교수는 “건강 파트너 제도가 암 환자 일자리를 창출하고 여성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박현영·장주영·김혜미·이서준·이민영 기자

◆국립암센터·중앙일보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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