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소문 포럼] 연봉 공개의 역설

중앙일보 2014.04.03 00:20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퀴즈다. 아내가 남편의 보수에 만족하는 금액은 대체 얼마일까. 연봉 기준으로 5000만원, 1억원 아니면 5억원? 모두 정답 아니다. 정답은 언니의 남편, 즉 형부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액수다. 단돈 1원이라도 형부보다 많으면 아내가 만족한다는 거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행동경제학의 가르침이다. 이유는? 사람은 비교의 동물이기 때문이라서다. 액수는 적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받으면 만족하는 게 인간이란다. 당연히 그 역도 성립한다. 아무리 월급이 많아도 다른 사람보다 적으면 불만이다.



 이 얘기를 꺼내는 건 사흘 전의 연봉 공개 때문이다. 연봉 5억원이 넘는 상장회사 등기임원들의 개인별 보수가 밝혀졌다. 보통 사람은 평생 만지기 어려운 돈을 한 해에 벌어들이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게 드러났다. 체면 깎인 남편, 불만 커진 아내들이 확 늘어났을 걸로 보는 이유다. 위화감이 커졌다, 일할 의욕이 사라졌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그 증거다. 가뜩이나 반기업 정서가 높은 나라에서 공연한 분란만 일으켰다는 우려는 그래서 일리 있다.



 반면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 한 일이 별로 없는데도 너무 많이 받아갔다는 게 드러났다. 감옥에 구속돼 회사에 기여한 게 별로 없는 듯한데 수백억원을 받았거나(SK와 한화), 회사는 적자인데도 수십억원씩 받은(GS건설, 금호석유화학) 오너 회장들이 있었다. 오너가 전권을 행사하는 기업지배구조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똑같은 등기임원인데도 오너 회장과 전문경영인 간 연봉 격차가 너무 심한 그룹(현대자동차)도 있다.



 연봉 공개의 명분이야 사실 나무랄 데 없다. 투명하게 경영하고, 일한 만큼 받아 가자는데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 연봉 공개가 지난해 법제화된 까닭이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공개를 통해 연봉을 낮추겠다는 거다. 그럼으로써 CEO와 직원 간, 임원 간 보수 격차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연봉 공개의 선두주자인 미국이 단적인 예다. 공개는 1934년부터 했지만 임원 보수가 너무 높다는 비판이 거세진 건 1990년대 초다. 경제가 나빠 다들 힘든 판국인데 왜 임원들만 많이 받고 보수 격차는 더 심해지는가라는 비난이었다. 보수를 규제하자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배경이다. 93년 내국세법 개정, 2002년 사베인즈 옥슬리법, 2010년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 제정 등이 잇따랐다. 급기야 임원 보수가 많으면 주주들이 기업에 재검토를 권고할 수 있는 규정까지 만들어졌다.



 독일이나 일본·스위스 등도 마찬가지다. 금융위기 이후 보수 규제가 본격화됐다. 그들이 잘못해서 위기가 닥쳤는데 월급은 왜 그리 많은가라는 여론 때문이었다. 임원 연봉을 낮추겠다는 게 목적이었다. 그렇다고 정부나 주주가 직접 낮출 순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게 연봉 공개였다.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 낮아지지 않겠느냐는 의도였다.



 문제는 이게 가능할까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해 보인다. 비난을 받자마자 연봉 일부를 반납한 오너 회장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국의 역사적 경험은 정반대다. 연봉을 규제해도 낮아지긴커녕 더 가파르게 올랐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의 분석이 그랬다. 지난해 350대 기업의 CEO와 일반 근로자의 평균 연봉을 비교했더니 격차가 더 심화됐다고 한다. 78년에는 CEO 보수가 근로자의 29배였다. 하지만 규제가 강화된 후인 95년엔 123배, 2000년 383배로 더 벌어졌다. 이유는?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사람은 비교의 동물이라서다. 아무리 많이 받아도 다른 사람보다 적다면 불만이 커지는 동물이라서다. 남보다 적게 받는 CEO들은 다른 사람에 맞춰 연봉을 올리기 때문에 격차가 심화된다는 거다. 이른바 연봉 공개의 역설이다. 어디 이뿐인가.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인적자원 배분의 왜곡도 심해진다. 유능한 인재들이 월급 많이 주는 곳으로 더 많이 몰리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교수, 언론인은 이제 한물갔다는 얘기다.



 그나저나 이번에 확 깎인 가장의 체면은 어떻게 할까. 방법은 하나뿐이지 싶다. 연봉 높은 남자들은 성질이 못됐다고 우기는 것 말이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의 분석이니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다.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