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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중국은 깨어난 사자다"

중앙일보 2014.04.03 00:14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보균
대기자
중국은 사자다.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의 말은 선언적이다. 그는 “중국이라는 사자가 이미 깨어났다(睡醒的 獅子)”고 했다.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마라. 중국이 깨어나면 세계가 흔들린다”-. 두 세기 전 나폴레옹의 경고다. 중국 잠재력에 대한 두려움의 표시다.



 그 시대 중국은 발톱 빠진 사자였다. 실상은 폭로됐다. 120년 전 청일전쟁에서다. 중국은 일본에 완패했다. 서방 국가들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시진핑 발언은 강렬하다. 역사의 감회를 드러낸다. 그 말은 제국주의 시대의 처량한 기억을 날려버린다. 부국강병의 자신감을 표출한다.



 그것과 대비되는 장면이 있다. 할리우드 고전영화 ‘북경의 55일’이다. 청나라 말기 1900년 의화단(義和團) 반란이 배경이다. 의화단은 외세 배격을 내걸었다. 베이징 주재 외국공사관을 공격한다. 주인공은 찰턴 헤스턴. 중국 주둔 미국 해병대 소령이다. 그는 해병대원들에게 지시한다. “(중국인이) 영어를 못한다고 우리보다 못한 종족이라고 여겨선 안 된다”-. 우월감이 넘친다. 중국에게 치욕적인 대사로 기록됐다.



시진핑의 연설(3월 27일) 장소는 파리다. 프랑스와의 수교 50주년 기념 연설에서다. 중국 대륙에 진입한 외세에 프랑스도 있다. 시진핑의 언어는 역사의 대전환을 우회적으로 선언한다.



 시진핑의 독일 연설(29일)도 이례적이다. 그는 “일본 군국주의가 난징(南京)을 침입해 30여만의 군·민을 도살하는 참상을 저질렀다”고 했다. 베를린의 쾨르버 재단 강연에서다. 국제무대에서 중국 지도자의 일본 비난-. 공개적인 비판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그것과 대조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1995년 11월 김영삼(YS)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청와대 회담이다. 비공개 정상회담에서 장쩌민은 “일본군이 난징에서 대학살을 하는 것을 나는 어렸을 때 직접 봤다. 그런데도 일본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잡아뗀다”고 했다. 그때도 일본 각료의 과거사 왜곡이 있었다. 회담 뒤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YS는 “일본의 망언에 대해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했다.



 공개 장소에서 장쩌민의 언어는 달랐다. 그의 일본 비판은 원론에 그쳤다. 그는 난징 학살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장쩌민의 태도는 절제와 인내다.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의 중국 리더십 수칙을 고수했다. 반면 ‘버르장머리’의 기세는 추락했다. 김영삼 정권 말 외환위기 때다. 우리 정부는 일본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일본 정부는 외면했다. 거친 공세에 싸늘한 반격이었다. 한국은 IMF 구원을 받아야 했다.



 중국은 이제 진정한 사자다. 유럽 순방 중 시진핑은 굴기(<5D1B>起)의 면모를 과시했다. 맹수의 본능은 공세적이다. 시진핑은 주변의 불안감을 잠재우려 한다. 중국 사자는 “평화롭고 친근하고 문명적”이라고 했다. 그 발언은 믿음을 주지 못한다.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는 “통치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다양한 종교 간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시진핑과의 오찬에서다. 그 말은 티베트, 위구르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의 강압을 지적한 것이다.



 사자의 존재감은 밀림의 질서를 흔든다. 동북아의 군사·외교 경쟁은 치열하다. 미·일의 중국 포위망은 정밀해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거칠다. 중국의 군사력 강화는 압도적이다. 일본도 1일 무기 수출의 족쇄를 풀었다.



 북한은 ‘박근혜 드레스덴 제안’을 깔아뭉갠다. 미사일 발사,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격, 무인정찰기로 긴장 상태를 높인다. 중국은 북한의 모험을 억제할 힘이 있다. 시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23일 헤이그 회담)에게 “북한과 핵 문제에 이견이 있으나, 중국 측 방식으로 북한을 설득 중”이라고 했다. 사자의 책무는 밀림의 혼선 정리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 행사 수단은 모호하다. 중국의 북한 핵 압박은 사후적이다.



 북한의 4차 핵무기 실험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박근혜·오바마·아베의 헤이그 회담은 북한 핵무기 폐기에 집중했다. 3각 공조는 일단 복원됐다. 하지만 불완전하고 미흡하다. 그 책임은 총리 아베의 역사 도발 때문이다. 역사전쟁에서 완승은 없다. 안보와 역사를 분리해야 한다. 외교 우선순위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한반도는 교차점이다. 대륙과 해양 세력이 섞인다. ‘미국과 동맹’, ‘중국과 전략적 협력동반’ 관계가 만난다. 두 개 구도는 충돌한다. 양쪽을 조화롭게 작동시킬 수 있다. 그것은 박근혜 외교의 과제다. 독자 역량을 키울 기회다. 3국 동맹은 단단해야 한다. 그러면 중국과의 동반 관계도 진화한다. 그 속에 거대 중국에 대처하는 지혜가 있다. 거기서 북핵 폐기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매력이다. 역설적 외교 수완이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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