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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의 종횡고금<9>부모 원수는 갚아도 된다는 공자, 이 시대 사적 폭력은 정당한가

중앙일보 2014.04.12 00:15 종합 23면 지면보기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원시인류는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두 가지 폭력에 직면해야만 했다. 한 가지는 홍수·가뭄·맹수 등 자연의 폭력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폭력이었다. 인류는 자연의 폭력에 대해 그것을 의인화하고 동일시함으로써 견뎌내고자 했다. 태양신, 비의 신, 우레의 신 등 자연신화는 이러한 의식의 산물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폭력은 법규와 형벌에 의해 절제되었다. 르네 지라르(Rene Girard)가 모든 문화를 폭력의 순화된 형태로 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폭력이 있었다. 가령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규정과 같은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이 그것이다. 인의(仁義)에 입각한 예치(禮治)를 강조하는 유교에서도 용인되는 폭력이 있었다. 『예기·단궁(禮記·檀弓)』편을 보면 자하(子夏)가 부모의 원수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저잣거리나 조정에서 만나면 무기를 가지러 갈 새 없이 곧바로 싸울 것(遇諸市朝, 不反兵而鬪)”을 권고한다. 미국의 중국학자 루이스(Mark E. Lewis)는 이러한 폭력을 ‘인가된 폭력(sanctioned violence)’이라고 불렀다.



 고대 동양에서 국가 이외에 일반 백성이 인가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부모의 원수를 갚는 일 이외에도 의협(義俠) 행위가 있었다. 춘추 전국시대에는 중앙집권식의 통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방에는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았고 당시 유협(遊俠)이라는 일종의 협객들이 사적으로 은원(恩怨) 관계를 해결해주고 일반 민중의 지지를 얻어 토착 세력을 형성했다. 유협은 당나라 때까지도 살아남아 ‘규염객전(?髥客傳)’이나 ‘섭은낭(?隱娘)’ 같은 소설 속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 남녀 협객은 살인을 밥 먹듯 하지만 대의명분을 위해 암약한다. 이러한 유협의 스토리가 후대에 판타지 문학의 형식으로 정착된 것이 바로 무협소설이다. 다시 말해 인가된 폭력에 대한 욕망을 문학 속에 구현한 것이 무협소설이라고나 할까?



 근대 이후 강력한 법치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인가된 폭력은 사라진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욕망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서양의 경우를 보면, 불후의 명화 ‘대부1’은 장의사 주인이 강간당한 딸에 대한 복수를 마피아 대부에게 간청하고 대부가 이를 수락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자녀를 위해 폭력배를 고용하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딸에게 성폭력을 가한 것으로 오인된 남학생을 살해한 아버지가 있었다. 어린 의붓딸을 구타하여 참혹하게 숨지게 한 계모에 대해서는 초법적인 극형을 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들의 분노는 부모로서,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닌 감정 곧 ‘상정(常情)’에 근거하고 이 상정은 고대의 인가된 폭력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 제도에 미비한 점은 없는지 그리고 법과 상정 간의 간극이 적절한지 심각히 성찰해보아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인가된 폭력도 엄연히 폭력이니 만큼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비폭력으로의 도상에서 순화되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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