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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촬영장 숨소리까지 담던 '열정의 셔터'

중앙일보 2014.04.03 00:22 종합 27면 지면보기
패션사진작가 고(故) 보리는 현장에서 모델과의 감정 교류를 잘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순간을 포착하는 게 가장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스튜디오 보리]


화려한 모델들과 반짝거리는 신상품들이 가득한 패션화보 촬영장. 수수한 옷차림의 여류 사진작가는 한쪽 눈을 감고 야무지게 셔터를 누를 뿐이다. 패션사진작가 고(故) 보리(본명 이보경·사진)다. 작은 키와 까무잡잡한 피부, 곱슬머리 때문에 ‘흑꼬’(흑인꼬마)라는 별명이 붙었다는데 지금은 그를 볼 수 없다. 지난해 3월 26일 귀갓길에 뇌출혈로 쓰러진 그는 10여 일 뒤 마흔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패션 사진작가 보리 1주기
첫 회고전, 사진집 등 출간



 그의 삶과 사진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 가족들이 그의 유작을 모아 첫 회고전을 마련했다. 3일부터 8일까지 6일 동안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LIGHT AND SHADOW’ 전이다.



 그는 조선희, 김태은과 더불어 손꼽히는 여류 패션사진작가였다. 여성이 프리랜서 패션사진작가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여성 사진 전공자는 고정적인 일감이 있는 신문사나 잡지사를 선호한다. 모델들도 여성 사진작가는 꺼리는 편이다. 여성모델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이들은 남성 사진작가여야 이성적인 교감이 연출되고 좋은 사진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패션계에서 보리는 10여 년 가까이 사진을 찍어왔다. 여성 사진작가 특유의 친화력과 섬세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패션모델 송경아는 “보리와 작업할 때면 워낙 모델을 배려해주다 보니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3년간 보리의 전담 어시스트로 활동했던 신중혁씨의 기억도 비슷하다. 촬영용 하이힐을 자신이 신어보기도 하고, 모델이 화장을 받을 때면 자신도 옆에서 화장을 받는 식이다. 그렇게 보리는 ‘보그’ ‘엘르’ ‘W’ 등 수많은 패션잡지와 촬영을 진행했다.



 그는 2010년 MBC ‘무한도전’의 달력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2011년도 무한도전 달력은 ‘도전! 슈퍼모델’을 따라서 찍는 거였다. 당시 온스타일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에서 사진 촬영을 진행했던 인연으로 보리가 무한도전 멤버들의 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는 상업사진을 찍는 것뿐만 아니라 재능기부에도 관심이 많았다.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빅이슈코리아’의 표지모델 촬영에 참여했다. 그가 2011년 1월호 표지에 등장시킨 하정우는 이 잡지 최초의 국내 연예인 표지모델이었다.



 보리는 자신의 성격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고 보정을 하지 않은 사진을 원했다. 함께 작업을 했던 지인들은 얼굴의 점 하나도 지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그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회고전과 더불어 발간되는 두 권의 책, 사진집 『BoLEE』와 포토 에세이집 『나는 당신의 환상을 보았다』를 통해서도 추억할 수 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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