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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어벤져스 스포일러

중앙일보 2014.04.03 00:16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의연하게 굴고 싶지만, 할리우드 영화의 한국 촬영이 몰고 온 재미있는 현상들을 외면하긴 힘들다. 지난달 30일부터 서울에서 촬영 중인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 얘기다. 정작 누가 무슨 장면을 어떻게 찍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주연급과 닮은 스턴트 연기자가 잠시 스타로 오인되는 등 해프닝만 전해졌다. 엊그제는 한 네티즌의 음모론도 인기를 끌었다. 영화 촬영은 위장일 뿐, 실제는 한강에 떨어진 외계 물체를 인양하는 비밀 작업이라는 요지다. 이 음모론은 관련 보도라며 링크도 걸어놓았는데, 이는 만우절의 의미를 설명하는 페이지로 연결된다. 사상 초유의 마포대교 전면통제 같은 대규모 촬영협조와 현장 통제 등등을 만우절을 빌려 비꼰 셈이다.



 사실 촬영현장은 완성된 영화와 사뭇 다르다. 전에 취재차 방문했던 몇몇 할리우드 영화 촬영장도 그랬다. 한국영화나 드라마 촬영과 마찬가지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영화에 잠깐 나올 장면을 종일 찍는 건 기본이고, 촬영 자체보다 카메라 위치나 조명 등을 바꾸고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게다가 폭파 장면처럼 위험요소가 있거나 집중력을 요하는 장면은 좀체로 공개하지 않는다. 무슨 이유에서건 ‘어벤져스2’도 ‘취재 불가’ 입장을 밝혔다. 아이러니한 건, 촬영에 방해되거나 초상권·저작권에 위배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취재도 불가라고 한 대목이다. 스포일러는 영화의 결말이나 반전 같은 요소를 미리 알려, 결과적으로 관람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걸 말한다. 상세한 줄거리가 공개되지 않은 마당에 구경꾼 입장에선 뭐가 스포일러인지 판단할 근거가 없다. 세간에는 어벤져스들이 상대할 새로운 적 울트론이 세빛둥둥섬에서 탄생한다는 둥, 울트론을 만드는 게 한국인 여성과학자라는 둥, 이 참에 세빛둥둥섬이 폭파될 수도 있다는 둥 다양한 추측과 예상이 나돈다. 이런 와중에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네티즌이 마포대교 가까이에서 찍은 현장 동영상이 인터넷에 등장하기도 했고, 외국 어느 사이트에는 이 영화의 또다른 촬영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입수했다는 한 페이지 분량의 대본이 올라오기도 했다. 앞서 영화사 측은 한국 언론에 ‘국민들의 이해와 성원으로 마련된 촬영 현장’이라며 ‘촬영 현장에 관한 소스가 유출될 경우 실제 본편에서는 촬영분량이 편집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언급했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전 세계인의 이해와 성원도 당부해야 할 것 같다.



 이 영화와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예상은 무려 2조원의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효과가 기대된다는 정부 관계자 말이 아닐까 한다. 영화 흥행에 따른 파장을 이처럼 대담하게 단언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할 때, 내년 개봉할 ‘어벤져스2’에 한국의 모습이 그럴듯하게 나오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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