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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현오석 경제팀의 무신경

중앙일보 2014.04.07 00:01 종합 28면 지면보기
고현곤
경제에디터 겸 경제연구소장
2007년 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이른바 ‘아들 보복 폭행 사건’이 터졌다. 그룹 내에선 어떻게 대처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홍보팀은 솔직하게 시인하고, 사과해야 수습이 가능하다고 봤다. 반면 법무팀은 ‘법대로’ 해도 별문제 없다고 판단했다. 김 회장으로선 별문제 없다는 법무팀 견해에 기울 수밖에 없었다. ‘모르쇠 작전’을 택했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활극 같은 사건 실체가 속속 드러나면서 김 회장은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사안의 본질에 비해 너무 커진 사건이었다. 처음부터 김 회장이 “아들이 맞아서 순간 울컥했다. 제가 수양이 부족한 탓”이라고 부정(父情)에 호소했으면 상황이 그토록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이 꼬인 것은 그룹 내에서 정무적 판단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재벌은 연예인만큼이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다. 부러움과 동시에 질시의 대상이기도 하다. 폭행이라는 스토리까지 가미됐으니 이목을 끌 요소를 두루 갖춘 셈이었다. 그런 특수한 사정을 간과한 채 책상에 앉아 법조문만 따지다 벌어진 참사였다.



 정부에서도 정무적 판단을 못해 일을 그르친 경우가 종종 있다. 2008년 봄, 한·미 쇠고기 협상으로 촉발된 광우병 사태가 대표적이다. 중고생들이 ‘광우병 쇠고기 때문에 동방신기가 위험하다’며 길거리에 나와도 정부는 철없는 아이들의 치기 정도로 여겼다. 당시 한 경제 관료는 “미국인들은 피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먹고도 멀쩡한데 무슨 소리냐”며 우려를 일축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기세등등한 정권 초기였으니 거칠 게 없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사태가 계속 악화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출범 4개월 만에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민심을 읽지 못한 채 일방통행식으로 대처한 게 문제였다. 국민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이해를 구하고 달래야 했는데 그걸 못했다. 실용을 중시하는 CEO 대통령의 지휘 아래 앞만 보고 달리다가 빚은 참사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정무적 판단이 아쉬운 경우가 이어졌다. 현오석 경제팀은 지난해 여름, 중산층의 근로소득세 부담을 늘리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근소세 인상에 내재돼 있는 민심의 폭발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론 수렴 절차도 없었다. 조원동 경제수석은 “거위에게서 고통 없이 털을 뽑는 방식”이라고 말해 들끓는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나흘 만에 세제개편안을 수정했지만, 경제팀은 큰 상처를 입었다. 경제 관료들이 세법과 세수(稅收) 통계만 놓고 씨름했지, 중산층의 세금을 올리면 어떤 역풍이 불지 정무적 검토를 소홀히 해 벌어진 일이었다.



 비싼 수업료를 냈지만 올해도 경제팀의 정무적 감각은 살아나지 않고 있다. 2월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이 발생하자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어리석은 사람은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 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부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밀히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발언이었다.



 그 후 경제팀은 전·월세 집주인에게 세금을 걷겠다는 뜬금없는 대책을 발표했다. 한바탕 소란이 일었고, 온기가 돌던 부동산 시장은 다시 가라앉았다. 한발 물러서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논란이 많고, 실익은 적은 정책이라는 걸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정작 경제팀은 그걸 보지 못했다. 한화그룹 참모들이, 광우병 사태 당국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 관료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대한민국 엘리트다. 그들은 명철한 데다 사명감과 자부심도 대단해 온몸을 던져 일한다. 최근의 거듭된 구설수에 당황스럽고, 한편으론 억울한 마음이 들 것이다.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며 심신이 지친 경제 관료들 사이엔 “열심히 일하는데 왜 이렇게 욕을 먹나…”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경제팀은 앞만 보지 말고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국민 입장에서 전후좌우를 찬찬히 돌아보았으면 한다. 이따금 일상 업무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고 생각하는 시간도 가져야 할 것 같다. 애써 쌓은 공을 정무 감각이 떨어져 한입에 털어먹는 참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고현곤 경제에디터 겸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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