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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병' 앓는 보육원 10대들 … 위탁가정 더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4.04.07 00:50 종합 5면 지면보기
서울 응암동 꿈나무마을 안에 있는 인조잔디 축구장에서 알로이시오초등학교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함께 공을 차고 있다. [김상선 기자]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백련산 중턱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 632명이 모여 사는 ‘꿈나무마을’이 있다. 입구를 지나자 단층 아파트 모양의 기숙사와 병원, 실내수영장까지 보였다. 4만8385㎡(약 1만5000평)에 조성된 마을은 작은 대학의 캠퍼스와 비슷한 규모로 전국 최대의 보육원이다. 천주교 재단 마리아수녀회가 서울시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서울의 화려한 불빛 한쪽에 자리한 ‘도시 속의 섬’ 같은 이곳을 지난 40년 동안 7777명의 아이들이 거쳐갔다. 80년대 후반엔 2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머물기도 했다.

우리 모두의 아이들 <상> 서울 꿈나무마을
632명 생활 국내 최대 아동시설
40년간 7777명 아이들 거쳐가
초등학교 졸업 후 외부 중학 진학
부모 있는 또래 보며 심리적 방황



 마을 중간에 있는 알로이시오초등학교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보육원에 있는 초등학생은 모두 여기서 배운다. 취재팀이 찾은 지난달 13일 학교에선 미술수업이 한창이었다. 미술교사인 백승경(41·여)씨가 아이들에게 “칠판에 있는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그려 보라”고 말했다. 칠판에는 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인 ‘위대한 가족’(창공을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의 모양이 그려진 작품)이 걸렸다. 2학년 석희(가명·9)는 파란 하늘을 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이영(62) 교장은 “어렸을 때 받은 심리적 충격으로 불안감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어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수업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곳 아이들은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중1 병’을 앓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는 잘 지내다가도 중학생이 되면 부모가 있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엇나가기도 한다. 해수(가명·15)가 그랬다. 지난해 4월 은평구 응암동의 한 빌라에서 해수는 라이터로 배전반에 불을 질렀다. 주민 신고로 다행히 큰불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해수는 현행범으로 붙잡혀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해수는 경찰에서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어서 불을 질렀다”고 했다. 해수는 보호치료 시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심상국 꿈나무마을 사무국장은 “우리 아이들에게 중학교 1학년은 ‘첫 사회 진출’인 셈”이라며 “흔히 ‘중2 병’에 빠진다고 하지만 우리 애들은 ‘중1 병’을 앓으며 방황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알로이시오초등학교는 학생 수 감소와 인력 부족으로 내년 2월 개교 40년 만에 문을 닫을 예정이다. 학교 건물은 40명 규모의 영아 보육시설로 활용된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서울시 보육원으로 영아들이 쏟아지는 것에 대한 고육지책이다.



꿈나무마을과 같은 대규모·장기 보육시설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이제 한계에 부닥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엔 아동권리위원장을 맡았던 성균관대 이양희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에서 아이들이 시설에 수용돼 있다는 게 국제사회를 상당히 놀라게 한다”며 “탈시설화를 위해 위탁가정이 더 많이 필요하고, 시설은 보호 필요 아동에게 최후 수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숭실대 노혜련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미국의 경우 지난 40~50년간의 경험을 통해 대규모 시설보다는 위탁가정이, 궁극적으로는 원가정 복귀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기헌·장주영·이유정·정종문·장혁진 기자, 사진=김상선·송봉근·박종근·강정현 기자

동영상=최효정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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