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마음의 명문장<13>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중앙일보 2014.04.12 00:07 종합 18면 지면보기

신은 일찍이 준비를 마쳤습니다. 왜적의 난리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거북선을 만들었습니다. 앞에는 용머리를 달고 그 입으로 대포를 쏘며 등에는 쇠못을 꽂았습니다.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으나


신은 이미 준비를 마쳤나이다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고 수백 척의 전선을 뚫고 들어가 대포를 쏠 수 있습니다. 이번 싸움에선 거북선이 돌격을 맡아 적선을 뚫고 들어가 포를 쐈습니다.



- 임진 1592년 6월 14일 충무공이 사천포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선조에게 올린 장계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에서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처음 이순신 장군을 만난 건 1975년 군 법무장교로 복무할 때였다. 그날 이후 이순신은 늘 그의 머릿속에 함께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처음 이순신을 만난 건 1975년 군 법무장교로 복무할 때였다. 당시 사병들의 정신교육 소재를 찾다 이순신을 알게 됐다. 무장(武將)으로서 이순신을 공부했지만 알면 알수록 그는 단순한 무장을 넘어서는 역사 속 위대한 영웅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판사로 재직하면서도 이순신은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단지 그를 뛰어난 전략가, 전쟁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이순신’을 38년간 연구했다. 2012년 헌법재판관에서 퇴임한 후엔 줄곧 강의와 저술활동을 통해 이순신의 정신을 전파하며 살고 있다.



 이순신을 연구하며 마음속에 가장 각인이 된 문장은 사천포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선조에게 올렸던 장계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이었다. ‘신은 이미 준비를 마쳤나이다’라는 말 속에는 이순신의 모든 것이 응축돼 있다. 자기 본분에 걸맞은 책임, 미래를 내다본 혜안, 나라를 위한 희생정신 등 리더가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이 포함돼 있다.



 그의 나이 47세, 1592년 쳐들어온 왜적 앞에 조선은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조선의 지도층은 전쟁 발발의 신호가 여러 방면에서 나타났지만 애써 전쟁의 가능성을 부인했다. 왜적이 쳐들어오자 나라를 지켜야 할 전장의 장수들은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왜적이 경상 바다로 침략해 왔으나 이에 맞서 싸워야 할 경상 좌·우수사는 진을 파하고 목숨을 보전하겠다며 도주했다. 경상 좌·우병사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이들의 마음가짐은 이랬을지 모른다. “신은 일단 살고 봐야겠나이다.”



 경상 바다가 뚫리면 다음은 전라 바다다. 그러나 여수 앞바다를 지키고 있던 한 명의 장수는 도주하지 않았다. 이미 왜적의 침입을 예상했던 그였기에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바로 이순신이다. 그는 전쟁이 나기 1년2개월 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자마자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군사훈련을 철저히 하고 그 유명한 거북선을 건조했다. 그리고 왜적이 쳐들어왔을 때 거북선을 선봉에 띄워 적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선조에게 보낸 장계에서 “왜적의 난리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미리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거북선의 등장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거북선은 판옥선(板屋船)을 개조해 만들었는데 노를 젓는 1층과 함포를 발사하는 2층으로 나뉘어 있고 그 위는 개판이 설치됐다. 배에 탄 군사를 모두 보호할 수 있는 장갑함이었고 전후좌우 사방에 화포를 배치해 막강한 화력을 가졌다. 이런 거북선이 임진왜란 발발과 함께 우리 역사 속에서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이후 이순신은 왜적과의 해전에서 23전 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전쟁이 소강 국면에 이르자 이순신은 모함을 받고 옥살이를 하게 됐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적이 다시 쳐들어오자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원균이 180여 척의 함선을 이끌고 싸웠다. 그러나 결과는 대패였다. 2만여 명의 수군이 거의 전멸당하고 원균도 목숨을 잃었다. 결국 이순신은 다시 복권돼 수군통제사로 부임했다. 이순신은 해안을 따라 좌초돼 있던 함선을 모아 열두 척의 배를 마련했다. 이순신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퍼지자 도망쳤던 병졸들도 모였다. 그때 이순신이 했던 그 유명한 말이 바로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다. “배가 열두 척이나 남아 있으므로 이순신은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서 나라를 구하겠다”는 뜻이었다. 1597년 9월 이순신은 133척의 왜선을 명량해협으로 유인해 대파했다. 그때 이순신은 단 열두 척의 배로 싸웠다. 바로 명량해전이다.



 이 같은 훌륭한 업적 때문에 이순신은 뛰어난 명장을 넘어 성웅(聖雄) 칭호를 받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이순신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위기가 다가올 때 이를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정신이고, 둘은 위기 상황에서 이를 이겨내는 지혜다. 임진왜란이 있던 16세기 조선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처한 위기 상황은 비슷하다. 오늘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요,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하니 무슨 위기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밖으로는 중국과 일본, 미국 등 강대국의 역학관계에 영향을 받는 상황에 놓여 있고 안으로는 분단된 영토에서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통일의 꿈을 생각한다면 조금도 걱정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처럼 통일만이 우리나라의 영속적 번영을 기약할 수 있다. 분단 상태론 아무리 잘 살아본들 6·25와 같은 불행의 씨앗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고 이로 인한 위기감이 늘 따라다닐 것이다. 통일은 우리가 기어코 이뤄내야 할 민족의 지상 가치다. 그러나 통일을 우리 힘으로 이뤄내지 못하면 우리 것이 되지 못한다. 자력으로 얻은 성공이 아니라 남의 힘에 의존해 얻은 과실은 남이 가져가게 마련이다.



 통일의 가능성이 마치 눈앞에 다가온 듯 흥분된 상태를 보여 기쁜 마음이 들다가도 이윽고 우려의 마음이 드는 것은 우리 사회에 이순신과 같은 리더가 얼마나 있는지 반문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만큼 통일을 대비하고 준비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통일의 부푼 꿈보다 걱정이 앞선다. 임진왜란 때 그 누가 관심을 갖지 않아도, 심지어 임금조차 내치려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거북선을 만들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이순신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통일을 방해하는 그 어떤 위기가 닥쳐왔을 때 “신은 이미 준비를 마쳤나이다” 하며 나설 우리 시대의 리더는 어디 있을까.



 통일을 누구 혼자의 힘에만 의존할 수야 있겠느냐만 그래도 핵심적 역할을 할 리더가 나와야 한다. 임진왜란 때 이 땅을 지켜냈던 이순신 같은 영웅 말이다. 지금도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시대의 역사적 사명을 지고 묵묵히 통일 한국의 기틀을 다져가는 누군가 있다면 가슴 깊이 이순신의 명언을 새겼으면 한다. “신은 이미 준비를 마쳤나이다.” “신에겐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다가오는 28일은 충무공 탄신 469주년 되는 날이다.



글=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38년간 이순신 연구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이순신 책만 다섯 권을 냈다. 38년 동안 이순신을 파고들었다. 그 또한 이순신을 닮아갔다는 평을 듣는다. 2012년 헌법재판관 퇴임 때는 30여 명의 후배 판사들이 직접 글을 써 그를 위한 책을 엮을 정도로 신망이 두텁다. 퇴임 후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가 되지 않고 이순신 정신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 왔다. 오는 5월 서울·부산에서 이순신아카데미를 열어 교육활동에 매진할 계획이다. 1948년 경남 창녕 출생.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7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로 33년 동안 공직 생활을 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