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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원 쥐고 보육원 나서는 그들

중앙일보 2014.04.08 01:05 종합 1면 지면보기
지난달 25일 서울의 한 장애아동복지시설에서 장성원(31)씨가 휠체어를 정리하고 있다. 13년 전 보육원을 퇴소한 장씨는 불법 다단계에 빠져 수백만원의 빚을 졌다. 고시원 생활을 하며 빚을 청산한 장씨는 현재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장성원(31)씨는 28년 전인 1986년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홀로 버려진 채 발견됐다. 당시 세 살, 어린 나이라 부모가 누구인지, 어디서 살았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장씨는 이때부터 서울 금천구의 한 보육원에서 15년을 살았다. 성실하게 생활한 덕에 중·고등학교를 잘 마치고 경기도 안양 소재 한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동복지법에 따라 19세가 되던 2001년 장씨는 보육원을 나와야 했다. 손에 쥔 돈은 시에서 받은 정착지원금 수백만원이 전부였다. 서울 대방동의 자립생활관인 돈보스코 입소 추첨에 뽑힌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수입이 없다 보니 지원금은 바로 바닥이 났다.

 “아는 사람이 대출을 받아 투자하면 돈을 불릴 수 있다고 소개해 줬는데 알고 보니 건강 음료를 비싼 값에 파는 불법다단계 일이었어요. 세상 사람들 앞에 보란 듯이 큰소리치며 살고 싶었는데….”

 큰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700만원의 빚이 생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규정상 24세가 되자 생활관을 떠나야 했다. 금천구의 월세 30만원짜리 고시원에 들어갔다. 겨우 다리 뻗고 누울 공간에 손바닥만 한 창문이 하나 있는 방에는 한낮에도 햇빛이 잘 들지 않았다. 한동안은 맨 정신에 잠조차 들 수 없었다. 매일 밤 소주 1병을 마시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정신을 차려 인근 대형마트에서 상자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최소한의 생활비만 쓰며 1년 만에 빚을 거의 다 갚았다.

 사라졌던 희망도 다시 생겨났다. 전공을 살려 2007년부터 경기도 이천·양주 등에 있는 장애인·아동 요양시설에서 일을 시작했다. 현재 장씨는 서울의 한 장애아동복지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장씨는 19세 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보육원 출신들이 당장 맞닥뜨리는 건 지독한 생활고라고 했다.

 보육원을 나오면 대부분 자립생활관-고시원-단칸방 등 불안전한 형태의 주거지를 전전한다. 일부는 노숙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지난 2012년 11월 영등포역에서 보육원 출신 박모(당시 39세)씨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채 발견됐다. 박씨도 정착지원금을 받고 보육원을 나와 공장에 취직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직장을 잃었다. 그 뒤 영등포와 서울역을 전전하다 생을 마친 것이다.

 대전 노숙인지원센터에 사는 이모(36)씨 역시 보육원 퇴소 후 전문대에 진학했지만 1년 만에 중퇴했다. 직장을 가져도 6개월을 넘지 못하고 그만뒀다. 현재는 청소일 등 일용직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보육원을 나올 때 이들 손에 쥐어지는 정착지원금은 100만~500만원 수준이다. 그나마 전남 등 일부 지자체는 예산이 없어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다.

 정부가 1인당 최소 기본지원금 700만원과 주거지원금 1300만원을 지급하는 탈북자와 비교해도 10분의 1 수준이다.

 보건복지부가 2012년 보육원 퇴소자 96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90%는 아르바이트(임시·일용직)로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퇴소자 44%는 월소득 100만원 이하였다. 보육원 출신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최저 임금(108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또 4명 중 1명이 월세살이를 하고 있었다.

 이순덕 서울시아동복지센터 소장은 “지자체로선 한계가 있고 정부가 나서 이들의 사회 정착 지원과 취업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취재=강기헌·장주영·이유정·정종문·장혁진 기자
◆사진=김상선·송봉근·박종근·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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