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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세상은 지옥 … 그래도 버텨야 할 이유

중앙일보 2014.04.05 00:53 종합 22면 지면보기
마루야마 겐지는 젊은이들에게 “이제 막 인생이 시작되었을 뿐인데 모든 것을 다 안다는 표정을 짓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며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사진 바다출판사]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바다출판사
208쪽, 1만 3000원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바다출판사
204쪽, 1만 2000원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71)를 만나러 가는 길, 긴장했다. 그의 글을 읽은 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칼을 휘두르듯 날카롭고 힘찬 문장, “사랑과 친절의 세계 따위는 이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독설…. 일본 기자 중 누군가는 그를 만나러 왔다 혼만 나고 돌아갔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3시간 반, 일본 나가노현 시나노오오마치(信濃大町)역에 내리자 선글라스에 검은 청바지를 입은, 복싱 감독 같은 분위기의 그가 손을 번쩍 든다. 기자 일행이 헤맬까 봐 미니 트럭을 끌고 마중을 나왔다고 했다. 차에 타자마자 “한국인이라 나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며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나는 데뷔 후 50여년 간 일본 문단과 전혀 교류하지 않는다. 자기연민 가득한 글만 쓰는 나르시시스트 집단인 일본 작가들을 싫어한다. 그들에게 나를 만났다고 했다가는 욕만 먹을 거다.”

 일본에서 ‘고고(孤高)의 작가’로 불리는 그는 1943년 나가노현에서 태어났다. 스물두 살에 데뷔작 ‘여름의 흐름’으로 당시로는 최연소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이후 나가노의 시골마을에 아내와 단 둘이 살며 집필에만 매진하고 있다. 창밖으로 장대한 일본 알프스 산맥이 내다 보이는 그의 집 3층에 마주 앉았다.

 - 당신의 소설은 한국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에세이의 팬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 문장은 외국어로 번역하기 어렵다. 에세이는 말하는 감각으로 쓰니 받아들이기 쉬울 거다.”

 - 『인생따위…』는 통쾌하면서도 섬뜩하다. 태어나보니 지옥이다. 부모를 버려라, 국가는 적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나.

 “사람은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다. 부모의 생각없는 결정에 의해 험난한 세상에 나왔다. 살아갈 목적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길을 힘들여 찾으려 하지 않고 세상이 하라는 대로 대학에 가고 회사원이 된다. 그들에게 가정과 국가, 종교 그 어느 집단에도 의존하지 말고 ‘자립(自立)’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무엇이 ‘자립’인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헛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당시 기록을 보면 한 생선가게 주인이 ‘조선인을 때려잡자’고 나선 사람들에게 “그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하는 내용이 나온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양, 지성이다.”

 - 당신처럼 재능있는 사람이면 모를까, 보통 사람들은 경제적 자립조차 쉽지 않다.

 “그렇지 않다. 난 엉망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이상한 아이’로 취급당했고, 선원이 되고 싶어 통신사 양성학교에 갔는데 적성에 안 맞았다. 첫 소설을 쓸 때까지 작가의 꿈을 꾼 적도 없다. 사람들은 ‘재능’이라고 하면 남들보다 서너 개 더 가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다. 재능이란 서너 개 부족한 것이다. 그 결핍을 메우려는 분투에서 무언가가 나온다.”

 - 어쩌다 보니 작가가 됐는데 왜 평생 하고 있나.

 “데뷔작이 상을 탔을 땐 나도 놀랐다. 국어교사였던 아버지가 ‘어디서 베낀 것 아니냐’ 했을 정도다(웃음).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를 떠돌았다. 마흔살 쯤 단편 하나를 쓰게 됐는데, 초고를 읽어보니 쓰레기였다. 버리려다 한번 고쳐 쓰고, 또 다시, 그렇게 일곱번을 다시 쓰니 제법 괜찮은 작품이 되어 있었다. 내 안에 나도 몰랐던 문학적 능력이 잠재돼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알게 됐다.”

 - 당신의 말에 따르면 ‘태어나보니 지옥’인데 왜 계속 살아야 하나.

 “간단하다. 태어났으니 살아야 한다. 모처럼 생명을 갖고 세상에 왔으니 전부 보고 죽는 게 좋지 않은가. 단, 처음부터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비참한 일이 일어나도 즐겨 주겠어’라는 정신이 필요하다. 책에도 썼지만 절체절명(絶體絶命)·고립무원(孤立無援)·사면초가(四面楚歌) 등의 궁지에 삶의 핵심이 숨어 있다. 그 안에서 몸부림치는 자신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것. 그것이 자립한 인간이다.”

 그는 밤 10시면 잠이 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아침 8시까지 글을 쓰고, 나머지 시간은 정원 가꾸기에 매달린다. 최근 한국에 출간된 에세이집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는 ‘고요해서 더 시끄럽다’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 등 살벌한 시골생활이 묘사돼 있다. 3년 전부터 트위터도 시작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 움직임, 원전 사태 등에 대한 비판을 거의 매일 꼬박꼬박 올리고 있다.

 - 무척 아름다운 곳인데, 에세이에는 왜 그렇게 삭막하게 그렸나.

 “사람들은 현실의 도피처로 낭만적인 시골생활을 꿈꾸지만,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 시골에 범죄가 많다며 날카로운 창을 준비하라 권유하는 내용에 많이 웃었다.

 “집들이 떨어져 있으니 도우러 올 사람이 없다. 나도 만일에 대비해 창을 두 개나 준비해 놓고 있다.”

 - 트위터는 왜 시작했나.

 “3·11 대지진 후 분노하지 않는 일본인들에 놀랐다. 누군가 지속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트위터를 하고 있다.”

 - 정부 비판에 거침이 없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려 하는 아베 수상에 반대한다. 나는 전쟁 직후의 일본을 알고 있다. 그 끔찍한 시대로 돌아가자는 게 말이 되는가.”

 - 한·일관계가 최악이다.

 “국가를 배제하고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면 된다. 작가들도 정부 주도의 작가모임 말고 자신들의 돈으로 만나 교류하라. 같은 지구에 사는 인간으로 만난다, 이것이 진짜 글로벌화의 의미다. 거기서 진정한 평화가 나온다.”

"소설은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쓰는 것"

마루야마 겐지는 에세이 『소설가의 각오』에서 “소설은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그는 “언어는 인간만이 가진 도구이고, 그 도구를 사용하는 테크닉을 갈고 닦아 완전히 몸에 익히는 것이 작가의 사명”이라고 했다. “영상이 판치는 시대, 사람들은 문자를 통해 이미지를 떠올려야 하는 소설을 귀찮아 한다. 하지만 그 자체로 정말 뛰어나고 완벽한, 사람들이 감탄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들어낸다면 문학에도 미래는 있다.”

 ‘물기척이 심상치 않다’(『물의 가족』), ‘나만 알고 있는 사과밭이 있다’(‘달에 울다’) 등 시어(詩語) 같은 문장이 이어지는 그의 초기작들은 “언어로 표현된 최고의 영상미학”(김춘미 고려대 교수)이라는 평을 받았다. 1990년대 이후에는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등의 작품에서 무생물과 추상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인칭과 시선’의 실험을 계속 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유일하게 나를 감동시킨 소설”로 꼽아왔던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자신의 문장으로 새롭게 쓴 『백경이야기(白鯨物語)』를 출간했다, 올해 1월에는 본인의 소설 『천일의 유리』를 새로운 문체로 다시 써 내놓기도 했다.

 일본에는 단편집을 포함 60여권에 이르는 소설이 나와 있지만, 한국에는 『물의 가족』 『달에 울다』 『천년 동안에』 『해와 달과 칼』 등 10여편의 작품만 번역됐다. 80년대 이후 마이니치 출판문학상,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일체 수상을 거부하고 있다.

나가노(일본)=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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