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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rot] 너도 내 애인 … 차 꾸미는 남자들

중앙일보 2014.04.08 00:28 경제 2면 지면보기
MINI와 캐나다 의류브랜드 디스퀘어드가 협업해 튜닝한 MINI 컨트리맨 아트카. 헤드램프를 추가하고 휠과 유리 등을 튜닝했다. [사진 BMW]


“지난해 BMW 미니쿠퍼를 구입했는데, 어떻게 꾸미면 차가 더 개성 있게 보일 수 있을까가 요즘 제 주요 관심사거든요. 여기서 살펴보니 툭 튀어나온 트렁크가 없어 뒷면이 예쁜 미니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도록 뒤쪽에 컬러 스포일러(차량 가장자리에 부착돼 공기 저항을 줄여주는 일종의 날개)를 달면 좋겠네요.”

'나만의 개성 만들기' 동호회 북적
수입 소형·준중형차 위주로 튜닝
시장 5000억 … 규제 간소화하기로
여성 전유물이던 액세서리도 관심
수입차 업체들 아예 직접 디자인



 지난달 28~30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자동차 애프터마켓 전문전시회 ‘서울 오토모티브 위크’. 이 전시회를 보려고 주말을 모두 비웠다는 회사원 정재식(26·경기도 성남시 정자동)씨는 BMW 미니 튜닝카가 전시된 부스 앞에서 차량을 한참 살피더니 이렇게 말했다. 뒷면 스포일러를 튜닝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0만~30만원. ‘돈이 좀 아깝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깝긴요. 미니를 제 여자친구 삼아서 데이트 비용으로 투자하는 건데요.”



 서울 역삼동 강남세브란스 앞 사거리엔 자동차 튜닝 업체 10여 곳이 몰려있다. 그런 이유로 온라인 튜닝 동호회 사이에선 일명 ‘튜닝 사거리’로 불린다. 1일 오후 찾은 이 사거리엔 정씨처럼 ‘어떻게 하면 차를 좀 더 꾸며볼까’ 하는 고객들의 전화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에 위치한 독일차 전문 튜닝기업 아승오토모티브의 서지훈 마케팅팀 이사는 “최근 수입차를 직접 튜닝하려고 문의하는 고객들의 수가 2~3년 전에 비해 4배로 늘었다”며 “20, 30대뿐만 아니라 40대 남성 고객들도 많다”고 밝혔다.



 ‘차 꾸미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 ‘차량용 액세서리는 여자들이나 사는 것’ ‘자동차 튜닝은 시끄러운 머플러 달기’ ‘큰 배기음을 좋아하는 폭주족들이니 하는 것’ 등의 선입견을 깨면서다.



 수입차 브랜드마다 있는 온라인 튜닝 동호회의 회원 수는 수천 명에 육박하고, 2000년대 초반 우르르 문을 닫았던 튜닝업체들도 속속 돌아오는 중이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기준으로 5000억원 정도였던 국내 자동차 튜닝 시장도 올해엔 60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사실 한국 남성들은 그간 자동차 액세서리를 외면해 왔다. 한국보다 자동차 튜닝·액세서리 시장이 앞섰다고 평가받는 일본 시장에서 2000년대 후반 ‘헬로키티 차량 용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게 시초다. 고양이 캐릭터가 박힌 분홍색 차량용 시트, 핸들 커버 등이 불티나게 팔리자 2010년 국내에서도 전자랜드가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하며 덩달아 ‘헬로키티 붐’이 일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온·오프라인에서 팔리는 차량용 액세서리의 80%가량이 여성용이었다. 튜닝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보험도 출시가 안 된 데다 제조업체에서도 제대로 된 보증을 받을 수 없어 ‘불법’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국내에서도 튜닝·액세서리 붐이 분 건 종류와 트림이 다양한 수입 소형·준중형차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2010년쯤부터다. 20, 30대 남성층을 위주로 중형이나 대형 세단보다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박스카 같은 개성 있는 차량이 많이 팔린 것이 주된 이유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튜닝을 받는 차량들의 50%가 벤츠 S클래스 같은 최고급 세단보다는 BMW의 MINI나 폴크스바겐 티구안 같은 차들”이라며 “국산차에 비해 독특한 디자인을 찾는 고객들이 튜닝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즉 ‘나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 층 남성 고객들이 튜닝이나 액세서리 구입도 많이 한다는 얘기다.



  차량용 액세서리 시장도 덩달아 쑥쑥 크고 있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등 일부 수입차 업체들은 아예 차에 구비할 수 있는 액세서리를 직접 디자인해 판다. 매년 종류를 10~20%씩 늘려 현재 종류가 수백 가지에 이른다. 차량용 USB, 시트, 컬러 와이퍼부터 여행용 캐리어까지 다양하다. 일반 제품에 비해 평균 1.5배에서 4~5배까지 비싼 제품도 있지만 불티나게 팔린다. 폴크스바겐 관계자는 “지난해 자동차 액세서리 판매 비중이 2007년과 비교해 9.5배 늘었는데, 구매 고객 대부분이 20~40대 남성 층”이라고 밝혔다.



 수요가 늘며 관련 튜닝업체들은 서서히 사업 규모를 확장 중이다. 아승오토모티브는 지난달 포르셰 전문 튜닝 브랜드인 ‘테크아트 코리아’를 출시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튜닝브랜드인 ‘브라부스’, 폴크스바겐 튜닝 브랜드인 ‘압트’를 공식 수입하고 있다. 서 이사는 “튜닝문화가 앞선 유럽처럼 튜닝 관련 보험이 만들어지고, 제조업체에서 튜닝카 보증 등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주시하며 사업 규모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일러 전문 튜닝업체인 SM코리아의 유석춘 대표는 “튜닝 문화가 과거에 비해 널리 보급돼 수입차뿐 아니라 기아차 K3나 K5 등 국산차를 모는 남성 고객들의 문의도 많다”며 “이런 추세에 힘입어 최근 출시된 신형 쏘나타의 튜닝 부품들도 이미 개발을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아예 자사 차량들을 간단하게 튜닝할 수 있는 자체 브랜드 ‘튜익스’를 2010년부터 운영 중이다. 주유구 캡이나 차량 휠, 전면 플레이트 등을 원하는 대로 변경할 수 있다.



 넘어야 할 장애물도 있다. 그간 국내 튜닝산업은 ‘자동차에 손만 대도 불법’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현행법 역시 차량의 7개 구조 장치 가운데 2개 구조, 21개 장치 중 13개 장치에 대해서는 승인을 받고 변경하도록 하고 있다. 나머지 5개 구조와 8개 장치와 관련된 튜닝은 아예 불가능하다. 튜닝업계 관계자는 “승인을 받으려고 해도 5단계를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거의 불법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국내보다 안전 관련 규정이 엄격한 유럽 시장에서도 이 정도까지 튜닝을 규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승인 대상을 확대하고 절차도 간소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자동차튜닝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대림대 김필수(자동차학) 교수는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들이 시급히 개선돼야 선진형 튜닝 제도와 문화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혜경 기자



◆자동차 튜닝=자동차를 운전자 취향에 맞게 개조하거나 꾸미는 것. 크게 자동차 외관을 바꾸는 ‘외부 튜닝’, 계기판이나 좌석 등 내부를 바꾸는 ‘내부 튜닝’, 그리고 엔진이나 머플러 등을 손대는 ‘성능 튜닝’ 등 3가지로 나뉜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 라인인 AMG는 독일 아팔터바흐에서 벤츠 전문 튜닝업체로 출발해 본사에 인수된 경우다. 국내에서는 현재 약 600여 개의 튜닝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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