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스폰서와 나

온라인 중앙일보 2014.04.13 16:48
[사진 중앙포토]


“엄마, 나 겨울왕국 스티커 사주세요.”



어린이집을 다니는 큰 아이가 출근하려는 저를 붙듭니다. ‘말을 잘 들으면’이란 전제를 달고, “그래 사줄게”라고 대답을 하지만 아이의 주문은 쉼없이 이어지죠. 뭔가 사달라는 요구를 하게 되면 눈을 맞추고 이야길 시작합니다. 대체로 이런 대화가 오갑니다.



“엄마가 스티커를 사려면 뭐가 필요할까?” (“돈이요.”)



“엄마가 그럼 돈을 벌어야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엄마가 회사에 가야해요.”)



“엄마가 매일 회사에 가서 열심히 번 돈으로 스티커를 자꾸 사면 어떻게 될까요?” (이 때부터는 아이 표정이 안 좋습니다. “돈이 없어져요.”)



“그럼 엄마가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회사에 가야겠지요?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고요?”



말도 안되지만, 이 수준에 이르면 아이는 울먹거립니다. 다짐도 합니다. 꼭 필요한 것만 사겠다고요. 이런 ‘협박’으로 결국 열 개 사줘야 하는 스티커를 한 개 사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게 되죠. 출근 지하철에서 간혹 상상을 합니다. 사달라는 스티커를 죄다 사주면 어떻게 될까. 그럼 스티커가 너무 많으니 더 사달라고 하진 않게 될까. 부모와 자식의 ‘주고 받기’는 물질만이 아니라 무형의 애정도 들어가 있으니 더욱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듯도 합니다.



여기,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사달라”고 요구하는 남자친구에게 많은 것을 사주고 결국 이별을 통보받았습니다. 남자는 그녀를 ‘스폰서’라고 부릅니다.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명품가방, 명품 구두에 차까지 사줬건만 이제 와서 ‘스폰서’라니



#‘큰 손’ 그녀의 이야기



“그래? 병원에 입원했다고?”



친구였다. 두 달 전 ‘여성전용 바’에서 알게 된 ‘남동생’이 장염으로 탈진해 쓰러지면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였다. 내 파트너는 아니었지만, 싹싹했던 그 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마침 할 일도 없던 차에 약속을 잡았다. 과일바구니를 챙겨 병문안을 갔고 퇴원한 그 아이는 “고맙다”며 밥을 샀다. 그렇게 우연하게 ‘그 아이’와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우린 한 달 만에 사귀는 사이가 됐다.



“누나 바 일 그만하고 싶어.”



남자친구가 된 그 아이는 형편이 넉넉지가 않았다. 병원비를 대주는 걸 시작으로 ‘어린 남친’에게 들어가는 돈이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할 수 있고, 해주고 싶었으니까. 매달 300만원의 생활비를 주는 것은 기본이었다. 빚도 대신 갚아줬다. 한 번은 “부모님이 이가 불편해 음식을 잘 못 드신다”기에 임플란트를 하라며 1000만원을 건네기도 했다. 내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도 건넸다.



정이 깊어지면서 ‘남친’의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와 일이라도 하려면 컴퓨터는 만질 수 있어야 했기에 학원을 끊어줬다. 호스트바를 그만두는 조건으로 원룸도 새로 구했다. 수영학원도 등록했고, 요트자격증을 따고 싶어하는 그를 위해 개인 강습비도 대줬다.



남편과의 이혼, 그리고 그와의 결혼준비



어린 ‘남친’에 기대는 일이 많아지면서, 외국에 있는 남편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어차피 우리는 서류상으로만 부부일 뿐, 그 이상의 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별거 중이었던 우린 이혼을 하기로 했다. 외국서 자란 탓인지 아이들은 밝고 쾌활한 ‘남친’을 좋아했다. 때론 남친에게 ‘아빠’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큰 아이는 ‘어버이날’에 가불까지 받아 그에게 선글라스를 선물하기도 했다.



나이 차이도 나고, 만난 장소도 ‘특이’했지만 결혼을 생각했다. 아이들도 따르는 데다, 그 역시 아이들이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비서를 통해 회사의 본사가 있는 외국에 집을 알아보기로 하면서 우리의 결혼 이야기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던 날, 그에게 전활 걸었다.



“자기야, 우리 집 드디어 구했어. 이제 비자만 받고 나가면 되겠다.”



뛸 듯이 기뻐해 주리라 생각한 건 순전히 착각이었다. 그는 퉁명스럽게 “알았다”며 바쁘단 핑계로 전화를 끊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이후로 남친은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내가 구해준 원룸에서 이사도 했다. 주소를 물었지만 집이 어딘지도 알려주질 않았다. “해외로 나가기 전에 가족들과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해서 여행비까지 대줬는데, 설마 그가 나에게 등을 돌리랴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여자의 ‘감’이란 게 있지 않나. 돈은 받아 챙기면서 연락은 뜸한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뒤를 몰래 따라가 새로 이사한 집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날 밤. 친구들과 함께 그의 집 벨을 눌렀다. 그의 방엔 나를 만나기 전 ‘여자친구’가 있었다. 배신감이 치솟았다. 결혼하리라 생각했는데. 나를 고작 ‘물주’로밖에 여기지 않은 그에게 본때를 보이고 싶었다.



“누나는 내 스폰서잖아”



#남자의 이야기



누나를 알게 된 건 8개월여 전이다. 친구 따라 처음 와본다며 내가 일하던 호스트바를 찾은 그 누나는 처음부터 내 파트너가 아니었다.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아이들 몇을 번갈아가며 만나고, 1000만원에 달하는 명품 시계며 가방을 척척 사주던 유명한 ‘물주’였다. 그런 누나가 내 병원을 찾아오면서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금목걸이며 차, 생활비까지 대주는 누나는 ‘스폰’이었다. 누나는 남편과 이혼하면서 결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까지 소개해주는 건 괜찮았다. 하지만 외국까지 나가 살아야 한다니, 말도 한마디 못하는 나라를 오로지 ‘누나’만 바라보고 간다는 건 말이 안됐다. 자유롭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누나는 외국에 같이 살 집을 구하기까지 했다.



나중엔 내가 몰래 이사한 집까지 쳐들어와 행패를 부렸다. “내가 사준 물건을 다 내놓으라”며 난동을 부린 것도 모자라 고소까지 했다. 혼인을 빙자해 명품과 생활비를 받아챙겼다며 ‘사기’라고 했다. 억울했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스폰’아닌가.



#법원의 판단 “두 사람, 약혼 관계 아냐”



배신감에 치를 떨던 여자는 남자를 상대로 ‘약혼’을 명목으로 건네준 명품 가방과 시계, 8000여만원의 돈을 되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부산가정법원은 여자의 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은 “교제를 하면서 결혼을 생각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호스트와 스폰서의 관계에 있어 경제지원이나 고가 명품 선물은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잘랐다. 법원은 이어 “이전에도 여러 호스트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선물을 빈번하게 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또 “여자가 남편과의 이혼 전에 ‘호스트바’ 남친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점을 단정할 수 없고, 법적으로도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두 사람이 결혼을 위해 상견례를 하거나, 예식장을 예약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결혼 준비를 하지 않은 것도 근거로 들었다. 법원은 “남자가 여자에게 약혼 예물로 건넨 것이 전혀 없는 것도 기형적인 교제를 방증한다”고 덧붙였다.



김현예 기자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