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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 부장의 삽질일기 4. 소머리 두 개 삶고, 막걸리 몇 짝 들여놓고

온라인 중앙일보 2014.04.07 09:51


- 공산주의 하는 거여

- ??

- 오늘부텀 우리는 공산주의 하는 거란 말이여

- #$%?%*!

- 아, 니 밭 내 밭 읎이 같이 일 허구 소출 나눠먹는다는 말이여

- 으히히히

- 날아가는 새 뭐를 봤나, 꽃 보더니 주딩이 근육이 풀렸나 웃긴 왜 웃는겨

- 푸히히히,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돼?

- 일은 내가 대충 해놨으니 저그 쥔장헌티 가서 씨감자나 한바가지 구해오소



오후 1시 넘어 1호 당원 용석 군이 아내를 모시고 밭에 나왔다. 이거 뭐 등산객 차림이다. 뒤이어 2호 세일 군이 등장했다. 여기도 등산화다. 예비당원 경석 군은 읍내에 일이 있어 눈물을 머금고 못 왔단다. 당원 번호는 출석 순이다. 한동안 미쳤던 날씨가 제자리를 찾아 아침엔 쌀쌀하다. 햇살이 퍼진 뒤 10시 쯤 밭에 도착했다. 키 큰 작물 지지대를 꽂고 밭 주변을 정리했다. 씨앗 붓는 일이 한해 농사를 좌우하는데, 이를 초보 당원들에게 맡길 수는 없다.



- 벌써 왔어요? 내일 개장식에 오시지

- 일욜은 노가다 뛰어야 혀유

- 작년에도 개장식 때 못 오시더니

- 그러게 반굉일날루 옮기믄 안 되는규?

- 소머리 둘 삶고 막걸리도 몇 짝 가져올 건데

- 하이구 말이나 마시지







작년에 부쳐 먹던 땅 옆에 다섯 평짜리 하나를 더 붙인 밭은 제법 크다. 쥔장은 우리 밭을 특별히 크게 만들어줬다고 공치사가 한 드럼통이다. 쥔장이 착각을 하여 저쪽에 따로 배치했던 세일 군 밭까지 내 옆으로 옮겼다. 하루 일찍 나가지 않았으면 이산 당원이 될 뻔했다. 셋이 합쳐 스무 평에, 가장자리 밭이라 밭둑까지 이용할 수 있으니 쓸 수 있는 땅덩이는 서른 평이 넘는다. 플랜테이션 농장해도 되겠다.



- 직접 하실라규 그류? 삽질은 사지 멀쩡한 저 장정들에게 맡겨유

- 시범을 보여줘야죠. 한 골만 타고 나머지는 사장님들이 하면 돼요

- 저 아자씨덜 지대루 갈켜주셔유. 나허구 같은 촌닭인디 호미 들구 기역자두 몰러유

- 감자는 말이에요 …

남은 씨앗을 묻느라 바쁜 나대신 쥔장이, 1호와 2호에게 괭이로 골을 타고 감자 놓는 방법을 전수했다. 매년 이 밭 저 밭 다니며 잔소리 겸 농사 교육을 수십 번씩 되풀이하면서도 쥔장은 항상 신난다. 몸으로 익힌 그의 말에는 오차가 없다. 고집피우다 망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대개 초보자들이 그런다.



올 농사계획은 전면수정이다. 1호와 2호 밭을 함께 붙이니 땅의 쓰임새가 그만큼 넓어졌다. 서로의 밭에 비슷한 작물 옹색하게 심느니 밭마다 작물을 여유있게 나눠 심기로 했다. 1호 밭에는 감자를 심고 나머지 공간에 시저스그린을 심었다. 2호 밭에는 아욱 근대 같은 국거리 채소와 고추 심을 공간을 비워놓았다. 쥔장은 고추 지지대 세워놓은 장소가 습하다며 반대쪽이 낫겠다고 했다. 작년에 보니 그쪽은 장마 때 물이 많이 흘러 이번엔 내 뜻대로 했다. 내 밭에는 갖가지 쌈채소와 대파 씨앗을 뿌렸다. 오이 강낭콩 완두콩 같은 넝쿨작물들을 올릴 지지대도 꽂았다. 토마토와 가지도 몇 그루 심어야겠다. 합치니 콩나물시루 같던 밭에 숨 쉴 틈이 생긴다.



- 붕어 건져가지 마셩

내 밭을 맴돌던 쥔장이 클클 웃으며 말했다.

- 뜬금읎이 붕어는 또 뭐유

- 여기 이 똥 있잖아요, 황새똥이에요. 요놈들이 붕어 잡아먹으려고 여기서 얼쩡거려요

쥔장이 미나리꽝을 가리켰다. 붕어들이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몸을 숨기느라 물이 흐렸다. 산고양이까지 들락날락한단다. 갈아놓은 보드라운 흙 위에 찍힌 짐승 발자국이 그놈들 흔적이다. 작년에 잉어며 붕어며 잔뜩 풀어 놓았는데 여섯 마리가 남았단다. 하늘이 구물구물 하더니 간간이 진눈깨비가 날린다. 호미 든 내 손은 더 빨라지고, 1호와 2호는 밭 가장자리를 따라 상추모종을 심느라 바쁘다.

- 아이구 그건 풀이 아뉴







돌아보니 용감한 1호 제수씨가 밭둑에 있는 놈들을 풀이라고 죄다 파내고 있다.



- 내가 못살아. 나물 까지 캐내 던지믄 어쩌유. 여그 이건 참나물, 저건 머위, 요건 부추유, 알것쥬?



얼굴을 스치는 빗방울에 소름이 돋는다. 당원들을 쥔장네로 피난시켰다. 1호 제수씨는 씨 뿌릴 때 나온 쓰레기들을 알뜰하게 청소해 간다. 남은 일들 후다닥 끝내고 들어간 비닐하우스가 안온하다. 기온이 이십 도를 넘던 지난주를 참지 못하고 먼저 와서 모종을 심은 이들은 동해를 입었다. 동네 비닐하우스에서 내놓은 참깨모종도 주저앉았다.



- 아무리 그려도 삽질 첫날인데 한잔은 해야제?

- 그럼 그래야지



밭에서 줄레줄레 내려오는 길에 있던 작은 수퍼가 있었다. 희미한 형광등 아래 먼지 앉은 과자봉지들이 어지러운 구멍가게였다. 오며가며 삐걱대는 문 여는 재미가 있었는데 작년에 문을 닫았다. 이 동네엔 이제 깔끔한 CU편의점뿐이다. 추리닝에 장화 신은 아저씨가 문을 여니 알바 아가씨가 흘깃 쳐다본다. 가게 밖 파라솔 아래서 2+1 감자칩 안주 놓고 막걸리 두통을 깠다. 거센 바람에 빈병이 넘어졌다. 겨우내 가지에 붙어있던 마른 잎들이 새순의 기세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툭툭 떨어져 날린다. 옆 산엔 진달래 붉고, 건너 산과 밭에는 벚꽃과 매화 눈부시다. 목을 꺾은 백목련 옆에 자목련이 벌어진다.



날씨는 실성해도 하늘은 어김없다.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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