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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3화> 암환자, 왼손에는 신라면 오른손엔 인절미

온라인 중앙일보 2014.04.07 17:12
“암 환자도 일상이 있다.”



필자와 친한 어떤 약사가 해준 말이다. 대학병원 약무국 경험을 살려 현재는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인데, ‘불효일기’ 첫 회를 보자마자 했던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반인, 암에 걸리지 않은 비환자의 경우 암 환자들의 일상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투병이나 잘 하시지”라는 말과 함께.



아버지의 일상 중 굵은 줄기를 몇 갈래로 추려보면 이렇다. 식사(음식), 대화(만남 또는 전화), 관찰(TV 또는 산책) 정도가 된다. 오늘은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음식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암 환자는 술을 못 먹는다. 기력이 떨어져 일상이 재미가 없거나, 재밌더라도 기력이 딸려 얼른 집에서 잠을 청하는 경우도 많다. 산책도 하지만 재미보다는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 차원인 경우가 많고, 그나마 TV를 보기도 하지만 보다가 잠들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삶이 별 재미가 없을 때가 태반이다.



그 일상에 단비같은 것이 바로 음식이다. 암 환자는 몸이 예민하다. 특히나 미각이 예민해진다. 그래서 음식 선택이 까다롭다. 예전 같으면 “김치찌개 떨어졌대요”하면 부대찌개나 된장찌개를 시켜서 먹을 법한데, 굳이 김치찌개를 찾아 1㎞를 걸어서 가는 것이 암환자의 마음이다.



“그 인절미 어디서 샀수?”



얼마 전 이야기다. 일을 마치고 병실에 갔는데, 인절미를 먹는 아버지 옆 자리에 계신 아저씨가 한 말이다. 아버지는 “입원 전 사가지고 온 계피떡하고 인절미입니다”라고 했다.



‘인절미가 맛있게 보였나 보다’라고 생각하면 일반인, 병원 본관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파는 10피스짜리 작은 인절미 포장을 생각했다면 병원 좀 다녀본 암환자 또는 가족일 것이다. 아버지가 다니는 병원 암병동에서는 인절미가 인기다. 간단히 먹을 수 있고, 항암제로 입이 헐은 환자들에게 부드럽게 넘어간다고 했다. 그래서 많이들 사다먹는다. 한 번 입원하면(2박 3일), 2~3팩 정도는 구매한다.



잔뼈가 굵은(?) 환자들은 입원할 때 신라면 작은컵을 챙겨온다. 아버지가 다니는 병원 본관 편의점에는 신라면 컵이 없다. 물론 신라면 블랙 컵은 있지만, 두 라면 사이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신라면 블랙은 깊은 사골 맛이 가미됐지만, 신라면 특유의 맵고 속을 후련하게 풀어주는 맛은 덜하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빨간 신라면 컵’을 찾게 된다. 병원 다른 건물 편의점에는 신라면 ‘빨간 컵’이 있다는데, 아직 나는 못 찾았다.



환자들은 신라면이 없을 때, 병원 편의점에서 참깨라면을 사다 먹기도 한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지난 2년간 병실에서 봤던 아저씨들은 거의 그랬다. 나 역시 아버지의 말을 듣고 편의점에 갔다가 “신라면 없는데요”라는 말을 한게 3번째다. 그 때 마다 “오기 전 회사에서 사가지고 올 걸”이라 후회했다. 3번 정도의 시행착오(및 망각) 끝에, 아버지는 불효자 아들을 믿지 않고 입원 때마다 신라면을 챙겨온다.



오늘도 점심시간을 틈타 병원에 들렀다. 아버지는 대구탕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병원에 있는 식당에서는 대구탕 포장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떤 때는 시간이 되지 않아서, 어떤 때는 손님이 많아서 등이다. 가끔 어머니는 오리옥스에서 대구탕을 포장구매하는데 성공했다고 내게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너는 왜 그 모양이냐”는 말로 읽히기도 한다. 정중하지만 차갑게 거절하는 직원분에게 아쉬운 소리로 이야기해 보지만, 오늘도 구매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입원했을 때마다, 꼭, 거기 대구탕을 먹고 싶다고 한다. 항암제를 맞아 속이 니글거리는데, 그 대구탕을 먹으면 속이 풀어진다는 이유와 함께. 이 말에 오늘도 내일도 가족들은 입원과 동시에 그 식당에 찾아가 대구탕을 읍소한다.



“대구탕 안 된답니다.” 아버지는 장고(?) 끝에 2지망으로 뚝배기 불고기, 3지망으로 우거지해장국을 걸었다. 우거지해장국 빙고. 다른 식당에서 얼른 포장을 해 갖다 드렸다.



대구탕, 뚝배기 불고기 메뉴 선정에 실패한 아버지가 우거지해장국을 먹고 있다.[이현택 기자]




아래 사진은 마침내 포장에 성공한 대구탕을 흡족하게 먹는 아버지의 모습. [이현택 기자]




가끔은 시샘과 속상함이 겹치는 감정이 있기도 하다. 그냥 아무거나 드시지. 하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는 메뉴 선정보다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 며느리의 방문 정도? 입원해 있는 오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도 아버지의 메뉴 선정이었다.



“암 환자는 이런 음식 드시면 안 됩니다”



이런 이야기와 함께 영양식이나 힐링 푸드만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가한 소리. 암환자인 아버지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직화구이 먹지 마라, 고기 먹지 마라 이야기들을 해서 교수님(주치의 교수)한테 물어봤어. ‘영양실조로 죽게 생겼는데 뭘 가립니까’라더라고. 무슨 얼어죽을 항암식품 같은 소리.”



그렇다. 항암식품 이전에, 하루 한 끼를 배불리 먹는게 중요하다. 항암식품이라는 것은 예방 차원이고, 암이 발병한 이후에는 무조건 먹고 영양보충을 해 암세포와 싸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학설이야 어찌 하던 간에, 오늘은 일단 점심 한 끼를 잘 먹었으니 됐다고 하신다. 항암치료 중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한 끼 제대로 먹기가 힘들다고 한다.



어쨌든, 오늘 아버지는 우거지해장국으로 한 끼 잘 드셨다. 이렇게 한 끼 한 끼 드시면, 적어도 영양실조는 안 되지 않겠나. 2006년 미국 뉴욕대 의대 종양학과 전후근 교수팀 연구결과에 따르면, 암환자 10명중 2명 이상이 영양 부족 때문에 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사실 가장 완벽한 영양소가 갖춰진 것은 병원밥이다. 병원밥 중에서도 고단백 영양식을 시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입맛이 없다고 “못 먹겠다”는 환자에게는 답이 없다. 입에 맞는 것을 뭐든 드시게 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책인 것 같다.



그런데 듣고 보니, 어머니에 대한 ‘고나리질’(쓴소리를 하거나 이것저것 간섭하고 가르치려고 하거나 이유 없이 비평하는 것을 표현하는 인터넷 신조어) 아닌가 싶다. 어머니는 “몸에 안 좋은 음식은 절대 안 된다”면서 돼지고기도 쪄서 준다고 한다. 아버지 퇴원하시면 어머니 몰래 곱창 구이나 먹어야 겠다.



이 글을 보는 독자 중 부모가 암환자인 분이 있다면, 입원한 부모가 계실 때 병원에 뭘 사갈지 생각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케이크보다는 장조림, 과일바구니보다는 육개장, 주스 세트보다는 잘게 갈린 멸치땅콩 팩이 더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주관적인 평가다. 암환자 가족과 대화를 해서 정하시길.



* ps. 퇴근하는 길에 병원에 한 번 더 들렀다. 아버지는 역시나 ‘대구탕’ 이야기를 하셨고, 이번엔 신기하게 포장이 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게 효도”라고 한다. 역시 정성의 차이였나.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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