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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같은 인생

중앙선데이 2014.04.12 16:17 370호 28면 지면보기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1860~1904)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 시절 생계를 위해 콩트와 유머 소품을 쓰기 시작해 의사가 된 뒤에는 결핵에 시달리면서도 일상의 삶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진실을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단편소설 『귀여운 여인』은 톨스토이의 극찬을 받았고, 『갈매기』를 비롯한 희곡은 현대극의 형식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웃기지 않는 코미디는 앙꼬 없는 찐빵이요 물 없는 호수다. 코미디(喜劇)란 관객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극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러니 웃겨야 한다. 그런데 코미디가 우울하고 쓸쓸하고 애잔하고 슬프기까지 하다면?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57>『벚꽃 동산』과 안톤 체호프

체호프는『벚꽃 동산(The Cherry Orchard)』에 ‘4막 코미디’라는 부제를 붙여놓았다. 하지만 1막 첫 장면의 지문부터 좀 무겁고 어둡다. “곧 해가 뜨려는 새벽, 이미 벚꽃이 핀 5월이지만 동산에는 아침 서리가 내렸고 춥다. 창문들은 닫혀 있다.”

극은 주인공 라네프스카야가 5년 만에 벚꽃 동산에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아들마저 강물에 빠져 죽자 외국으로 가 기둥서방 같은 인물과 방탕한 생활을 해왔다. 그렇게 있는 돈을 다 써버리고 허영에도 지쳐버리자 자신을 찾아온 딸 아냐와 함께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영지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백과사전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유명한 벚꽃 동산은 빚으로 인해 곧 경매에 부쳐질 운명이다. 과거 그녀의 집에서 농노 생활을 했던 상인 로파힌은 벚꽃 동산을 별장용으로 임대하면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시대에 뒤떨어진 벚꽃 동산도 벌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동산을 바라보며 오로지 옛날 생각뿐이다.

“오, 나의 순수한 어린 시절! 그때도 동산은 이랬어.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정말 온통, 온통 하얘! 오, 나의 동산! 어둡고 음산한 가을과 추운 겨울을 겪고도 너는 다시 젊고 행복에 넘치는구나. 하늘의 천사들도 너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아, 내 어깨와 가슴에서 무거운 돌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아, 나의 과거를 잊을 수만 있다면!”

벚꽃 동산은 그녀에게 현재의 현실이 아니라 과거의 추억일 뿐이다.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에 그녀는 마치 시력을 잃은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심지어 경매가 부쳐지던 날 그녀는 악단을 불러 무도회까지 연다. “다가오는 불행이 믿어지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마침내 벚꽃 동산이 팔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로파힌이 낙찰받은 것이다. 그는 발을 구르며 외친다. “벚꽃 동산은 이제 내 것입니다! 내 것! 아버지, 할아버지가 농노로 지냈던, 부엌에조차 들어가지 못했던 바로 그 영지를 샀습니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겁니다. 상상에 취해 있는 겁니다. 이건 알 수 없는 어둠에 묻힌 당신네들의 공상의 열매입니다.”

로파힌은 벚꽃 동산을 별장용지로 만들기 위해 벌목 작업을 시작하고, 라네프스카야는 자신이 나고 자랐던 고향집과 작별 인사를 한다. “1분만, 1분만 더 앉아 있겠어요. 이 집의 벽이며 천장이며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래서 지금 열심히 보고 있는 거예요.”

마차는 떠나고 텅 빈 무대에 여든일곱 살 먹은 늙은 하인 피르스가 들어온다. 그는 아침에 몸이 아파 병원에 다녀온 참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잊은 채 휑하니 떠나버린 건 괜찮지만, 젊은 나리가 털 외투를 입고 가도록 보살펴 주었어야 했는데 마지막까지 챙겨주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살긴 살았는데 도무지 산 것 같지가 않아. 좀 누워야겠어. 기운이 하나도 없군.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아무것도. 에이, 바보 같으니!”

4막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끝난다. “마치 하늘에서 울리듯 멀리서부터 줄 끊어지는 소리가 구슬피 울리고 나서 잦아든다. 정적. 동산 멀리서 나무에 도끼질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아무리 읽어봐도 웃음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등장 인물들의 대사와 몸짓에는 한숨과 탄식,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차라리 비극에 가깝다. 오죽했으면 체호프의 마흔네 번째 생일에 맞춰 1904년 1월 17일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첫 무대에 올려졌을 때도 연출자가 비극으로 그려냈을까.

그런데 체호프는 무척 화를 내며 항변했다. 이건 매우 우습고 즐겁고 경쾌한 코미디라고 말이다. 그리고 아냐는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벚꽃 동산이 팔리던 날 아냐는 울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름답고 착하신 엄마, 엄마를 사랑해요. 엄마를 축복해요. 벚꽃 동산은 팔렸어요. 이제는 없어요. 그렇지만 울지 마세요. 엄마에게는 생활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훌륭하고 순수한 영혼이 있잖아요. 함께 이곳을 떠나요! 이곳보다 더 화려한 새 동산을 만들어요. 새로운 동산을 보면 기쁨이, 깊고 편안한 기쁨이 엄마의 영혼에 깃들 거예요! 마치 석양의 태양처럼 미소 짓게 될 거예요, 엄마!”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일지 모른다. 체호프가 끝까지 자신의 작품을 코미디라고 강조했던 이유는 우리 삶을 한번 멀리서 바라보라고, 그러면 눈앞의 슬픔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 벚꽃은 유난히 화려하다. 문밖은 온통 벚꽃 동산이다.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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