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정재의 시시각각] 부실 공기업, 씨가 마를 때까지 ⑤LH

중앙일보 2014.04.03 00:16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내 이름은 그러니까, 홍길동이 좋겠다. 익명 뒤에 숨는 걸 양해해달라.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밥을 먹은 지 30년. 세상은 나를 일러 천하의 역적, 만고의 죄인이라 부른다. 141조원의 빚, 공기업 부채순위 부동의 1위, 방만 경영, 개혁은 뒷전, 제 배만 불리는 철밥통…. 내게 쓰여진 주홍글씨다. 과연 그런가.



 1984년 나는 84명의 동기와 함께 84대 1 쯤의 경쟁률을 뚫고 대한주택공사(LH의 전신)에 입사했다. 전두환 정권의 공기업 개혁도 84년 시작됐다.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이 생겼다. 사장·감사 빼고는 내부 승진 원칙이 정해졌다. 모두 환호했다. 왜냐고? 그땐 낙하산 천국이었다. 지금 낙하산은 저리가라다. 부장급까지 상급기관(건설부) 낙하산이 싹쓸이할 때다. 그걸 없애면 얼마나 좋아지겠나. 하지만 개혁이 어디 그리 쉬운가.



 87년 세상이 뒤틀렸다. 민주화 열풍으로 공사에도 노조가 생겼다. 그때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 부풀리기와 구조조정이 반복됐다. 나는, 우리는 살아남는 게 목표였다. 노조를 중심으로 뭉칠 수밖에 없었다. 노조의 힘은 갈수록 세졌다. 88년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 건설이 촉진제였다. 그 200만호가 어떻게 지어졌나. 택지개발촉진법 같은 무소불위의 법을 만들어서 했다. 아무 땅이나 지정·수용해서 집을 지었다. 전국이 거대한 공사장이 됐다. 사람도 대거 뽑았다. 3000여 명이던 직원은 2년 만에 약 4000명으로 늘었다. 그땐 그래도 괜찮았다. 자고 나면 집값이 오를 때였다. 집은 지으면 팔렸다. 이윤도 제법 남겼다.



 97년 외환위기로 세상이 다시 뒤틀렸다. 거센 구조조정이 몰아쳤다. 47% 감원. ‘너 아니면 내가’ 나가야 했다. 약 6000명이던 직원은 3200명까지 줄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최악이었다. 주택공사는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토지공사는 10개의 기업·혁신도시를 짓느라 망가지기 시작했다. 다시 전국이 공사장이 됐다. 땅 보상비로 천문학적 돈이 풀렸다. 정부·지자체가 앞장서 조직을 키우라고 요구했다. 빚과 인력이 같이 늘었다. 한 채에 빚 1억원, 임대주택에만 한 해 2조원꼴로 빚이 쌓여갔다. 토지공사는 땅값 보상비로 거덜이 났다. 그렇게 불어난 빚이 노무현 정부 5년간 약 46조원이었다. 연평균 부채증가율 27.4%, 사상 유례없는 속도였다.



 이명박 정부도 비슷했다. 빚 1·3위인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합했다. 이자만 하루 120억원. 압도적으로 빚 많은 공기업 1위가 됐다. 빚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뭇매를 맞아야 했다. 갖은 비난, 구조조정, 임금삭감은 단골메뉴였다. 1300여 명의 동료가 다시 회사를 떠났다. 그래놓고도 정부는 보금자리 주택을 밀어붙였다. 임대주택도 계속했다. 빚은 천정부지, 이명박 정부 5년 새 71조2000억원이 더 늘었다.



 박근혜 정부는 어떤가. 공기업 개혁에 명운을 건다며 우리더런 행복주택이나 열심히 지으라고 한다. 과거 정부와 뭐가 다른가.



흔히 LH를 철밥통이라며 꼽는 게 몇 가지 있다. 정원(6093명)보다 많은 현 인원(6480명), 옛 주택+토지공사 합동 회식 땐 회식비 무조건 지급, 5·10·30(오텐삼십)으로 불리는 전문직 제도.(1급 5년, 2급 10년, 입사 30년이면 전문직으로 나앉는 제도다. 연봉은 해마다 10%씩 깎이지만 하는 일은 없다. 현재 200명쯤 된다)



 이런 게 왜 문제인가. 다른 공기업은 통합 때 12%쯤 줄였지만 우린 직원 20%를 줄였다. 그걸로 부족한가. 통합 후 직원 융합을 위한 회식비 지원이 왜 나쁜가. 통합으로 자리가 없어 전문직으로 나가야 하는 우리 심정은 왜 안 헤아려주나. 나도 전문직 된 지 2년째다. 연봉은 1억원쯤 받는다. 하는 일 없이 돈 받기 미안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대책 없이 나갈 순 없다. 59세 정년까지 2년만 더 이런 생활을 해야겠다.



 자, 이제 내 얘기는 끝났다. 그래도 던지겠다면, 돌을 던져라. 이렇게 큰소리치지만 나 홍길동, 딱 하나 미안한 게 있다. 내 탓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청년 일자리를 빼앗게 됐다는 거다. LH는 지난해 신입사원을 뽑지 못했다. 지금 있는 직원 수가 이미 정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