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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칼럼] 갓수시대

중앙일보 2014.04.12 00:10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지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4학년
“저소득층 마인드에서 벗어나세요.” 깜짝 놀란 수강생 300명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지난여름 종로의 한 어학원에서 겪은 일이다. 강사는 씩 웃어보였다.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도 들렸다. “저소득층 마인드라니….” 강사는 이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의 핵심은 하나였다. ‘내 안의 나태함에 대한 부정’. 즉 노력하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청춘은 아픈 법이니까’ 따위의 말로 본인의 게으름을 정당화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표현은 분명 잘못됐다. 선입견에 빠진 토익 강사라며 욕하기도 했다. 그러나 입을 삐죽이면서도 한구석으로는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응시료만 4만원이 넘는 토익 시험을 여섯 번이나 보고도 목표 점수를 얻지 못한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그 후 졸업을 미루고 백수가 된 나는 얼마 전 또 한 번의 뜨끔함을 경험했다. ‘갓수’ 때문이다. 신(God)과 백수를 합친 ‘갓수’는 직장인보다 나은 백수라는 의미다. 8개월째 백수생활에 접어드는 나도 이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취업준비에 전념하겠다며 잘해오던 아르바이트를 접었다. 대신 부모님께 매일 아침 용돈을 받으며 지낸다. 통신비와 교통비는 별도다. 욕심만 버리면 하루를 지내기에 충분한 돈이다. 남들이 아등바등 출근하는 것처럼 쫓길 일이 없으니 느지막이 일어나도 된다. 디저트 챙겨 먹을 시간도 충분하다. 한가로운 오후에는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내가 힘들까 걱정하던 부모님은 오히려 내 눈치를 보신다. 취업준비를 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술로 부조리한 사회를 성토하고 불쌍한 우리를 위로한다. 가끔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갓수라는 단어에 뜨끔한 건 토익 강사가 말했던 ‘내 안의 나태함에 대한 부정’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토익 점수도 그대로다. 이제 난 투 아웃, 빠져나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갓수답게 사회 탓을 해보자면 이게 다 힐링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한 힐링은 갓수들에게 변명의 구실만 쥐어줄 뿐이다. 나태함을 없앨 강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고양원더스의 김성근 감독은 지옥훈련으로 유명하다. 선수들에게 거친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선수들은 김 감독을 믿고 따른다. 동기부여 때문이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고양원더스는 창단 3년 만에 놀랄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에게서 배울 점은 압박을 동기부여로 승화시키는 능력이다. 갓수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너그러움이 능사는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엄해질 필요도 있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다른 청춘들을 생각해서라도 갓수시대를 밀어내야 한다. 갓수시대에 희망은 없다.



이지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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