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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외교부, 미국 콧대 누른 파키스탄을 보라

온라인 중앙일보 2014.04.08 18:38
유지혜 정치국제부문 기자
"북한의 무인 항공기 도발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응 조치가 뭐가 있나."(기자)



“우리 영공을 침범했으니 국제법 위반도 맞다. 평화에 대한 위협 방지를 규정한 유엔헌장 위반도 맞다. 그런데 제재 수단은 마땅치가 않다.”(외교부 당국자)



북한의 무인항공기 도발에 외교부 반응은 미지근하다. 도발의 수준으로 봤을 때 국제 사회의 지지를 구해 제재를 추진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제재를 하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거쳐야 하는데,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까지 갈 것도 없이 북한의 무인 항공기가 세계 평화에 큰 위협이라고 설득하는 것 자체가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극히 현실적인 판단이다. 우리로선 하늘이 뚫렸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지만, 탄도미사일 발사나 핵 실험 등을 기준으로 북한에 제재를 가해온 국제사회의 체감온도는 이와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제기에 그친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국제사회에 북한 무인기의 위협을 각인시키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파키스탄은 계란으로 바위를 친 나라다. 아프가니스탄과 접경을 이룬 파키스탄은 미국 무인기의 가장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파키스탄이 무인기 공습에 항의하며 국제사회 차원의 대응을 촉구할 때도 초기 여론은 뜻뜨미지근했다. 테러대응이라는 미국의 명분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국 국회 결의 등을 통해 민간인 희생을 부각시켰다. 국제 인권단체와 협력해 무인기의 살상력을 강조했다.



이는 유엔의 인권 특별보고관 파견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25차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는 미국의 무인기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가 수백명에 이른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파키스탄이 주도하는 ‘드론(무인기) 결의안’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였다.

결의안을 두고 투표가 이뤄진 3월28일 미국은 “무기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인권이사회는 무인기 문제를 논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며 회원국들에게 반대표를 행사해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결과는 찬성 27, 반대 6, 기권 14. 유엔 인권이사회는 무인기 운용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제법 준수 의무를 지키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했다.



이 결의안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세계가 경각심을 갖고 향후 미국의 무인기 운용 정책을 눈여겨볼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인기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첫 결의안이 나오는 과정에서 파키스탄이 기울인 노력을 외교부는 눈여겨봐야한다. 쿠바나 베네수엘라같은 ‘반미 국가’들 뿐 아니라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미국의 우방국들이 찬성표를 던진 것은 파키스탄의 집요한 외교전이 얻어낸 성과다. 국가 안보가 걸려있는 문제다. '해보나 마나'인 노력은 없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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