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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1992년 대선 클린턴이 승리한 이유

중앙일보 2014.04.12 00:15 종합 22면 지면보기
진보의 착각

크리스토퍼 래시 지음

이희재 옮김

휴머니스트, 768쪽

3만5000원




서평을 부탁받았을 때 기분을 좋게 만드는 저자들이 있다. 기회가 주어지면 국내 독자에게 직접 소개하고 싶은 마음을 품어 왔기 때문이다. 내게는 위르겐 하버마스·앤서니 기든스·리처드 세넷이 그런 이들이다. 이들 못지않게 내 마음을 사로잡아온 저자가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크리스토퍼 래시(Christopher Lasch)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래시는 자기 전공인 역사학을 넘어서 사회학·심리학·문화학·정치학 등에 심원한 영향을 미친 종합 인문학자다. 우리말로도 옮겨진 『나르시시즘의 문화』와 『엘리트의 반란과 민주주의의 배반』은 전문연구자는 물론 시민독자에게도 자아정체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선보였다.



 둘째, 래시는 정말 글을 잘 쓴다. 아무리 훌륭한 분석과 주장을 담고 있다 해도 책이 가져야 할 일차적인 미덕은 독자들로부터의 공감이다. 정확한 개념, 설득력 높은 논리, 풍부한 사례 등 래시의 글쓰기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역사의 거시적 방향은 물론 개인의 실존적 의미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1963년 마틴 루터 킹이 워싱턴 링컨 메모리얼 파크에서 연설하는 장면.미국 역사학자 래시는 상대 진영에 대한 원한을 담은 과격한 구호는 갈등의 악순환을 낳을 뿐이며, 그런 관점에서 마틴 루터 킹은 흑인이라는 희생자의 입장을 악용하지 않고 차별철폐 운동에 임했기 때문에 백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진 휴머니스트]
 『진보의 착각』은 래시의 이러한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저작이다. 원래의 제목은 ‘참다운 오직 하나뿐인 천국: 진보와 그 비판가들(The True and Only Heaven: Progress and its Critics)’이다. 이 책은 미국 진보주의에 대한 자기 성찰이다. 두 질문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진보가 왜 시민 다수로부터 멀어졌는지의 질문이 하나라면, 그렇다면 새로운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의 질문이 다른 하나다.



 주목할 것은 이 책의 원본이 1991년에 출간됐고 미국을 배경으로 논의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래시가 말하는 진보의 위기는 특히 레이건 시대로 대변되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부상에 따른 위기다. 진보는 역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복지국가로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더 이상 안겨줄 수 없다고 그는 진단한다.



 래시에 따르면, 진보의 위기를 낳은 원인은 여럿이다. 분파주의, 이념적 순결성의 집착, 낙오된 사람들의 집단 감상주의, 내부에서 일어난 심리적·문화적·정신적 기초의 와해 등이 그것들이다. 이 중 래시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심리적·문화적·정신적 기초다. 미국 진보는 보편적인 원리 및 이상만을 부각시킨 나머지 미국사회를 이끌어온 중간층과 하류층의 정신적인 힘을 간과함으로써 위기를 자초했다고 그는 분석한다.



 래시의 새로운 대안은 미국식 ‘서민주의(populism)’다. 서민주의는 무엇보다 가산의 소유, 개인적 독립성, 욕망의 절제와 한계의 수용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서민주의의 역사적 전통을 재발견하면서 그는 주류 진보 이념에 의해 가려졌으나 풍성한 선율을 이뤘던 ‘한계의 사상가들’을 재조명한다. 토머스 칼라일·조너선 에드워즈·랠프 월도 에머슨·윌리엄 제임스·조사이어 로이스·라인홀드 니부어의 철학 및 신학이 그것들이다.



 래시가 제안하는 진보의 새로운 방향은 공동체 가치의 수용이다. 가족과 지역 커뮤니티로 대표되는 공동체에 대한 강조는 서유럽과 대비되는 미국의 역사적 전통이다. 진보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추상적 인류애가 아니라 구체적 연대이며, 이 연대는 다양한 생활 공동체들 속에서 배양될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미국 중산층의 삶을 보여주는 광고 아래 흑인들이 줄을 선 모습이다.


 서구 및 미국 사회사상을 종횡무진 분석해 도달한 래시의 결론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래시의 문제의식은 마이클 월저·마이클 샌델·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공동체주의와 로버트 퍼트남의 사회적 자본론과 잇닿아 있다. 월저가 정치철학적으로, 퍼트남이 정치학적으로 공동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면, 래시는 역사학적으로 이를 추적하고 분석한 셈이다.



 진보가 1990년대 초반 미국사회에서 성적 자유, 여권, 동성애권의 주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규범의 정초와 신뢰의 창출일 것이다.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한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내건 3대 가치가 ‘기회·책임·공동체’였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둘째, 공동체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진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래시가 말하는 공동체는 물론 개인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문제는 이 조화를 현실 속에서 실현하는 게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칫 잘못하면 공동체는 ‘권위’가 아니라 ‘권위주의’를 앞세워 개인의 자율성 및 창의성을 억압할 가능성을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의 착각』이 우리 사회에 주는 함의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공동체에 대한 성찰은 최근 우리 지식사회에서도 활발히 토론돼 온 주제다. 박세일의 ‘공동체 자유주의’로 대표되는 보수 담론이나 협동조합 및 사회적 경제로 대표되는 진보 담론 모두 공동체의 재발견을 강조한다. 시장에서 개인을 특권화하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황혼 속에 놓인 현재, 개인과 공동체의 새로운 조화를 어떻게 일궈가야 할지에 대한 탐구는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부여된 중대한 이론적·실천적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교수 "무엇을 더 읽을까"



『진보의 착각』과 같은 해(1991)에 발표된 앨버트 허시먼의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웅진지식하우스)는 보수주의를 분석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보수의 ‘수사학’이다. 보수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역효과 명제, ‘그래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무용 명제,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위험 명제를 구사해 자신의 지배를 공고히 해왔다고 허시먼은 주장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현대경제연구원BOOKS)는 미국 경제 현실을 분석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 책이다. 그는 소득 양극화와 중산층 몰락이 오늘날 미국사회의 자화상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문한다. 이 책은 도금시대와 대공황시대부터 최근 신자유주의시대까지 미국 현대 경제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한다는 점에서 『진보의 착각』과 짝하여 읽어볼 만하다.



 김형기·김윤태가 편집한 『새로운 진보의 길』(한울아카데미)은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근본주의 성향을 성찰하고 ‘뉴 레프트’를 주창한 책이다. 저자들은 발전국가와 신자유주의를 모두 비판하고, ‘한국형 제3의 길’을 우리 사회 진보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들은 대외정책에서 경제·사회정책에 이르기까지 보수에 대한 일방적 반대와 비현실적 대안을 넘어서 실현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진보의 정책대안을 모색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김호기는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정치사회학회 부회장. 저서로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 『시대정신과 지식인』 『지식의 최전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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