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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인 무용 DNA 융합 한국춤에 변화의 회오리

중앙선데이 2014.04.12 15:29 370호 8면 지면보기
4월 16~19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일대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칠 전망이다. 일기예보가 아니다. 춤바람 얘기다. 국립무용단이 창단 52년 만에 최초로 외국 안무가와의 협업무대를 선보인다. 요즘 세계 무용계에서 가장 ‘핫’하다는 핀란드 안무가 테로 사리넨(50)과의 만남은 국립극장의 레퍼토리 시즌제와 발맞춰 ‘전통의 동시대성’을 모색하고 있는 국립무용단의 야심 찬 기획이다.

국립무용단 52주년 신작 ‘회오리’ 주역 김미애·이정윤

테로는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강조하며 제목부터 ‘회오리(Vortex)’로 정했다. 사실 지난해부터 국립무용단은 들썩이고 있었다. 현대무용가 안성수, 패션디자이너 정구호 등 외부 예술가를 기용해 만든 ‘단’ ‘묵향’ 등은 기존의 서사적인 신무용에서 개념 중심의 추상적 춤으로 한국 무용의 패러다임 이동을 예고하고 있었다. 과연 테로가 일으키는 회오리바람은 얼마나 거셀까. 윤성주 예술감독은 “큰일을 저지르게 돼 두려움 반 기대 반”이라고 했다. ‘회오리’의 중심에 선 국립무용단의 두 수석무용수, 김미애(42)와 이정윤(37)을 만났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공기가 확 달랐다. 무용수들이 온몸으로 내뿜는 호흡은 묵직하고 뜨거웠다. 땅속에서부터 끌어올린 기운으로 태풍의 에너지를 만들고 있는 듯, 손바닥에서 장풍이라도 뿜어낼 기세였다. 동작 하나하나에 응축된 역동성을 담아내며 비지땀을 쏟는 모습이 춤이 아니라 무예로 보일 정도였다.

테로가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그림을 만들어갔지만, 디테일의 완성은 무용수들의 몫이다. 전형적인 우리 춤사위와는 분명 달랐지만, 낯설거나 어색함은 없었다. 가야금·해금·피리 등 국악기를 사용해 전위적인 소리를 모색하는 음악그룹 ‘비빙’의 음악과도 절묘한 조화를 이뤄내고 있었다.

이번 무대는 국립무용단의 간판스타 이정윤과 김미애가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듀엣을 선보이는 한편 이정윤의 국립무용단 고별무대기도 하다. 지난 12년간 국립무용단의 모든 공연에서 주역을 맡았던 그는 향후 보다 폭넓게 관객을 만날 예정이란다. 사진 촬영을 위해 의상을 갖춰 입고 즉석에서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두 사람의 모습에 ‘회오리’에 대한 기대감이 쑥 높아졌다. 정확히 말해 ‘섹시’했다.

지난 4일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 열린 ‘회오리’ 오픈 리허설 중에서
-외국 안무가와의 만남은 처음인데 서로 잘 통하나요.
김미애(이하 김): 테로는 마인드가 동양 사람이에요. 대화하면서 사물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겸손하고 배려심이 많다는 걸 느끼죠. 처음엔 걱정도 했지만 좋은 분위기로 작업하고 있어요.
이정윤(이하 이): 어쩌면 그는 현대적 춤 작업을 하는 한국인보다 동양과 한국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디렉션을 줄 때 사물이나 자연에 비유하는 것들을 보면 동양철학에 대해 꿰뚫고 있다는 게 느껴지죠. 그래서 무용수들이 몰입도 잘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세계 무용계에서 가장 핫한 안무가라던데, 작업해 보니 과연 그런가요.
김: 테로는 굉장히 자연스럽고 감각적이에요. 짜인 내용이나 느낌을 굳이 설명하지 않고 비유하는 정도죠. 결국 우리에게 생각을 유도한다는 게 다른 것 같아요. 사실 댄서들에게 혼돈도 있었어요. 우리가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좋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쉽게 하라고 하니까요. 그래서 물었더니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것과 생각을 하지 않고 움직이는 것의 차이라고 대답하더군요.
이: 연출적인 힘에 의존하는 요즘 공연들에 비하면 좀 오래된 느낌도 있어요. 오히려 한국인들이 더 세련되게 안무하기도 하죠. 하지만 테로에겐 자기만의 메소드가 있어요. 분명한 자기 범주가 있고, 거기로 무용수들을 인도하기 위해 자연과 우주에 대한 철학을 동원해 자연스러운 시도를 하죠. 큰 의미에서 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히 있되 구체화시켜 나가는 과정에서는 감정이 뻗어나가는 움직임을 자유롭게 놔둬요. 무용수들에게 숨 쉴 여유를 주고 스스로 연구할 여지를 주는 거죠.

-전통예술을 외국인에게 맡기는 것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을 텐데요.
김: 기획의도 자체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만남의 순간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국립무용단 전통의 시발점도 근대화거든요. 춤으로 따지면 신무용인데, 당시 국립극장을 무대로 송범 선생이 극 무용을 시작했을 때도 폐쇄적 공간에서 오픈된 공간으로, 대중과 만나기 위한 시도였던 거죠. 마찬가지로 이번 작업도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작업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 철학을 먼저 봐야지 외국인이라는 선입견으로 보면 안 되는 것 같아요. 테로가 가진 예술세계가 우리 안무가보다 더 한국적일 수 있거든요. 예술가의 오리지널리티가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융합하는지가 분명하다면 충분히 시도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생들은 질문하죠. 국립무용단이 현대적인 작업을 주로 하고 외국인까지 와서 안무를 한다면, 한국무용 전공자들은 도대체 무슨 춤을 공부하고 연습해야 하느냐고요. 혼란스럽긴 하지만 성숙하게 생각해야겠죠. 외국인이든 누구든 그가 뭘 추구하는지에 초점을 두면 자연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국립무용단이 너무 외적인 자극으로 화제를 이어가는 것 아닌가요.
김: 개인적으론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되어 굉장히 재미있지만, 우리 춤 작업도 함께 이뤄져야겠죠. 올해 같은 경우엔 이쪽으로 좀 편중돼 있어 아쉽긴 해요. 춤이라는 게 몸이 기억하는 거라 이런 춤만 추다 보면 잃어버리는 것도 있거든요. 정신이나 호흡 같은 것들이죠. 전통과 도전이 같이 이뤄진다면 바람직하리라 봐요.
이: 문제는 콘텐트예요. 국립이니까 좀 더 대중과의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무용뿐 아니라 어느 장르를 봐도 소재가 고갈된 느낌이 있거든요. 그렇다 보니 전에 없이 기획, 마케팅, 연출적인 부분이 부각되죠. 예전에는 안무자와 무용수가 있어서 열심히 좋은 작품 만들면 된다는 느낌이었다면 이제 좀 더 능동적으로 소통해야 하니까 기획적이고 연출적인 마인드가 들어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일단 많이 두드려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어떻다 결론짓기보다 시간을 두고 계속 시도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것이겠죠.

-현대화된 무대는 어디에서 한국 춤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나요.
김: 무대에서 보여질 때는 의상이나 무대가 모던하고 심플하니까 헷갈릴 수 있지만 만드는 과정에는 다 감안돼 있어요. 한국 춤으로 훈련된 무용수를 위한 안무니까요. 예컨대 안성수·정구호의 ‘단’에서도 한국무용은 상체 춤이 발달돼 있기에 상체 위주의 안무가 많았지 현대 무용처럼 하체를 자유롭게 쓰지 않았죠. 하지만 협업에서는 장르에 연연하기보다 작품 자체의 느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 한국 춤이 상체가 발달돼 있다고 하지만 제 생각은 반대예요. 한국 춤은 하체가 되지 않으면 상체가 나오지 않죠. 그런 면에서 테로는 하체에 대한 주문이 굉장해요. 겉만 보는 게 아니라 땅에 대한 느낌과 호흡을 알고 있는 거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동작들도 땅에 대한 움켜쥠이 없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움직임들입니다. 그래서 ‘회오리’는 국립무용단원이 해야지 현대 무용수가 하기 힘든 거예요. 오히려 한국 춤보다 하체와 땅에 대한 것을 더 요구하니까요. 별로 움직이지 않지만 가만히 서 있어도 춤이 되는 느낌, 그게 바로 한국 춤의 장점인데 그런 게 ‘회오리’에 있습니다. 동작은 자연스럽지만 상상력이 좀 더 필요하죠. 우린 그 느낌이 뭔지 알고 있기에 ‘회오리’를 잘 흡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한국무용에 대해 조금은 편견을 갖고있다. 천사처럼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팽이처럼 수십 바퀴를 돌며 초인적인 움직임을 구사하는 발레에 비해 다소 느긋해 보이는 우리 춤사위는 너무도 인간적이라 ‘별것 아니다’ 싶은 거다. 그래서인지 운동으로 치면 비인기 종목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국무용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김미애는 “레퍼토리가 많은 발레에 비해 한국 춤은 내면의 춤이라 대중화가 어렵다”며 “그래서 이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여기서 겪은 걸 바탕으로 다시 우리 춤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윤도 “한국 춤은 더 뻗어나갈 여지가 있고, 반드시 한국 춤을 선두에 세우겠다는 목표로” 달려왔단다. “어린애들도 다 발레 하겠다고 하지 한국무용 하겠다는 꼬마는 없어요. 우리 것은 공기처럼 평범하고 남의 것은 특별해 보이는 거죠. 하지만 발레나 현대 무용수들은 거꾸로 한국적인 것을 찾아요. 5월 강동 스피링댄스페스티벌에선 김주원·김순정 두 발레리나가 제 안무로 한국적인 춤을 춥니다.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지만, 이런 작업을 하면서도 왜 대중이 이런 시도에 반응하는가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한국 춤이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가 이런 경험을 통해 더 뚜렷해지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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