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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생명 살려" "아이 더 버린다" … 베이비박스 앞날은

중앙일보 2014.04.11 01:00 종합 3면 지면보기
러시아 베이비박스 2012년 러시아 북서부 키리시 지역에 설치된 러시아의 10번째 베이비박스를 시민단체 관계자가 열어보고 있다. 러시아 등 19개국에서는 베이비박스가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베이비박스에 대해 “아동이 부모 밑에서 자랄 권리를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중앙포토]

경기도 군포시의 새가나안교회는 최근 300여만원을 들여 철제 베이비박스를 주문 제작했다. 기본적으로 ‘국내 1호 베이비박스’인 서울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를 본떴지만 온도조절 기능 등을 강화했다. 교회 측은 이번 주 내로 교회 현관 1층에 상자를 설치해 다음 주부터 아이를 받을 계획이다. 임병철(46) 부목사는 “쓰레기통, 길거리에 버려지는 생명을 어떻게든 살릴 생각을 해야지 베이비박스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2009년 12월 국내에 처음 도입된 베이비박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초의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는 주사랑공동체교회는 경기도 일산으로 확장·이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흘에 두 번꼴로 아이들이 들어와 연면적 330.5㎡(1, 2층 각 50평) 규모의 교회에 수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2644㎡(800평, 지하 1층·지상 1층) 대지에 베이비박스 건물을 새로 짓고 있다. 이 교회 정영란(44·여) 전도사는 “인근 주민들이 ‘아이를 맡기러 미혼모들이 들락거리는 게 싫다’며 반대해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인 ‘지구촌사랑나눔’을 운영하는 김해성 목사도 “다문화·외국인 전용 베이비박스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현재는 버려진 아이라도 외국 국적이면 정부가 지원하는 보육원 등 시설로 갈 수 없다. 김 목사는 “1991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우리 정부가 동의한 만큼 외국 국적 아이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베이비박스 도입 취지를 밝혔다.

 부산시 사상구의 C사회복지재단은 “난곡동 베이비박스가 수용할 수 없는 지방 아이들을 받겠다”고 나섰다. 실제로 지난 5일 대구의 한 중학생 미혼모가 낳은 생후 이틀 된 아이를 받기도 했다.

 베이비박스가 확산되는 것을 놓고 찬성·반대 논란이 일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버려지는 생명을 살린다”는 측과 “아이를 버리는 행위를 오히려 조장한다”는 반대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는 행위가 ‘유기(遺棄)’인지도 애매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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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곡동 베이비박스를 관할하는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사람이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 놓고 가거나 생명이 위협받을 만한 환경에 버릴 경우 아동유기죄를 적용할 수 있지만, 주사랑공동체교회처럼 공개된 보호시설에 두고 가는 것은 애매해서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송준헌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미혼모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상 베이비박스를 당장 폐쇄하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양인 단체는 베이비박스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1986년 미국으로 입양된 섀넌 하이트(33·여)는 “베이비박스는 아이에게 부모가 누군지 알 권리가 있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면서 "친부모의 동의 없이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해외입양인모임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는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환경을 개선하는 게 더 중요한데 베이비박스는 이를 더 외면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도 베이비박스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책임지기보다 양육을 회피하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입장이다.

 반발이 거세지자 서울 가리봉동의 지구촌사랑나눔 측은 일단 베이비박스 대신 ‘원치 않는 임신 출산 지원 센터’를 세우기로 했다. 부산시 사상구의 사회복지재단은 “당분간 아이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해외에서도 베이비박스 찬반 논란이 뜨겁다. 현재 미국·독일·체코 등 19개국에서 베이비박스를 합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8월 체코에 대해 “베이비박스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부모를 알고 부모로부터 양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므로 중단시켜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네덜란드는 2012년 도입을 검토했다가 이같은 논란을 의식해 설치하지 않았다.

이유정 기자

◆베이비박스(Baby Box)=미혼모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양육하기 힘든 사람이 영아를 두고 갈 수 있도록 한 상자. 베이비박스에 남겨진 영아들은 경찰 조사 등을 거쳐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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