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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 모녀' 비극의 재발을 막는 길

중앙일보 2014.04.07 00:01 종합 29면 지면보기
안상훈
서울대 교수·사회정책학
또 하나의 가슴 아픈 일이 터지고 말았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얘기다. 큰딸의 만성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동반 자살한 바로 그 얘기 말이다. 세상 등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집세와 공과금만은 꼼꼼히 챙기고 간 걸 보면 어렵지만 착하고 성실했을 세 모녀의 생전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하다.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우왕좌왕 법부터 만드는 모양인데 이런 사후약방문이야 한두 번 본 게 아니라서 뒷맛이 씁쓸하다. 끊이지 않는 같은 종류의 ‘민생고 사건’ 앞에서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의 중견국가를 거론한다는 게 낯 뜨겁게 느껴질 지경이다. 도대체 어떡해야 비극의 되풀이를 끊을 것인가. 우리 모두가 방조자일 수도 있는 만큼 사건의 공모자들에 관한 사회학적 프로파일링(Profiling)이 필요해 보인다.



 첫째 공모자는 재정 제약에 따른 복지정책의 우선순위를 무시한 채 전 국민 대상의 무상복지부터 외쳐대는 선거판의 정치꾼들이다. 공짜 복지를 앞세운 표심 잡기는 넘쳐나지만 약자부터 챙겨야 한다는 분배정치의 기본 원칙은 바야흐로 실종 상태다. 급식에서 시작된 무상공약들이 보육과 의료를 넘어 버스로 이어지는 상황인 걸 보면 딴 나라 이야기 같은 민생고 관련 뉴스들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한 가지 다행인 구석이 있다면, 인기영합적인 공약들의 예상 승률이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서울대 연구팀이 수행한 2014년도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상복지에 대한 ‘국민적 회의(懷疑)’가 자명한 상황이다. 선별복지와 보편복지의 지지율이 45% 대 24%, 복지 증세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28% 대 36%로 갈리고 있다. 많이 거둬서 모두에게 주는 것보다는 조금 거둬서 취약계층부터 챙기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모양새다.



 평균적인 국민 인식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반면 약자 챙기기보다는 전 국민 무상복지를 외쳐야 안심이 되는 이들이 선거판의 정치인들이다. 취약계층 우선 배려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를 정치인들이 못 따라가는 이때 선거 정치를 넘어선 한국형의 사회적 대타협이라도 서둘러 띄워야 한다.



 사건의 둘째 공모자로는 근로환경상의 우월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복지 확대 과정의 과실마저 서둘러 독식하려는 기득권 이기주의를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약자에 대한 우선 배려가 복지정치의 모토라고 한다면 복지에 관한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는 모세 앞에서 홍해가 갈리듯이 분명하게 둘로 나뉜다. 자기에게 유리한 복지만 챙기면서 취약계층의 안위에는 눈을 감았던 남유럽 노조의 이기주의가 나쁜 정치의 전형일 것이다.



 약자 배려의 원칙에 충실했던 스웨덴 노동운동의 자기희생적 연대전략은 착한 복지정치에 관한 경이로운 얘깃거리다. 사민주의에 근거해 높은 세금과 큰 복지를 이룬 것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스웨덴에서 서둘러 배울 구석은 오히려 다른 데 있다. 복지 친화적 정치의 주력군으로서 스웨덴 노동운동이 보여준 약자 우선의 민생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노조원들이 열광한 소득비례방식(자기가 낸 만큼 받아감)의 충실한 연금에 앞서서 농민들이나 비정규직에 유리한 기초연금부터 강화했고 남성들이 원한 현금형 사회보험보다는 여성들을 위한 사회서비스형 가족정책부터 챙긴 것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취약계층 챙기기에 매진한 스웨덴의 민생정치는 세계 최고의 노조 조직률과 사민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라는 성공 스토리로 오래도록 회자된다. 근로 취약 계층의 복지 사각지대는 나 몰라라 방치한 채 복지마저 독식하려는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를 넘어서야 한국형 노동운동의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다.



 셋째 공모자는 공급자 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채 부처 이해관계만 따지고 드는 관료주의의 만연이다. 복지 선진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웬만한 프로그램은 다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있어야 할 복지정책은 거의 다 있는 이 나라에서 세 모녀 사건은 왜 일어난 걸까. 부처별로 만들어낸 유사한 프로그램이 난립하고 있는 데다 급여 수급의 조건마저 중구난방이라 정보에 약한 취약계층에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공급 주체별로 웹사이트도 따로따로, 전화번호도 따로따로라서 도대체 어디 가야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전문가들도 헷갈리는 판이다. 사례관리를 통한 맞춤형 복지를 제공할 전문인력이 선진국의 10분의 1에 불과한 상황도 문제 발생에 일조하는 공범이다. 사회부처의 인력과 예산의 고삐를 쥐고 있는 안전행정부와 기획재정부가 한국형 복지전략의 키잡이로 거듭나야 한다.



 준비할 겨를 없이 닥친 복지정치가 올봄의 성급한 벚꽃처럼 만개한 이때 복지 사각지대의 해소를 위한 일부터 서둘러 챙겨야 한다. 뜬금없는 기초연금 샅바싸움으로 여의도가 어수선한 가운데 고용복지 취약계층의 힘든 하루가 오늘도 그냥 저문다. 복지정치에 관한 민생 유감을 풀어내려면 한바탕 굿판이라도 벌여야 할까.



안상훈 서울대 교수·사회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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