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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원 무인기, 농약 살포용 AN-2기 … 싼 무기로 허 찔러

중앙일보 2014.04.12 00:22 종합 12면 지면보기



북한의 저가 비대칭 전력

















지난달 31일 북한은 우리 측에 일방적으로 해상 사격 훈련을 하겠다고 통보한 뒤 서해 5도 인근을 향해 발포했다. 이 중 100여 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떨어졌다. 군은 북측에 ‘사격 중단’을 요구하는 한편 F-16K 등 정예 전투기를 급파하며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얼마 후 대한민국을 진짜 놀라게 한 일이 일어났다. 북한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기가 파주에서, 백령도에서 잇따라 발견됐다. 서울의 심장인 청와대 하늘이 뚫렸다. 북한군을 감시하기 위한 각종 전력이 밀집해 있는 백령도 상공도 마찬가지였다. 백령도엔 4500억원짜리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피스아이, 대당 1000억원에 달하는 F-15K와 KF-16 4대가 비행 중이었다. 500개의 표적을 동시에 추적한다는 3000억원짜리 유도탄 고속함과 370억원대 대(對)포병 레이더 ‘아처’도 배치돼 있었다. 1조원에 달하는 첨단 무기들이 배치된 곳에 전문가들 추정으론 2000만원가량인 북한 무인기가 뚫고 들어왔다.



 이뿐만 아니라 서해 5도 일대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며 사진 촬영까지 했다. 연료 부족으로 떨어지지 않았으면, 주민이 신고하지 않았으면 군이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을 것이라는 게 더 큰 문제였다.



 파주 또는 백령도 무인기를 접한 대부분의 국내 전문가는 “요즘은 동호회원들도 쓰지 않을 만큼의 조악한 수준”이라고 품평했다. 핵심 부품인 엔진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100여만원에 판매하는 것이었고, 카메라는 일반인이 즐겨 쓰는 일본제 DSLR이었다.



 아산정책연구원 고명현 연구위원은 “발견된 무인항공기의 대당 단가는 최대 몇천만원 수준으로 보이는 반면 우리가 미국에서 도입할 글로벌호크(Global Hawk) 무인정찰기는 대당 2200억원으로 예상된다”며 “우리의 강점에 동등하게 대응하기보다는 우리가 쉽게 대응하지 못하는 약점들을 면밀하게 파악해 최저 비용으로 과감하게 파고드는 전략을 북한이 구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특유의 ‘저가’ 비대칭전력이다.



 비대칭전력. 간단히 말해 서로 맞불을 놓을 수 없는, 그래서 상대방이 방어하기 극히 어려운 전력을 뜻한다. 임진왜란 때도 조선과 일본은 각각 해군과 육군에서 우세를 점했다. 거북선(해군)과 조총(육군)이라는 비대칭전력 덕분이었다. 현재 남북관계에서는 북한의 핵무기가 대표적이다.



 북한이 저가 비대칭전력에 힘을 쏟은 것은 남북 간 경제력 차이가 극명하게 벌어진 1980년대로 알려져 있다. 전차·전함·전투기처럼 고가 무기를 구입하는 것으로는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북한 수송기 AN-2기는 1950년대 농약을 살포하기 위해 개발된 농업용 비행기다. 군 관계자는 “제작비 추정 자체가 불가한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로 낙후됐다. 그런데 낙후된 수준 덕택에 오히려 위협적인 전력으로 탈바꿈했다. 상하 날개에 천을 뒤덮기 때문에 열과 금속 재질에 예민한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다.



 AN-2기는 저고도에서 느린 속도로 비행하기 때문에 산골짜기 사이 비행이 가능하고 착륙도 쉽다. 한국적 지형에 특화된 강점이 있다.



 군 관계자는 “AN-2기는 야간을 틈타 산골짜기 등을 이용해 북한의 특수부대나 소형 폭탄을 실어 나를 수 있다”며 “명절이나 연휴 등 감시 인력이 적어질 때 전국 곳곳의 군 골프장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비하는 것도 AN-2기의 착륙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천안함 폭침도 저가 비대칭전력에 당했던 사례다. 당시 북한 연어급 잠수정은 HT-02D 어뢰로 천안함을 공격했다. 천안함은 내부 탑재 장비 등을 모두 합치면 가격이 약 1400억원에 이른다. 반면 북한 연어급 잠수정(130t)의 건조비는 100억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해군 관계자는 “첨단 탐지기 소나와 레이더로도 잠수정을 완벽히 탐지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평도를 포격했던 장사정포도 북한의 저가 비대칭전력 중 하나다.



  핵이나 미사일은 잠재적 위협이지만 실제로 우리를 타격한 것은 이런 저가 비대칭전력들이었다.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는 “한국군이 많은 비용을 들여 미국식 군사 시스템을 접목시키고 어디서나 통용되는 비싼 첨단 무기를 들여오는 데만 신경 쓰는 동안 북한은 한반도 지형에 특화된 저비용·고효율의 비대칭전력을 개발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일각에선 북한의 저가 비대칭전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말도 한다. ‘양(量)은 많지만 질(質)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장사정포다. 1994년 북한 측의 ‘서울 불바다’ 위협 후 서울을 타격권으로 하는 휴전선 이북 350여 문의 장사정포는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한 퇴역 장성은 “서울 같은 대규모 ‘콘크리트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 정도의 위력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번에 발견된 북한의 소형 무인기 역시 기초적인 첩보용 수준으로 실제 살상능력은 거의 없기 때문에 위력이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어떻든 저가 비대칭전력으로 인해 군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군은 무인기로 홍역을 치르자 대당 10억원이 넘는 이스라엘의 RPS-42 저고도 탐지 레이더 10여 대를 도입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대공포와 여타 탐지 장비 도입에 200억원을 쓸 예정이다. 무인기 3대, 약 6000만원을 들인 북한이 한국으로 하여금 수백억원을 소비하게 만든 것이다.



 연평도 포격 직후 국회 국방위원회가 의결한 2011년도 국방예산안은 당초 정부안보다 2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대포병 레이더 ‘아처’(371억원), K-9 자주포(866억원) 등 장사정포에 대응하는 전력을 확충하기 위해서였다. 전문가에 따르면 당시 북한이 연평도에 쏜 장사정포 가격은 기껏해야 수백만원 수준이었다.



 군사전문지 ‘디펜스 21 플러스’의 김종대 편집장도 최근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남겼다. “북한이 시한폭탄으로 사용될 수 있는 풍선을 수백 개 남한에 날려 보낸다면?…이제는 풍선 요격 부대가 창설되어야 하고…이런 식으로 한국의 국방정책을 흔들어댈 수단이 북한에는 무한대로 있습니다.”



 돈 문제는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감안하면 부차적인 것일 수도 있다. 천안함 사태는 각종 음모론을 양산하며 사회를 두 갈래로 찢어놓았다. 군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무인기 사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 책임론 등이 불거지자 군은 “우리도 무인기 전력을 갖추고 있다”며 무인정찰기 ‘송골매’ 등 주요 정찰자산의 세부사항을 외부에 공개하는 자충수를 두기도 했다.



 군이 비판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비대칭전력에 당해서라기보다는 조보근 정보본부장이 9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답변한 것처럼 북한이 무인기 정찰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면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음에 북한이 보낼 저가 비대칭전력은 무엇일까.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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