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4화> 암환자의 행복찾기

온라인 중앙일보 2014.04.08 08:45
지난번 ‘불효일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암환자에게 일상은 중요하다. 일상이라는 것이 없으면 인생이 없는 것이고, 하는 일이 없으면 금세 피폐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병이 있고 없고를 떠나, 멀쩡한 사람도 하는 일 없이 종일 집에만 있으면 폐인 취급을 당하기 쉽다.



하지만 암환자가 재미난 일상을 갖기는 어렵다. 하지만 즐거운 일상은 힘든 투병생활 중 그나마 힘이 되고, 삶의 의욕을 찾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아버지의 옆 병상에서 입원했던 아저씨도 그랬다. 암치료로 힘들었지만, 의욕적으로 집안 문중일을 맡아서 하셨다. 본인에게는 큰 희생이고 봉사였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무언가에 몰두하면서 병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으면 암 환자가 직접 해보는 것도 좋다. 아버지의 경우 비빔국수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꽤 잘 만든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 댁에 가면, 아버지에게 비빔국수를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를 자주 했다. 영문을 모르는 나의 친구들은 이런 이야기를 전해듣고 “갈비를 사드리지는 못할 망정 무슨 불효냐”고 말하지만 아니올시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부모로서 아들 밥 한 끼 차려주는 것이 좋은 재미요, 또 의미가 될 수 있다.



아버지는 비빔국수를 잘 만들고, 또 좋아한다. 가족들에게 국수를 만들어 주는 것에 하루의 행복을 느낄 때도 있다. 맵긴 한데 꽤 맛있다. [이현택 기자]
아버지에게 요리정보 프로그램은 하나의 촉매다. 식욕을 돋우는 촉매다. EBS에서 하는 ‘최고의 요리비결’은 단골 메뉴. 최근 격투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파이터 윤형빈이 MC로 나와 요리 전문가들과 함께 요리를 만들고 먹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올리브에서 하는 ‘마스터 셰프 코리아’ 재방송도 꾸준히 본다.



생활정보 프로그램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는 생생정보통에서 6시 내고향, VJ 특공대 등 음식이 나오는 거의 모든 교양 프로그램을 섭렵한다. 이번 주에는 문어가 나와서 어떻게 데쳐먹는 방법이 나왔더라, 고등어는 TV에 나온대로 구이를 해보니 맛있더라 등의 말씀을 하신다.



최근에는 JTBC에서 방영한 새로운 교양프로그램 ‘꿀단지’ 이야기를 나눴다. 딸기축제현장에 나왔던 이색 요리들을 이야기하며, 딸기 요리가 얼마나 맛이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물론 그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장성규 아나운서가 나와 절친하고, 요즘 몸짱 프로젝트로 헬스에 여념이 없다는 이야기까지 곁들여서.



같이 어딘가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한정된 ‘체력’이 문제다. 지난번 용왕산 산책 때도, 본래는 산책을 마치고 내 신혼집으로 가려고 했다. 산책이 끝났는데 며느리가 차려준 밥 한 상 먹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 아버지를 모시고 저녁을 집에서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잠깐의 산책과 토스트 한 개를 드시고는 갑자기 피곤과 잠이 몰려와, 급히 집으로 돌아가셨다. 며느리 앞에서 잠들 수는 없다는 말씀이셨다.



그래서 집 근처에 갈만한 곳, 나갈 구실을 찾아봐야 한다. 물론 돈도 별로 안 들면서 말이다. 내 결혼 준비는 좋은 ‘건수’였다. 2시간 정도 마트에서 돌면서 국자나 빨래 건조대, 옷걸이 같은 것을 구매하고, 비어 있는 신혼집에 하나씩 설치해 보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소일거리였다. 결혼 전 한 달 정도를 주말마다 그렇게 보냈다.



집안을 꾸미는 것은 아버지에게는 그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일이 늦게 끝나고 술먹고 오기 일쑤”라며 인정하지 않을 어머니의 의견도 있겠지만, 매년 여름이면 나와 함께 해수욕장에 가 텐트를 치고 된장찌개를 끓여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공부방의 배치를 바꿔야 한다며 대청소를 했던 사람이었다.



그 때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옷을 걸 행거를 설치하면서, 옛날 이야기를 꺼낸다. 어릴 적 내가 장난을 쳤던 이야기며, 책꽂이를 설치해 줬던 이야기 등을 이야기했다. 지금도 신혼집을 방문하면 아버지는 줄자를 달라면서 집안 곳곳의 배치를 바꿀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또 아버지의 관심사요 취미이기도 하다.



신혼집을 찾은 아버지가 줄자를 재고 있다. “이곳에 책꽂이를 놨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어째 “책 좀 읽으라”는 질책으로 들리는 느낌이다. [이현택 기자]
아버지의 지식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학원을 오래했던 아버지는 교육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긴다. 어떻게 공부를 시켜야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공부 이야기는 대부분 나에 대한 잔소리로 이어져서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대개 “기자가 됐다고 끝이 아니다” “무식한 기자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도태될 가능성이 있다” “술이나 먹고 다니는게 기자의 전부는 아니다” 등등. 열심히 전문성을 살려 훌륭한 기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지만, 어째 요즘의 행실을 눈에 보듯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뜨끔할 때도 많다.



오늘은 아버지가 퇴원했다. 퇴원한 아버지는 즉시 가구가게에 방문했다. 며느리가 “신혼집에 식탁이 없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을 마음에 담아뒀다가, 퇴원과 동시에 가구단지로 향했다. 카카오톡으로 아버지가 보낸 식탁 사진이 전송됐다. 15만원에 의자까지 있으니 ‘거저’나 다름없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식탁 하나를 들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버지는 가구가게 트럭을 타고 신혼집으로 달려오고 있다. “움직이니 좀 덜 아픈 것 같다”는 말과 함께.



* ps. 혹시나 싶은 불효자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식탁 구매비는 내가 가게 주인에게 입금했다.



이현택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