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크라이나 극우 파시즘이 러시아의 개입 불러”

중앙선데이 2014.04.12 23:45 370호 3면 지면보기
현재 세계의 시선은 우크라이나를 향해 있다. 처음에는 2004년 오렌지 혁명의 재현처럼 보이던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크림반도 합병이라는 초강수를 둔 러시아의 개입과 이에 반발하는 서방권의 맞대응으로 신냉전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국제적 위기로 발전했다. 많은 전문가는 러시아의 패권을 재건하려는 푸틴의 야망 속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또 다른 시각

하지만 이러한 설명 속에는 한 가지 빠진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친러 정권을 축출하고 현재 우크라이나의 권력을 장악한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의 문제다. 10년 전 오렌지 혁명 당시에도 러시아는 반러·친서방 정권의 출현에 직면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 직접 개입하는 식의 무리수는 두지 않았다. 그러던 러시아가 이번에는 도대체 어떠한 이유로 저런 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러시아가 보여주는 대응의 차이는 2004년에는 그 세가 미미했으나 지금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주역 중 하나로 등장한 한 정당의 존재로 설명된다. 주지하듯 크림 합병까지 숨가쁘게 이어지는 러시아 측의 격렬한 반응은, 러시아어 사용자가 우크라이나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의 공용어 지위를 박탈한 포고령을 계기로 촉발됐다. 이 조치를 이끈 주역은 ‘전 우크라이나 자유연합’이라는 정당이었다.

우리 언론에는 흔히 ‘자유당’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 당의 진면목은 이들이 제도권 정당이 되기 전 사용했던 정당명과 엠블럼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4년까지 이 당의 정식 명칭은 ‘우크라이나 사회민족주의당’이었다. 이름에서 독일의 ‘민족사회주의 노동자당’, 즉 나치를 연상시키던 이 정당은 나치의 상징물을 다소 변형시킨 갈고리 십자가를 공식 엠블럼으로 채택함으로써 자신의 이념적 지향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우크라이나 사회민족주의당의 정강 개발을 담당하던 부설기관의 이름은 악명 높은 나치 지도자의 이름을 딴 ‘요제프 괴벨스 정치연구소’였다. 이 당의 실체에 대해서는 ‘자유연합’으로 개칭된 지 오래인 현시점에도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 정당의 파시즘적 정체성이야말로 그들이 누리는 대중적 인기의 비결이었기 때문이다.

현 사태를 촉발한 또 다른 우크라이나 측 주역은 ‘우크라이나판 나치’를 자처하던 정당마저 온건 보수집단으로 보이게 만들 만큼 과격하다. 이른바 ‘프라비 섹토르(우파 조직)’로 알려진 이 집단은 상당한 규모의 사설 무장부대를 운용하고 있다. 또 폭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 과격한 행태와 증오에 기반한 배타적 민족주의 때문에 진성 파시즘 단체로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애초 평화적인 반정부 시위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를 유혈사태로 바꾼 주역 중 하나가 바로 이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21세기 우크라이나에 어떻게 네오 나치 조직이 공공연하게 존재하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질 것이다. 사실 동부와 남부 우크라이나에서 이들의 존재감은 지극히 미미하다. 이는 자유연합과 프라비 섹토르가 서부 우크라이나, 특히 갈리시아 지방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인데, 갈리시아 지역의 친파시즘 정서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가진다. 나치 독일의 악명 높은 엘리트 군사조직, 무장 친위대에는 갈리시아 출신 자원병으로 구성된 정식사단이 조직됐을 정도였다.

이들은 나치의 승리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민족주의자였지만, 그중 상당수가 나치의 이념에 동조하던 파시스트였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이다. 이 부대의 모체는 친파시즘 성향의 극우 민족주의 반소비에트 항쟁조직인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단(OUN)에서 나왔다. 일방적인 구애였던 이들의 나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다. 나치는 우크라이나인도 러시아인처럼 궁극적으로는 노예화돼야 하는 열등민족으로 취급했다. 열성적인 히틀러 추종자를 자처했던 OUN의 지도자들 상당수도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이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극우집단의 파시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물론 이들의 무모한 행태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주권에 대해 현재 가해지는 러시아의 위협과 폭력이 정당화돼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여주고 있는 과격한 대응은 이들의 존재를 빼고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